" 우웩~"
속이 안 좋아서 일어나 미친 듯 화장실로 달려갔다.
체하거나 기분 때문에 토를 한 적은 있어도 술을 많이 먹어서 또 급하게 마셔서 이렇게 속을 부여잡고 다 뱉어 내기는 처음이었다. 다시 쓰라린 속을 부여잡고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한 컵 들이키고 그리고 어두운 방안 벽을 잡고 더듬거리며 들어가 침대에 누었다. 그리고 그새 잠이 들었다. 얼마쯤 잔 것일까. 창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눈을 뜨니 침대에는 나 혼자였다. 오빠 방.
괜히 전화를 해서는. 휴우~
몸을 돌려 일어나려는데
" 아얏~"
"물컹~"
순간 놀라 바닥을 보니 바닥에 잠이 든 건 경윤이었다.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보니 분명 여기는 연우의 방이었다.
'이미소 정신 차려봐. 어떻게 된 거야. 너 정말 어제 일 하나도 기억 안 나? 도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조용히 침대에 앉았다. 깨워야 하나. 아니면 모른 척 그냥 저렇게 곤히 자게 둬야 하나. 그러고 보니 나는 옷도 오빠 흰 티에 운동복 바지에...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상하기도 싫다. 근데 도대체 저 아이는 왜 여기서 자고 있는 것일까?
" 흐음... 일어났어?"
" 아.. 음. 경윤아. 그게.. 흠.. "
" 풉. 너 좀 씻어야겠다. "
" 응? 나 왜?"
나는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말 번개처럼 빠른 발걸음으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불도 끈 채. 희미하게 열린 욕실문 사이 내 머리끝은 토사물로 엉망이 되어 있었고 얼굴의 화장은 이미 번질 대로 번져서 내가 누군지 저기 저 거울에 비친 존재는 누군지 많은 괴리감이 들기 시작했다. 너무 놀라 화장실 문을 탁 닫자, 화장실 안은 칠흑 같은 어둠이 되었고 나는 놀라서 그만. 악.
" 불 불 안 켰네. 다친 건 아니지?"
놀란 경윤이 달려와 화장실 불을 켜고 문을 열려고 하는 게 아닌가.
" 아... 아니 경윤아. 그게... 나 괜찮아. 그러니 잠시만. "
" 쏴아아 아"
어디 쥐구멍은 없나.
여기 창문에서 나가면 죽을까? 창밖을 바라보니 밖은 대낮이었다.
훤하다. 도대체 얼마를 잔 건지 지금이 몇 신지 감조차 오지 않는데 어떻게 하지? 머릿속 의문은 끊이지를 않는다. 왜 하필 어제인데...
술을 많이 먹던 대학교 1학년 때도 한 번도 그런 적 없던 내가. 아니 그것도 필름이란 건 끊긴 적이 없던 난데, 취하긴 해도 기억이 안 날리 만무한데 머릿속에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내 기억 속에는 그냥 전화를 끊고 그 이후 필름이 off상태였다.
자자 정신 차리자. 여긴 나 혼자가 아니야. 정신 똑바로 차려.
샤워를 마치고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나오자, 어느새 연차를 내고 연우가 와 있었다. 연우는 나를 보며 아주 황당한 표정, 어이없음, 저걸 어쩌지? 이런 온갖 마음이 뒤섞인 표정으로 바라보며,
" 야 너는..."
" 어제는 감사했습니다. "
경윤은 아주 친한 사람인 듯 그렇게 인사를 넙죽했다. 그런 경윤을 보며 연우가 말했다.
" 어제 고생 많았어. 너도 그만 가봐. "
" 미소랑 같이 나갈게요. "
" 아냐. 미소는 내가 데려갈 데가 있어서 어디 좀 갔다가 집에 바래다줄게. 너무 걱정은 말고 그만 가봐. "
" 그럼 형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 갈게. "
나 무슨 꿈꾸는 상황인가. 머리에 수건을 아직 채 풀지도 않았는데 이 낯선 풍경은 뭘까.
" 야. 속은?"
나는 뒤틀려 미칠 것 같은 속을 애써 외면한 채. 아무렇지 않은 척 최대한 노력해야 했다.
" 말짱해. 다 토했더니. "
" 너 어제일 기억나. 안나?"
" 기... 기억나! 는... 데... 요."
그의 표정을 보니 어제 무슨 일이 있기는 했는가 보다. 나도 모르게 그만 기어가는 목소리로...
" 기억은 무슨... 어디까지 기억나는데?"
" 오빠한테 내가 데리러 오라고 전화했잖아.... 요..."
" 그리고 또!"
" 그리고 음... 음....."
" 너 앞으로 술 먹지 마. 내 앞에서 말고는 절대. 절대. 알았지? "
나는 수건을 풀고 깨질 듯한 머리를 뒤로 한 채 '허어' 한숨을 쉬며 기억해 내려 애를 썼다. 이게 무슨 일이야.
" 자 드라이기. 어서 머리 말려. 나가게."
" 나가? 어딜? 나 옷도 이러고 있는데? 내 옷은?"
그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옆으로 바라봤고 빨래 바구니에 엉망이 된 내 원피스가 널브러져 있었다.
" 하아... 이러고 어떻게 나가... 요. "
" 쪽팔린 줄은 아냐? 자."
그는 야구모자를 내게 주며 말했다.
" 어서 머리 말려. 머리카락은 더럽게 길어 가지고."
그가 나를 데려간 곳은 백화점이었다. 그리고 처음 들어간 곳에서 나는 손에 잡히는 옷을 골라 데어보고 대충 사이즈가 맞자 바로 입고 나왔다.
" 가자. "
" 벗어. 이제 너 그런 옷조차 못 입고 다녀. 벗어."
그가 골라 준 옷은 얌전해 보이는 검은색 원피스 무릎아래 내려오는 단정하리 만큼 교복 뺨치는 옷이었다. 그리고 간 곳은 속옷 가게. 거기서 딱 기본 스타일의 하얀 레이스 세트를 고르더니 바로 계산을 하며 내게 주었다.
" 갈아 입구 와. 너 속옥도 다 버렸어."
소... 속옷? 나는 후다닥 들어가서 새로산 원피스를 벗었다. 그러자, 미쳐 몰랐던 내가 아침에 당황해서 못봤던 내 속옷도 엉망이다. 헐. 그래 얻어 입는 주제에 내가 지금 가릴 처지도 아니고 저렇게 행동하는 데는 내가 원인 제공자이겠지. 그리고 나를 데려간 곳은 신발 가게. 나는 그의 신발장에서 그의 흰색 작업화를 꺼내 신고 있었다. 그가 손수 고른 검정 구두. 그리고 간 곳. 미용실.
" 어떤 스타일을 원하세요? 손님. "
그는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헤어책을 이리저리 넘기더니 심각하게 고민하며 내 얼굴을 마주 보며 데어 보더니 말했다.
" 저 긴 머리 좀 댕강 쳐 주시고 이렇게 해주세요. 제발."
아무 말도 못 했다. 도대체 내가 뭘 어떻게 했길래 오늘 나를 데리고 이렇게 인형놀이도 아니고 내가 무슨 실험쥐도 아니고 이런 눈치도 이런 눈칫밥이 따로 있나. 차라리 속시원히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몇 년을 기른 머린데 어깨 높이로 잘라 웨이브를 만들지를 않나, 생전 옷에는 관심도 없던 사람이 옷까지 단속을 하고 뭔가 단단히 내가 단단히 잘못했다고 치자.
그렇게 머리를 하고 나와서 그는 다시 나를 데리고 시청역 뒷골목의 할머니 콩나물 해장국으로 갔다.
이미 시간은 오후 4시가 훌쩍 넘어갔고 아마도 아침부터 움직였으니 이제는 속이 괜찮으리라 생각도 들었고 뭔가 말이도 해주겠지?라는 생각이 약간은 들었다.
하지만 밥을 다 먹고 나올 때 까지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를 데려간 곳은 자동차 대리점이었다. 그는 별 고민조차 없이 차를 한대 골라서는 제일 출고일이 빠른 차로 고르고 그렇게 사인을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내 손을 잡고는
" 그래서 집이 어디야?'
그제야 물어봤다.
" 나 이제 술 깨서 집 찾아갈 수 있어요."
" 어디냐고."
" 그게 성수역....."
" 가자. 너네 집에."
" 응? 가자고. 너네 집에."
" 네..."
나는 그렇게 그와 함께 우리 집에 가서 그가 집안에 들어와 집안을 한번 휙 훑어보고 그러고 나가며,
" 너 오늘은 절대 밖으로 돌아다니지 마. "
이렇게 말하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도대체 뭘 얼마나 내가 잘못했길래 연우는 저러나. 왜 같이 있을수록 더 화가 나는 것처럼 보이지?
퇴근후 돌아온 희경은 단단히 삐져 있었다.
" 잘한다. 미친년. 내가 너 사고 칠 줄 알았어. 다 큰 여자애가 몸을 못 가눠서 남에 집에서 그것도 새파란 남자집에서 자고 오는 게 말이나 되니? 그것도 생때같은 남자가 둘이나 있었다고? 미친 거 아냐? 정말 기억이 하나도 안나는 거야?"
" 후우.... 제발 전화라도 좀 받지. 어제 너한테 그렇게 전화했던데."
희경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 야. 그 밤에 전화하면 남자 친구랑 있는데 내 성격에 전화받겠니? 그리고 내가 전화를 받으면 뭐 하니? 네가 자꾸 끊어버리는데. 그래서 내가 열받아서 안 받았지. "
" 아 나 진짜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데 차라리 물어볼까? "
" 누가 말해줄 성격인데 둘 중에 어디 물어볼 건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둘 중 누구도 나에게 알려줄 사람은 없었다.
경윤이는 내가 술이 취해 나를 데려다준 적도 몇 번 있지만 그 앞에서 필름을 끊겨본 적도 없었고, 설사 그렇다 해도 물어도 아무 말 안 할 사람이고.
오늘 연우의 반응을 봐서는 왠지 물어보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