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나는 멈칫했다. 그는 무얼 알고 있는 건가. 그것도 잠시 그는 말했다.
" 그래야 너 뻗으면 내가 업어가 버리지."
" 농담하는 스킬도 늘고."
" 아 안돼겠다. 여보세요? 응. 아 지금은 안돼. 미소야 잠시만. "
나는 막 그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여자 친구만 잘 꼬시면 되겠다고. 그 말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그때 마침 계속 울리던 전화를 외면하기 힘들었는지 경윤은 전화를 받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한참을 통화하나 싶더니,
" 이 자식 너 죽었어. 이 구석에 숨어 있다고 우리가 못 찾을 줄 알았냐? 이 자식이... 어이 미소 하이!"
권익이었다.
아니 동아리 회원이던 권익이와 정림이와 우진과 재림과 그 외에도 내가 모르는 세네 명은 더 온 것 같다. 한 손에는 케이크를 들고 한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선물을 든 친구도 있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선배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담배를 슬그머니 주머니에 넣었다.
"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
선배들과 인사를 하고 나니 권익이가 그 모르는 세네 명을 소개하며,
" 인사해. 인사해. 여기는 이미소 고등학교 때 우리 동아리 알지?"
" 아 안녕하세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저 경윤이 중학교 동창 정우, 여기는 고등학교 동창 세민, 여기는 현우, 형식이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
" 아 안녕하세요. 이미소예요. 말씀 편하게 하시죠. 같은 동기까리."
내가 그렇게 말하자 현우가 넙죽 인사를 하며,
" 아 그럴까? 경윤이 이 자식이 여기 처박혀서는 그렇게 오래도 안 오고 말이야. 귀도 빠진 주제에 어디 감히"
현우는 그렇게 말하며 경윤의 귀를 부여 잡고는 한참을 얼굴을 괴롭혔고 그걸 보는 모두 깔깔 웃어대며 저마다 한마디씩 말했다.
생일을 축하한다는 사람, 연인끼리 서로 바라보면서 말하는 사람, 경윤에게 팝콘을 던지는 사람. 난장판 처럼 보이는 자리기는 했지만 분명 내가 원하던 자리기는 했다.
하지만 이 조합은 또 뭔가. 어색한 이 느낌은.
넉살 좋은 권익이
" 여기 주문 추가요. 자자 테이블 여기 더 붙이고. 어디 보자. 잔 좀 돌리자. 받아. "
권익의 말에 일사 분란하게 자리에 잔이 돌기 시작하더니 곧 술이 채워지고 자리에 금새 치킨이 나오며 그렇게 한상 생일 상이 차려졌다. 그리고 왁짜지껄한 웃음 소리. 각자 자리에 들리는 짠 소리 술을 들고 경윤에게 와서 먹이고 경윤은 또 들고 다른 자리에 가서 술을 건네고 그러는 사이 곁에 앉은 정림이 내게
" 야 넌 왜 전화를 안 받냐?"
" 나? 잠시만. "
전화를 확인하니 정림의 전화가 7통이나 와 있었다. 나는 누군가를 만나러 가면 항상 전화를 무음으로 뒀다.
만나는 사람에게 집중하기 위해 가능하면 전화를 받지 않았고 부득이한 경우는 중간에 확인하고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성격상 어지간한 사람들의 모임은 안 가고 친구들이 꼭 필요한 경우 예를 들어 헤어졌거나 정말 고민 상담이 필요해서 내게 전화를 할 때만 나는 누군가를 만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만나는 사람은 대부분 한명이었고 오로지 그 사람과의 대화에 집중하는 상황이 되었다.
" 자 건배. 우리 경윤이 생일을 위하여."
케익을 나눠 먹고 술잔이 몇번을 돌고 그렇게 무르익은 분위기에 왁자지껄한 소음에 나는 어느새 취해 홀짝홀짝 대며 혼자 묵묵히 술을 마셔대고 있었는데, 정우가 내게
" 자 우리 재수 씨도 한잔해요. 혼자만 먹지 말고. "
이러는 게 아닌가.
" 아 저희 그런 사이..."
아까부터 이 분위기에 당황해하던 경윤이 옆에서 내 잔을 막으며
" 야 그만 먹여. 내가 마실게. "
이렇게 말하며 내게 건넨 잔과 내 앞에 놓인 잔까지 몽땅 마셔 버렸다. 일순간,
" 오~~ 경윤이. 경윤이."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자, 곁에 있던 정림이 내 술잔을 채우며,
" 야 미소 술잔 비우는 거 반칙이다. 누가 우리 미소 술잔을 비우고 그러냐. 항상 채워야지. 어서 마셔. "
그렇게 말하며 분위기를 무마시켜 보려 하였다. 나는 술잔을 비우고는
" 저 잠시 화장실 좀."
그렇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와 건물 왼편에 있던 화장실을 다녀와 간판 불빛을 피해 옆 벽에 기대 서 있었다. 그러자,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재림이 다가왔다.
" 불편한 자리인가 봐?"
" 뭐 좀. 그렇네요. "
" 들어가자. 피한다고 될 자리 같지는 않고. 뭐 잠시만 투명인간되면 되니까. "
재림의 손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서자,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한참을 이야기하다,
" 왔네. 앉아봐."
그러며 권익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 암튼 그때 나는 미소가 나한테 관심 있는 줄 알고 엄청 전화했거든."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경윤이,
" 미소가 아니고 너였잖아. 인마."
그랬더니 권익이 시원하게 맥주를 한잔 들이켜고는 연이어 거품을 물고 말했다.
" 아 이 자식이 미소 좋아한다잖아. 그래서 내가 쿨하게 양보했지. "
" 양보하긴 뭘 하냐? 미소는 마음도 그때 없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정림이 말했다. 순간 정적이 되나 싶더니, 어디선가,
" 자자. 건배."
그러자 저 끝에 앉아 있던 세민이
" 뭐. 경윤이가 좋아한 건 사실이지. 미소씨 아니 제수 씨 대학원 간다 해서 경윤이 저자식이 군대도 안가고 방산 간 거잖아."
그러자 경윤이 앞에 놓였던 술잔을 들이키며 힐끔 나를 봤다. 내가 잔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런 그를 쳐다보자,
" 왜 그때 네가 나보고 너무 잘생겼다고 찼잖아. 그때."
' 아. '
순간. 그때 내가 한 말이기는 했다. 꿈이 좌절되고 대학을 지방으로 가게 되었을 때 나는 그냥 그 대학 대학원을 가서 임용을 치거나 교수가 되어야겠다고. 하지만 나는 그곳을 벗어나고 싶은 욕심에 편입을 했다.
나는 내 앞에 술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그리고 결심했다.
' 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이건 뭐 퍼즐 맞추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청문회도 아니고. '
나는 주머니 속에 숨겨두었던 비장의 무기 담배를 호기롭게 꺼내 들고는,
" 저 잠시만 나갔다 올게요. "
그렇게 말하고는 보란 듯 가게 앞에서 담배를 폈다. 정나미 좀 뚝뚝 떨어져라. 경윤이 쪽팔리게. 다시는 저런 여자 좋아하지 말라고. 친구들이 책가방 싸서 따라다니며 말리게.
" 도망가는 재주가 보통이 아닌데?"
또 재림오빠였다. 또 질질 끌려들어 왔다. 그렇게 자리에 앉자, 처음부터 내게 재수 씨라고 불렀던 정우가,
" 뭐. 그쪽은 콧대가 얼마나 높길래. 경윤이 그렇게 좋다는데 그래?"
대뜸 그렇게 말했다.
나는 순간.
' 올 것이 왔구나라'
는 생각이 들었다.
" 콧대가 높은 게 아니라 나같은 여자랑 안 어울리는 거겠죠. 그렇죠?"
그렇게 말하며 그를 바라보면서 술잔을 비웠고 그러자 그가 내게 다가와 술을 채우며,
" 탐낼 만하네. 훗. "
이렇게 말하며 내 술잔을 채웠다. 그런 그의 잔을 망설이지 않고 나는 바로 받아 마시고는 잔을 주며,
" 탐나면 가져 보시든가. "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옆에 경윤의 술잔을 당겨 술을 연거푸 마셨고 옆에 있던 정림이 눈이 동그래져 나를 바라봤다. 아마도 오랜 기간 나를 알고 온 정림이 아는 나는 적어도 이런 모습은 아니었으니까. 그러자 경윤이
" 내가 그만 먹이라고 했잖아. 너도 가서 좀 앉아. "
그렇게 말하며 그를 자리로 보냈다. 그러자 그가 자리에 가서 내게 받은 술을 원샷하고는
" 경윤아. 사귀는 것도 아니라면서?"
그러자 경윤이 술잔을 다시 채워 들이켰다.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권익이
" 자자. 이 과열되는 분위기. 으르렁 좋아요. 이 여세를 몰아서 한잔 짠"
이렇게 잔을 들었고 못 이긴 척 다른 사람들이 잔을 드니 경윤이 허벅지를 탁 치며 일어나서는
" 고마워. 내 생일 축하해 줘. 잘 해볼려는데 뜻대로 잘 안되네. 훗. 자 짠."
그렇게 말하며 내게 잔을 권냈다. 나는 잔을 받아 마셨다. 그리고 연거푸 몇 잔을 더 마신 후 화장실을 간다고 하고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비틀비틀 땅이 올라오는 느낌. 걸어도 걸어도 걷는 것 같지 않은 기분.
경윤이 달려와 그런 나를 부축했다. 나는 그를 뿌리쳤고 그는 나를 일으키더니 내 볼을 붙잡았다. 그리고 다시 내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 미안해. "
그리고 내게 키스를 했다. 그때 스무 살 우리가 나누었던 그 아름답고 달콤했던 키스. 나는 뿌리쳤다.
" 다가오지 마. 다쳐. "
" 미소야. "
" 네가 다가올수록 아프다고 했잖아."
그는 내게 한 발짝 물러나 바라봤고 나는 그런 경윤을 손으로 더 밀어낸 뒤 팔을 뻗어 거리를 유지시켰다. 그리고 전화를 했다.
" 오빠. 나 좀 데리러 와줘. 여기 홍대에서 뒤로 들어와서 00 치킨집 근처야. 응. 지금 바로. 당장. "
경윤은 그 자리 멈춰 서 그렇게 나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