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 너 괜찮아?"
답은 의외의 인물에게서 힌트를 얻었다. 그것도 아주 짤막하게.
정림이 전화가 와서는 난리도 아니었다. 내가 그러고 나가고 주변에서는 사랑싸움이니 뭐니 하면서 키스타임이니 뭐니 하면서 정림을 못나가게 그렇게 말렸다.
정림은 그래도 걱정이 되어 밖에 나왔고 정림이 목격한 바에 따르면, 나는 정확히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토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 나를 경윤이 등을 두드리고 있는데 누군가 택시를 타고 와서는 나를 데려 가려고 했고 그사람과 경윤이 실랑이 벌어진 사이 눈 깜짝할 사이 내가 사라졌다고 했다.
그래서 다들 나와서 나를 찾다가 결국 경윤이 집에 데려다 준다는 전화 통화를 하고는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다고 했다.
퍼즐 하나는 맞춰졌다.
며칠이 지나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앞에 웬 낯선 차가 서 있었다. 멀리서 내가 걸어오는 걸 보더니 차에서 정장을 차려 입은 남자가 내리는데 연우였다.
" 알바를 뭘 이렇게 늦게까지 해. 다 큰 여자가?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전화는 왜 안받아?"
" 그게... "
" 왜 이제 기억이라도 난거야? 그래서 피하기로 한거야?"
" 아니 그게 아니고... 쪽팔려서요.... "
" 뭐가? 기억이 아직도 안난다면서 뭐가 쪽팔린데?"
" 그냥 다... "
" 흐음... 난 또 ... 괜히 걱정했네.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알았어. 들어가. 아참. 너 전화 꼭 받아. 나 바쁜 사람이야. 괜한데 신경쓰게 하지말고. 알았지? 나 간다. "
그러고 그는 휙 하고 사라져 버렸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택배상자가 쌓여 있었다. 내 이름으로.
" 야 넌 돈도 없다고 맨날 나한테 난리인 애가 웬일로 이렇게 물건을 다 사? 생전 쇼핑 한번 안하던 애가?"
" 내꺼 아닌데... 어? 내 이름이네?"
" 뭐야. 무슨일이야. 이게 도대체. "
희경과 나는 택배상자를 뜯었고 안에는 옷, 신발, 밥솥, 믹서기, 공기청정기... 아주 골고루 들어 있었다.
" 헐. 너 우렁각시 생겼냐?"
" 그럴리...가? 아?"
나는 급히 연우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는 우리집에 온 사람이라고는 연우 밖에 없었다. 왜냐면 여긴 내 집이 아니고 희경의 집이니까.
" 오빠죠. 택배. "
" 받았어?"
" 이거 뭐에요. "
" 뭐긴 집에 필요한 거지. 그날 보고 없는 것만 대충 넣어 뒀는데 몇개 더 갈 수 있어. "
" 오빠! 여기 우리집도 아닌데 이렇게 보내면 어떻게 해.."
갑자기 옆에 있던 희경이 내 전화를 뺏어 들었다. 그리고는 내가 본 희경의 모습 중 가장 공손한 모습으로
" 어머 연우 오빠 말씀 많이 들었어요. 이렇게 손수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잘쓸게요. 제가 미소는 잘 챙길게요. 네.. 물론이죠. 아 네. 그 날일은 너무 신경 안쓰셔도 되요. 그 날은 제가 너무 화가 나서... 말이 헛나왔어요. 제가 죄송하죠. 뭘요. 네네. 네 들어가세요. "
" 야. 그렇게 끊으면 어떻게?"
" 뭐. 내가 응? 너 데리고 사는데 이 정도는 받아줘야지. 그정도도 안되냐?"
" 아니 내말은 그런게 아니잖아. 그리고 너 도대체 왜 나한테 말 안한 건데?"
" 뭐 내가 뭘 그랬다고 그래? "
" 너 그날 일 알고 있잖아."
" 니가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아냐? "
" 아까 분명 들었다고 둘이 통화하는 거 너 오빠보고 미친새끼라 그랬다며?"
" 들..었어? 아니 미친년 짓은 니가 해놓고 왜 나한테 그래?"
" 야. 그말이 아니잖아. 오빠랑 통화도 한거야?"
" 그래 했다. 했어. 하도 전화해서 경하고 뚝 끊고, 경하고 뚝 끊고 너무 열받아서 전화 안받으니 전화가 왔길래. 욕좀 했다. 미친새끼 전화하면 죽여버린다고. "
" 헐."
퍼즐 또 하나 완성.
그리고 퍼즐인지 아닌지 모르는 조각하나. 추가.
" 그래 가지고 내가 너랑 경윤이 연결을... "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미쳤지. 왜 하필 권익이한테 물어보려 들어가지고 통화한지 1시간이 지나가는데 아직도 이야기는 술집이다. 참다 참다 못해서
" 아니 권익아.. 내 말은 그래서 니가 나 찾으러 갔다며. 정림이한테 그렇게 말했다며 근데 경윤이때문에 말못하겠다고 했다며 그게 도대체 뭐냐고? 몇 번을 물어봐. 제발. 이야기 좀 빙빙 돌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 나 진짜 심각하다니까?"
참다 못한 내가 화를 내니, 권익이 눈치를 보고 그러고도 뜸을 들이더니
" 아씨. 경윤이 알면 화낼텐데. 너 진짜 진짜 절대 말하지마. 내가 진짜 이건 처음 말한다."
그가 말한 부분 중에 약간의 과장과 내가 의심스러운 정황과 그의 첩보활동 처럼 보였다던 그런 이상한 모든 내용을 빼고 사실에 근거해 가장 가까운 내용만 추려보면 내용은 그러했다.
그러니까, 한참 권익이 나를 찾아 동네를 뒤지는데 주먹을 쥐고 서로 멱살을 잡은 두사람을 멀리서 보고 말리러 가는데
" 저 미소 남친인데요?"
" 내가 들었어. 남친없다고 똑바로 말 안해?"
" 저.. 전 남친이에요..."
" 야 이 새끼. 미소 남친 일주일도 안되서 깨졌다고 들었대도. 그것도 나랑 같이 있을 때 라던데?"
라는 말까지 듣고는 놀라서 권익이 이 둘을 뜯어 말리고는 지금 뭐하냐고 미소를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사라진 나를 찾는게 우선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자 둘다 분이 안풀렸는지 한참을 씩씩 대다가, 그 형이 방향을 지시해서 흩어져서 다시 찾으러 갔다고 했다.
아마도 분명한 건 그들이 서로 오해이기도 하고 진실이기도 한 부분을 공유는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퍼즐 하나는
내가 열심히 달렸던 기억은 났다. 그들의 말을 들으며 서서히 기억이 나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내가 연우를 보자,
" 나쁜놈!"
그렇게 외치고는 미친듯 뛰기 시작한 장면.
그리고 중간 중간 노래도 부른 것 같은데...누군가의 등에 업혀서 속이 안좋다고 한 기억도 나고... 아..
싸이렌 소리가 들려서 숨었던 기억도 났다.
숨을 때 누군가 내 입을 막았고 나는 그 손에 토를 했고 그걸 내머리카락으로 닦고 미안하다고 내 원피스에 닦아주었던 기억도 났다. 그 큰 손을 내 원피스에 슥슥 문질렀던 거 같다.
문제는 이 기억만 가지고는 연우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렇게 화가 나 있고 우리집에 그렇게 물건을 보내 놓은 건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원래 이럴때는 키를 가진 사람에게 문제를 푸는 법.
나는 고심하다 연우를 꼬셔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문제는 어떻게 꼬시지? 바쁜 사람을? 다시 술을 먹을까? 아마도 게거품 물텐데 더 난리 치고 더 단속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지? 오빠 집에 몰래 잠입할까? 아! 그것도 방법이겠다.
나는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지 않고 바로 연우 집으로 향했다.
역시 그는 집에 없는가 보다.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비밀번호를 누른 후 집으로 들어갔는데, 전화가 왔다. 연우다. 헉.
" 미소야 너 왜 알바시간 끝난지가 언젠데- 한참 지났는데 아직도 집에 안와?"
" 아 그게 어디 들릴때가 있어서요."
" 어디?"
" 그게 오빠집요."
" 나말고 오빠가 또 있어?"
" 아니 오빠집이라고."
" 뭐? 너 거기 어떻게 들어간 거야? 아니지. 너 거기 꼼짝말고 있어."
'흠. 어째든 그가 오고는 있지만 차라리 잘된 일인지 모른다. 오면 물어보면 되니까. 그전에 나머지 단서 될 만한 기억이... 나야 할텐데? 응? 어디보자. '
나는 손가락을 들어 열심히 방안을 훑었다. 혹여 무슨 단서라도 있을까 싶어서.
'침대에 앉아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고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마시고 여기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전에 으으으 그 전에 아 바닥에서 기어서 뭔가를 넘어 넘어... 넘어? 헉! 헉! 스물스물 올라오는 기억. 나는 바닥에 뭔가 넘고 또 넘어서 바닥을 기어서 아니 침대에서 기어내려와 넘고 넘었는데 분명? 그리고 화장실로 가서 토를 하고 그래 맞는데? 근데 이 기억은 뭐지?'
끊어진 기억 속에는 나는 전화를 들고 어디론가 노래를 부르며 전화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 내게서 전화를 뺏으려고 했던 기억도 났다. 아마도 연우였던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의 팔을 붙잡고 가지말라고 '경'이라고 말했는데.. 설마 그게 경윤? 아....? 하아... 그러니까 정리를 해보면 나는 바닥에 누워서 쓰러져서는 노래를 불렀고 전화를 꺼내 아마도 희경에게 전화를 했겠지.
그런데 전화를 받으려고 하면 폴더폰이니 자꾸 끊어지고 그러니 연우가 다시 전화를 했는데 희경이 욕을 하고 끊어버린 거고 그리고 경윤이 가려고 하자 내가 그의 팔을 잡고 늘어지며 '경' 끊지마라고 말하는 것을 끄지마라고 말한 것도 대충은 기억이 난다. 뭐라 발음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경 가지마'는 머리에서 울리고 있으니까.
아마도 그래서 경윤이 여기서 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왜 들어와서 아니지 왜 여기까지 따라 온 것일까?
" 내가 이래서 니가 불안하다는 거야. 꼭 물가에 내 놓은 애기 같아. "
그는 오자 말자 냉장고 문을 열더니 냉수를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는
" 왜 우리집에 오니 기억이 좀 나? 아직도 그 기억 찾는거야? 나한테 물어보지. 그날 멀쩡한 사람은 나혼자였는데!"
" 아니 난 너무 미안도 하고 오빠가 하도 화를 내니까..."
" 아니 그럼 화가 안나게 생겼어? 왠 놈이 너보고 남친이라고 우기지를 않나. 애는 사라져서 한참을 찾고 너한테 무슨 일 생길까봐 무슨일이 또 생기는 건 아닌지 내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그가 화를 냈던 퍼즐 하나가 풀렸다.
그가 가지고 있던 희든 카드.
바로 내가 그와 양평에 가서 나눴던 대화였다.
' 아 그게 화근이구나. 내가 괜히 영석이야기를 해서... 머리 좋은 연우는 이미 한 눈에 내 20살의 설치전에서 있었던 일들이 어느정도 그려졌겠구나. 아... '
나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괜시리 말을 해서는 그에게 내 상처를 드러내서 걱정하게 만들었네. 뜻모를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 왜. 왜그래. 미소야. 미안. 울지마. 화내서 미안해. "
놀란 그는 내게 다가와 눈물을 닦아주고는 나를 포근히 안아 등을 다독여 주었다.
" 그냥 궁금하면 물어보면 되지. 멀 그렇게 사람 속을 끓이냐. 젠장. "
그렇게 말하며 그는 거실로 나가 담배를 폈다.
그리고 그는 자세히는 아니지만 아주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그를 보고 내가 도망쳤고 당황한 그가 나를 쫒아나서자 경윤이 와서 그에게 달려 들었고 그런 사이 누군가 고성방가로 나를 신고했는지 경찰이 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소리나는 방향으로 갔는데 내가 있었고 나를 찾아서 데려오는데 나를 본 뒤부터는 마음이 놓인 건지 그제야 술기운이 오른 경윤이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고 했다.
아무리 집에 가라고 해도 연우보고 내가 그러니까 미소가 나쁜 놈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보낼 수 없다고 집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난리를 쳐서 어쩔 수 없이 둘다 집에 데려왔고 오빠 집에 온 걸 알고는 경윤이 나에게 희경에게 연락하라고 전화를 주자 내가 전화를 끊어서 그걸 말리고 수습을 했고 나를 침대에 눕혀 재웠는데 내가 중간에 화장실을 가면서 둘을 타고 넘어가서 둘다 잠이 깨서 다시 술을 한잔하고 잠이 들었고 그는 아침 일찍 깨서 월차를 쓰고 왔다고 했다.
" 이제 궁금증이 좀 풀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말없이 나를 다시 안아 등을 토닥토닥거린 뒤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는 한결 부드러워진 얼굴로 눈빛으로
" 애기 인제 집에 가자. 바래다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