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같은 걸음

그녀와 함께 하는 하루

by moonrightsea

눈을 뜨자 그녀는 내 품 안에 있었다.

길고 길었던 밤은 어느새 환한 햇빛으로 전혀 다른 새벽 공기를 드리우며 우리를 감쌌다. 내 팔을 배게 삼아 고이 잠든 그녀.


나는 살며시 옆으로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어느새 내게 몸을 돌려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이렇게 편안한 얼굴을 한 그녀를 본 적 있었던가.

그녀의 표정 하나만으로도 마음은 훨씬 홀가분하다.

'오늘은 그녀가 어디를 가든 함께 하리라. '


"으음.... 피식"


" 일어났어?"

" 응."

" 음. 집에 먹을 게 없어서... 아침... 먹을래?"

" 음... 응"

" 잠시만"


나는 그녀가 일어나기도 전에 화장실로 향했다.

미친 듯 재빠른 속도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그렇게 말끔히 면도를 하고 거울을 연신 몇 번을 보고 턱을 이리저리 만져 보고 말끔해진 얼굴을 확인한 후 방으로 향하자 그녀는 침낭을 개어 방구석에 가져다 두었다.

" 응? 웬일로 이렇게 말끔해 지셨지?"




그녀는 두 손을 뻣어 내 얼굴을 당긴 뒤 면도를 한 내 턱을 볼로 가져다 대며 문질러 대더니

" 아 이제는 안 따갑네. 히히. 좋다. 쪽."


그렇게 말하며 발끝을 들어 내 볼에 입을 맞췄다. 낯선 그녀의 살가움. 어제 보았던 그녀의 살기는 어느새 눈가에 사라지고 그녀는 애띈 20대 수줍음을 머금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며 방긋 웃었다.

그리고는

" 그럼 나도 씻어야겠다. 말끔히. "


그렇게 말하고 화장실로 향했고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당황하고는 얼른 방구석 수건을 들어 그녀에게 건넸다.

" 저..."

" 응?"


" 나올 때 옷 입고 나와. "

" 방긋"


어느새 내 얼굴에 느껴지는 열기.


나는 그녀에게 들키지 않으려 고개를 돌려 베란다 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애써 어떤 메뉴를 먹을지 어디가 좋을지 생각하려 애를 썼다.

' 아 하필이면 아침이라... '


' 흐음...'

웃으며 화장실로 들어가는 그녀를 나도 모르게 바라보다 시선을 떨구고 바닥을 바라보다 놀라 다시 고개를 돌려 베란다를 바라보고.... 다시 메뉴를 생각하고... 흠... 생각을 돌려야 하는데... 서둘러야겠다.




" 어디가?"

" 주문진. 한숨 자. 도착하면 깨워줄게."


" 금방 갈 텐데. 뭐. 하아 좋다."


어느새 그녀는 창문을 내려 바깥 상쾌한 아침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내게도 전해지는 그녀의 상쾌한 공기. 어느새 내 샤워코롱 향 사이로 파고든 그녀의 살내음과 겹쳐 전해지는 숨어 있던 풋풋한 라벤더 향.


" 이 향기 말이야. 음... 라... 벤더...?"

" 어떻게 알았어? 내가 라벤더 좋아하는지?"


" 아 희미하게 항상 네 몸에 베인 그 향이 느껴져서..."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갑자기 팔을 들어 킁킁 냄새를 맡더니 머리카락도 냄새를 맡아보고 그리고 내게 다가와 내 몸에도 킁킁 냄새를 맡아댔다.


" 이상하다. 어제는 안 뿌렸는데...?"

" 음 네가 곁에 다가오면 희미하게 그 향이 잔상으로 남아. 그래서 멀리서도 그 느낌이 향으로 느껴져."


" 우와. 신기해. "

" 왜?"

그러자 그녀가 뭔가 골똘히 생각을 하는 듯 다리를 꼬며

" 음. 내가 니네 집에서 잠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사용 안 하고 있거든. "


그러고 보니 그녀가 우리 집에서 머문 지도 며칠이 되었다.

" 벌써 며칠째 우리 집에 머물렀잖아."




" 그러니 신기하다는 거지."


나는 갑자기 궁금했다.

" 그럼 그 전에는 어디서 지냈어?"


그러자 그녀가

" 음. 뭐. 셀 수도 없는 많은 곳에서 지냈지."


" 음. 잠은 자고 다녔던 거야?"

그녀는 고개를 갸웃대더니 한 참을 묘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다 나를 바라보며,

" 음... 훗. 글쎄?"


라며 의문스러운 답을 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내가

" 근데 오늘은 일하러 안 가?"


" 음. 다행히도. 오늘은 토요일이네?"

그녀는 눈을 찡긋 하며 웃어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 아. 내가 요즘 너무 정신이 없었구나. 너 때문에. "


" 알긴 아는구나. 그러면 나도 너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건 알겠네? "

" 후훗. 그렇지. "

그렇게 말하며 내가 한 손으로 운전석을 잡고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자 그녀가 나를 살며시 바라보며 내 손을 가져다 대며 입을 맞췄다.


" 그렇다고 이렇게 농땡이 부려도 되나요?"




" 아 그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

내가 의기양양해하며 말하자 그녀가 깜짝 놀라 나를 바라봤다.


" 뭐 그리 놀랄 건 없어. 지난번 화재 때문에 또 너랑 같이 있었던 일들도 있고 내가 소방서에서 평소 모습과 좀 달라 보여서 병가를 냈어. 우석이가. "


그녀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어봤다.

" 당신 병가를 우석 씨가 왜?"


" 그거야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 그 녀석 내게는 형제 같은 놈이거든. 유일한 친구이자, 피붙이 같은 놈이라 말은 좀 많아도 항상 잘 챙겨주고 걱정해 주고 그래. 내가 많이 힘들어하니까 병원도 가고 하라고... 암튼... 그래 된 거. 농땡이 좀 부려 보려고. "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손을 들어 입을 맞췄다. 그러자 그녀가 두 손으로 내 손을 살며시 감싸 쥐며 눈을 반짝이며 바라봤다.

" 오. 그럼 오늘은 정말 기대되는 하루가 되겠는데?"


" 응? 뭐 주말이 주말다워야지? 안 그래?"


행복한 표정의 그녀.

그녀를 바라보고 그녀를 만나고 이렇듯 그녀의 얼굴이 행복한 웃음과 설렘으로 가득 찬 것을 본 것은 처음인 순간. 놓치고 싶지 않은 오늘.



주문진 항은 사람들로 붐비고 차들로 빼곡히 들어차 주말임을 실감케 했다.

한참을 돌아 주차할 곳을 찾은 우리는 손을 잡고 다정히 다시 팔짱을 끼고 이곳저곳 둘러보며 바닷가 늘어선 점포들을 지나 시장으로 들어섰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며 혹여 어깨라도 그녀가 부딪힐까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때로는 그녀를 내 품에 안아 품어가며 방금 진열해 둔 신선한 생선을 구경도 하고 대게도 구경하고 그렇게 시장 안을 둘러보고 나와 근처 횟집으로 가서 그 앞에 수조에 있던 신선한 매운탕 거리를 고른 후 사장님께 주문을 하고 가게 안에 자리를 잡았다.


" 아침부터 회는 별로지?"

" 음. 난 생선은 싫어. 회는 질리도록 먹어서. 매운탕은 좋아해도."


" 응? 회는 싫은데 매운탕은 먹어?"

" 매운탕은 바다에는 없잖아?"


" 응?"

" 후훗. 그런 게 있어. "

그녀는 알 수 없는 말을 한 채 손을 번쩍 들었다.

" 자 그럼.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 아침부터 술은 왜?"

" 음. 오늘은 술이 필요해. "


이윽고 매운탕이 나오자 그녀는 매우 흡족한 얼굴을 한 채 한참을 연기가 솔솔 올라오며 보글보글 끓고 있는 그 냄비를 열심히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내가 다 받아주겠어. 오늘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이내 숟가락을 들어 한 입 입에 넣고는

" 으음. 좋다! 자 먹어 보자고."

이렇게 말하고는 소주를 유리컵에 부어 한입에 털어 넣고 엄청 기분이 좋은 얼굴로 매운탕을 후후 불어가며 먹었다. 그러다 급기야 국물에 밥을 말아 열심히 먹었다. 맛있게 먹는 그녀를 보자 다음 장소가 문득 궁금해져서

" 음. 이거 먹으면 어디 좋은 곳으로 가보지? 가고 싶은 곳이 있어?"

" 음. 정해진 곳이 있어. 불국사."



" 거긴 왜?"

" 아 거기서 만나야 할 놈이 있어."

" 응? 거기에? 아는 사람이 있어?"


" 후훗. 응."

" 아... 아는 사람이 멀리 있구나...?"

" 음? 그런가? 후훗."


식당을 나와 나는 서둘러 차를 몰았다.


고속도로는 차들로 길게 이어져 한참을 정체되었다 또 속도를 내었다 반복되다 결국 경주에 들어서자 어느새 도로에서 한참을 느린 걸음으로 차들이 움직였고 나는 초조하게 왼손에 찬 시계를 바라봤다.

벌써 아침을 먹고 출발했던 주문진에서 한참을 지나 오후 2시가 다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거의 목적지에 다 와가는데 왜 이리 나는 초조하기만 할까. 하루가 너무 짧게만 느껴진다.


아직 그녀와 한 게 아무것도 없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문득 그런 생각에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창밖의 나지막하게 이어지고 있는 왕릉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 무슨 생각해?"

" 음. 옛날 생각."

" 후훗. 여기 오니 어렸을 때 생각이 나? 수학여행? 아니면 부모님과 여행?"

" 아니. 더 옛날 일들. 이곳에서 지냈던 아주 옛날 일들. "


그녀의 말을 듣자 문득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어젯밤 꿈이 생각났다.


" 음. 어제 말이야? 나 꿈을... 꿨는데..."

그러자 그녀는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 음. 아니다. 생각이 안 나서. 막상 꿈에서 깨니 그 생생하던 꿈이 기억이 안 나네."

" 무슨 꿈이었길래? 좋은 꿈이야? 아니면 안 좋은 꿈이었어?"





" 글쎄... 도통 생각이 나지 않네. 그게. "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씩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 뭐 그럴 수 있지. 평범한 인간의 머리로는 후훗. "


" 흠. 뭐 그런 너는 매우 특별한 인간인가?"

내가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어깨를 당겨 확 끌어안았고 그 순간 핸들이 잠시 휘청거렸다. 그러자 그녀가 깜짝 놀라며

" 조심해.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불같이 화를 내며 고함을 질러 나는 순간 놀랐고 그녀를 바라보자 이내 그녀는 '후우' 하고 한숨을 쉬더니

" 난 소중한 몸이라고. 조심히 다뤄야 해. 아직 내가 못해 본 게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말하며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방긋 웃어 보이며 당황해하는 내 얼굴에 입을 맞췄다.

" 자. 이제 화 안 낼 테니. 운전에 집중. 그래도 다행이네. 정체 구간이라. 휴우."


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내 볼은 어느새 붉어지고 있었고 그 열기로 인해 창문에 어느새 옅은 성애가 끼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가 창문을 열며,

" 후훗. 이 겨울에 열기라니... 이 정열의 사나이 봐요. 어떻게에."


그렇게 말하며 살며시 내 허벅지에 손을 올리더니 이내 꽉 움켜쥔다.

" 허튼 생각은 하지 말고 딱 운전에 집중해. 알았지?"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의 목에 둘렀던 빨간 목도리를 풀어 내 목에 둘러 주었다. 그러면서 다시 내 허벅지에 손을 올려 쓱 만져 대면서

" 흐음. 이 기모바지는 잘 입구 다니네. 그때 잘 샀어. 매우 만족해. 후훗. "


그렇게 말하며 나를 흘기듯 바라봤다. 연신 그녀를 힐끗힐끗 바라보자

" 자자. 집중. 운전. 앞. 앞. 자자. 좌회전"



불국사 입구에 다다르자 돌계단이 나왔다. 그녀는 정문에서 절을 하고 다시 돌계단 입구에서 절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돌계단 입구를 지나 올라갔다. 출입이 금지된 곳.


주변의 수많은 관광객들이 그녀를 바라보자 일순간.

시간은 그대로 멈췄다.


그리고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홀연 웬 스님이 문 뒤로 나타나 그녀를 맞이했다.

나는 멍하니 그들을 바라봤다.


" 오셨.... 습니까?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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