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짊어진 삶
" 그간 고생이 많았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고 그 순간 다시 시간이 움직이는 듯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옆으로 난 작은 문을 돌아 서둘러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나이가 꽤나 많이 들어 보이는 스님의 곁에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어갔다.
" 그대가 여기 있지 않았으면 내가 오지 않았을 터. 그대의 고집도 참..."
" 마마님께서 오실 줄 알았습니다. 덕분에 저희도 이렇게 이 땅에 자리를 잡고 수많은 시간을 버티며 이 많은 중생들의 업보를 짊어지고 지내올 수 있는 것이 아니옵니까? 마마."
그러자 그녀는 이내 안타까운 표정으로 스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 그대. 이제 그대도 마음의 짐을 그만 내려놓구려. 이제 그만하면 되었으니. 이제는 마음 편히 그간의 업을 내려놓고 평범한 인생을 살아. 사랑도 하고 행복도 느끼고 누군가의 가장도 되어보고 누군가의 아내도 되어봐야지. 소중한 사람아."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스님은 두 손을 모아 염주를 받쳤던 한 손을 들어 턱의 수염을 쓸어 넘겼다.
" 마마께서 저희를 지키려 그 긴 시간을 고생하셨는데 저 같은 한낯 미천한 목숨.
뭘 그리 염려하십니까.
이만하면 저 또한 행복한 삶을 살아왔고 이곳에서 저들의 행복을 바라고 지키고 또 그렇게 천년을 지키고 있어도 좋습니다. 우리 후손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큰 행복인 걸요. 마마."
" 되었네. 이제 그만하면 되었어. 그대의 짐도 이제 내가 짊어지고 그 원망들도 이미 거둬갔으니 이제 이 곳은 저들에게 넘겨주고 마음 편히 지내게나. "
" 고맙습니다. 마마.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셨을 터인데. 편안히 쉬시고. 마마의 마음 충분히 받자옵고 저는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
스님은 그렇게 말하며 홀연 연기처럼 법당 안으로 사라졌다.
내가 서둘러 스님이 사라진 법당을 따라 들어서자 그의 흔적은 없고 법당 안은 절을 하고 기도를 하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부처상 앞에 염불을 외고 있는 60대쯤으로 보이는 스님이 앉아 있었다.
법당 안으로 들어선 나는 절을 하고 시주를 하고 그렇게 다시 백팔 배를 하고 나와 그녀의 곁에 다가섰다. 그러자 그녀는 입을 열었다.
" 김대성"
" 그 분은 그럼 이제 편안해 지신 건가?"
" 그거야 그이의 선택이니 내 알바는 아니지. 다만 내가 그들에게 주었던 업보를 그들이 잘 지켜 나가고 있다고 하니 그들의 일은 다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잘해나가겠지. 그러니 내 볼일은 이제 끝이야. 여기서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법당 앞에서 부처상을 바라보고 절을 하고 뒤돌아 불국사를 빠져나왔다.
차에 오른 그녀는
" 배가 고픈데?"
해맑게 웃는 그녀.
" 음... 흐음. 여기는 내가 아는 곳이 없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며 네비에 근처 맛집을 검색하자 그녀는
" 맛있는 펜케이크 같은 게 먹고 싶어."
" 찾아볼게."
그녀의 주문에 나는 호텔을 검색했고 그런 나를 보더니 그녀는
" 음. 카페가 나을 거 같은데?"
주말이라 어디를 가도 차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가는 곳마다 가게는 사람들이 가득 찼고 전망이 좋은 곳은 어김없이 자리가 없을 만큼 붐비고 여기저기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 네비에 엠버서든 찍어봐."
그녀의 주문에 나는 검색을 하자 경주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울산이 나왔다.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살며시 웃어 보이며 내 팔짱을 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 오늘은 저기서 자면 되겠네?"
나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고개를 돌려 바로 운전을 시작했다.
막히는 길 따위는 그저 개나 줘버려라. 아직 밤이 오려면 한참이 남았고 이제 시간은 겨우 오후 3시가 조금 지났는데도 나는 미친 듯 두근 거리는 심장 소리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내 눈에는 아니 내 머릿속에는 어서 가서 숙박을 끊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러면서 차를 몰아 국도로 들어섰다.
" 우회전. 우회전입니다. 목적지까지는....입니다. 잠시 후 감은사지입니다. "
네비에서 감은사지라는 말이 나오자 그녀는 급히 내 어깨를 쳤다.
" 좌회전! 좌회전! 저 길로 진입!"
" 응? 목적지는 직진인데?"
" 아냐. 저기 가야 해. 감은 사지!"
" 응? 거기는 왜?"
일단 그녀가 주문한 대로 나는 좌회전을 해서 나지막한 산을 뒤로 커다란 탑이 두 개 세워진 감은사지 절터 입구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차를 멈추고 차에서 내리자 왼편으로 너른 평야, 오른쪽으로 바다가 보이며 그 사이 높고 끝이 뾰족한 탑이 제법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 너른 터가 한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는 탑을 따라 돌며 공양을 올렸다.
그리고 다시 그 곁에 서 있는 고목이 된 나무 두 그루를 마주 보고는 서 있었다.
하나는 제법 둥치가 크고 두껍고 검은 껍질로 제법 크게 퍼져 뻗어 있고 하나는 제법 흰 속살을 드리운 가녀린 나무. 둘은 사이좋게 나란히 서 있었지만 곁으로 다가가 옆에서 바라보면 마치 그 가녀린 나무는 온몸을 다해 그 굵은 나무를 밀어내듯 보였다. 신기한 부부 나무.
그녀는 조소 어린 눈빛으로 두 나무를 바라보고는 잔뜩 화가 난 듯 어디론 가 향했다.
구석을 돌아 한참을 올라가 그녀가 이른 곳에는 암자가 있었고 그녀는 아무 말도 않고 그 암자 안으로 들어섰다. 나도 서둘러 그녀를 따라 암자 앞으로 향했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한 채 덩그러니 문 밖에 서 있었다. 내가 들어서기에는 너무 좁은 그곳.
안을 둘러 보고 있자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부좌를 하고 앉아 염불을 외던 스님이 말을 했다.
" 왔으면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게 먼저인 그늘. "
스님이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대뜸 화를 내며 말했다.
" 네가 이런 곳에 숨어들면 모를 줄 알았더냐."
" 어디 감히 만파식적 주제에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게야."
스님은 이윽고 몸을 돌려 천천히 일어나며 그녀를 보고 말했다.
법당 밖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서 있던 나는 그를 보며 그만 깜짝 놀랐다.
턱까지 내려온 긴 눈썹. 가슴팍까지 내려온 하얀 턱수염. 턱까지 닿을 듯 늘어진 귓불. 마치 금방이라도 탱화에서 튀어나올 듯한 그의 인상은 어디서 본 듯한 모습.
" 합부로 말하는 것은 그대 이거늘.
그리 말한다고 내가 니 아비가 말한 대로 만파식적이 될 줄 알았더냐."
그녀가 매섭게 쏟아 붙이며 그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스님은 그녀의 눈빛을 외면한 채.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스님은 그렇게 말하며 염주를 굴렸고 그런 그의 목에 허리까지 늘어진 염주가 걸려 있었다. 얼마의 시간을 그는 살아온 것인가.
" 만파식적이여.
그대도 한낯 같은 핏줄이거늘. 생의 연은 정해져 있는 법. 우리의 업도 마찬가지이고. 그대가 말한 대로 그대의 백성들이 내 나라의 민이 되고 피와 살이 되어 이제는 한 몸이 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대도 그대의 역할을 해야지. 나라가 어지럽고 백성이 죽어나가는데 그대는 응당 그들을 구해야 하지 않은가?"
그는 다소 노여운 얼굴을 하며 그녀를 노려봤다.
" 내 생의 업을 나는 몇천 년 업으로 갚았고 그대들에게 내린 내 저주는 이미 오래전에 거둬들였다. 그 덕에 그대들은 이 땅에 영생을 누리고 부귀와 영화를 누려 온 것이 아니냐?"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그의 긴 염주를 한번 들어 보더니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삶은 지속되고 앞으로도 반복되는 것.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이 땅의 자손들이고 그대와 나의 핏줄이 아닌가? 만파식적이 된 것도 내 아비의 명이 아니라 하늘의 명인 게고 응당 그대의 업보이니 그대는 당연히 바다에서 나와 그 업을 행한 것일 뿐인데 왜 그리 모든 것을 우리에게 탓하는 겐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녀가 나를 바라보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법당 밖 문 앞에 서 있던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 나지막한 언덕 아래로 들어선 건물 뒤 멀리 도로 또 그 뒤에 펼쳐진 바다. 그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를 다시 바라보자 그녀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스님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 그대의 아비가 물어간 내 몸은 이미 저 바다를 오랜 세월 유영하며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했고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다시 돌아온 이 땅에서도 이미 수많은 생과 사를 목도하였네.
내게 붙였던 만파식적이라는 말은 이제 그만 그대도 물려야 할 때란 말이야. 이제는 시대도 바뀌었고 세상도 달라졌어. 언제까지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고 그리 지낼 겐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은 그대들이 아닌가."
그녀의 말에 스님은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녀는 호기롭게 웃어 보이고는
" 그대의 운명이 그렇다면 그대는 그대의 업을 따르게나. 나는 내게 주어진 운명을 헤쳐 나갈 테니. 이제껏 몇천 년을 버텨도 나는 내 운명을 정면으로 맞서오며 지내왔지 순응하지는 않았네.
그렇다고 거스르지도 않았지.
그러니 더 이상은 내게 만파식적이라는 허울 따위 뒤집어 씌우지 말고 그대들의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만파식적을 찾으시게나.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대들의 만파식적이 아니니 말일세. "
그녀의 단호한 말에 스님은 긴 생각에 잠기는 듯하였다. 이윽고
" 흠."
긴 한 숨을 쉰 뒤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 그대의 뜻이 그렇다면 이제는 더 이상 그대에게 기대지 않겠다. 그대가 내려놓은 업보인 이상 그 업은 이제 다른 이에게 갈터이니 우리도 기다리는 수밖에. 하지만 명심하게 주어진 업보를 물리면 그만의 대가는 따르는 법."
왠지 모를 저주 같은 그의 말이 귀에 거슬린 것은 나만이 아닌 듯했다.
" 그대가 나라를 생각하고 백성을 섬기는 마음은 내 높이 사네.
하나 그대의 생이 나로 하여 죽음에 임한 것이 아니고 그대 탐욕으로 말미암아 망한 것이고 하늘은 나의 저주로부터 백성들을 안타까이 여겨 그대에게 기회를 주어 다시 그대가 나라를 생각하고 아끼고 백성을 돌볼 수 있도록 하늘의 뜻을 품은 문무왕의 아들로 태어나게 해주지 않았나.
그걸로 우리의 연은 끝이 난 것이요, 나의 업보도 내려놓은 것이니 내게 더 이상 국운을 운운하며 강요는 말게나.
이번 생은 이번 생만큼은 나도 그저 평범한 여인으로 태어나 사랑받고 사랑하며 누군가의 사람이 되어 평범한 삶을 살아볼 것이다.
저 절터에 앙숙 마냥 밀어내며 천년이나 버텨 온 고목이 긴 세월 다시 만나 연리지가 되면 그때 내게 찾아오게나.
그렇다면 내 그대를 진정 내 낭군으로 받아주지. 진심으로 말이야. "
그녀는 스님의 어깨에 손을 올려 그의 등을 한번 어루만지고는 그렇게 뒤돌아 밖으로 나와 내 손을 잡고는
" 가자. 이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내가 있을 곳도 아니고. 앞으로도 더더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