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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rightsea Oct 14. 2023

#1-19. 다섯 번째 별

믿는 존재

" 머리는 어디서 이런 거야? 이런 지경이면 응급실로 가든지. 경찰서로 가든지. 이새끼야. 너 재정신이야?"

집에서 내 전화를 받고 나온 형은 그렇게 불같이 화를 내며 나를 강하게 이끌며 차에 태우려 했다. 그런 형을 뿌리치며 나는


" 난 괜찮아. 그러니 미안하지만 나 말고 저 여자가 더 급해. 저 여자 좀 제발 봐줘. 사정이 있어서 그래. 다른 병원에는 갈 수가 없어. "


잔뜩 화가 날대로 나서 이글거리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형은 내가 차문을 열고 서우를 보여주자 이내 놀란 눈으로 차안으로 달려 들어 의식을 잃고 쓰러진 그녀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그리고 이내 급히 전화를 걸더니,

" 따라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병원으로 안내했다.


형은 서울 근교에서 신장핼액투석 전문병원을 운영 중이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페이닥터였는데 결국 독립해서 거의 대출이기는 했지만 꽤나 베드가 많은 규모있는 병원을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름은 성공한 원장님 소리를 들었지만 그런 형에게 나는 인연을 끊은 없는 존재.


 어려서 수재였던 형은 늘 부모님이 금이야 옥이야 힘든 가정형편에도 과외에 학원에 온 집안의 돈이란 돈을 다 끌어다 서울에 유학까지 보내며 뒷바라지 했고 집안의 자랑거리였다. 그런 형에 치여 나는 늘 돈을 투자할 가치도 없는 공부도 뛰어나지 않고 뭐하나 잘하는 것 없는 그저 그런 아이였다.


 어려운 형편에 아버지께서 무리하게 저녁 배달까지 다니시다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나는 지방 국립대에 입학을 하고 일년 만에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내 학비는 고사하고 형의 학비를 버느라 늘 정신이 없었고 그런 와중에도 형은 늘 공부한다며 과외도 한번 안하고 의대를 다니며 있는 집 아들 행세를 하며 돈을 썼었다. 형의 목표는 성공이었고 그런 형에우리 형편치부였기에 부모님은  늘 미안한 마음으로 형을 대해 왔었다.


 하지만 지칠대로 지친 내가 결국 잠수를 타며 군대를 가버리고 아버지께서는 힘겨운 병원비에 결국 퇴원하시고 몇 해 못버티시고 돌아가시자, 결국 형도 휴학계를 내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고 그 덕에 형의 성공을 향한 일정멀어졌다.

 그리고 제대를 하고 고시원에 있던 내게 찾아와 전세 방이라도 구하라고 형이 주었던 돈과 내 등록금을 친구에게 사기 당하고 우리는 한동안 원수처럼 지냈다.


 형의 눈에는 그저 참을성과 인내력 없이 자신의 인생을 발목 잡은 철없는 동생이었고 그런 자신을 끝까지 뒷바라지 한 어머니와 함께 사는 대신 나와 연락조차 못하게 하며 미친 듯 일에만 빠져 지내며 우리는 연락도 않고 지내 왔었다.


 그러다 형이 결혼을 하고 조카가 태어나며 조금씩 변화가 생겼었다.

 형수가 조카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찾아왔었고 그런 형수와 형을 보며 나도 마음을 다잡고 대학을 졸업하고 몇 수를 하고 공기업에 합격한 후 늦은 입사였지만 나름은 최선을 다해 성공하리라 마음을 먹었었다. 그리고 미친 듯 일에 투자에 빠져 지냈었다.


 그런 내게  따스 대해 주던 형수가 소개해줬던 사람이 전 아내였다. 형수 오랜 친구의 동생이었던 전 아내.


하지만 전 아내와 헤어지며 결국 형과 형수 사이도 틀어졌고 형과의 사이도 다시 예전처럼 되돌아 가 버렸다.

나는 돈에 미쳐 가족을 버린 천하의 파렴치한 놈이 되어 버려서 그런 시선이 싫어 정말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끌어 모아 그녀에게 위자료 랍시고  버렸다. 그런 돈 따위 내 인생에서는 애초에 없었던 돈이란 생각에.


하지만 막상 서우가 쓰러지자 머리 속에 갈 수 있는 병원이 떠오르는 곳은 형의 병원 뿐이었다.

나름 신장 투석 병원이지만 대학병원에서 교수까지 했었고 무엇보다 그녀의 신변보호를 위해 믿을 만하고 갈 수 있는 곳은 이 곳 밖에 없었다. 적어도 형이라면 별 말 없어도 될테니까.




" 다른 건 검사해 봐야 알겠지만 일단 의식이 없는 거라 신경 안정제 투여해뒀고 내일 날 밝는 대로 큰 병원에 가서 검사해봐. 둘이 무슨 사이야? 무슨 일이 있었길래 네 머리는 찢어져서 피를 흘리고 저 여자는 기절을 해서 병원에 실려와? 그리고 왜 다른 병원에 못가는 거야?"


" 원래 나한테 별 관심 없잖아. "

" 그래. 애초에 물어본 내가 병신이지. 새끼. 내일 날 밝는대로 나가. 오늘만 봐줄테니까. 김간호사. 날 밝는대로 저 둘 다른 환자들 보기 전에 퇴원시켜요. "


" 네. 알겠습니다. 원장님. 들어가세요. "

 형은 그렇게 말하고는 이내 들어가 버렸다.


" 여기 앉으시죠. 머리 치료받으셔야 해요. "


김간호사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거울을 보니 얼굴의 절반이 피범벅이었다. 왜 몰랐을까. 내 얼굴이 이지경이었는데... 난 왜 내 고통은 하나도 안중에도 없었을까. 왜 그녀는 쓰러진지 5시간이 다되어가는데 이 난리에도 아직도 못깨어나고 있을까.


" 저기... 저 환자는 괜찮은 건가요?"

" 원장님이 퇴원하라신 거면 큰 문제 없는 걸 거에요. 성격 아시죠? 어지간히 위급한 상황이었음 아마 계셨을 거에요. 그러니 너무 염려 마세요. 되려 환자분이 더 크게 다쳐 보이시는데... 괜찮으세요? "


" 아 저 사람이 쓰러져서 너무 놀라 정신없이 달려오는 바람에... 저는 괜찮습니다. 아."


" 이제야. 아프신가 보네요. 부분 마취제 쓰긴 했는데... 원래라면 이런 건 의사선생님께서 직접 하셔야 해요. 우선은 지혈 된 상태라 벌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상처를 봉합해 뒀으니 내일 성형외과나 피부과 가서 마저 치료 받으셔야 해요. 아셨죠?"

" 네. 감사합니다. 갑자기 들이 닥쳐 죄송합니다. "

" 괜찮아요. 어차피 당직이라서. 잠은 어떻게 저 환자분 곁에 계실건가요?"

" 네. 우선은 깨면 말씀드릴게요. 그 전에는 곁에 있겠습니다. "


" 신경 안정제 투여해서 아마도 잠든 걸거라 안정되면 깨실 거에요.  환자분 깨면 불러주세요. "


김간호사가 나가고 나는 그녀가 깰까 조심히 문을 열고 통로로 나와 김부장에게 전화를 했다.

한참을 전화 벨이 울리다 받은 김부장은

" 음... 여보세요... 아....이과장....  도대체 지금이 몇시...아 .. 새벽 3신데... 왜 술마셨어? 왜 안하던 짓을 하고 그래?"

" 죄송합니다. 형님. 저 지금 급히 서울 병원에 와 있어서 부득이 내일 연차를 내야 해서요. 급히 연락드립니다. 잠깨워 죄송합니다. "

" 뭐? 병원? 무슨 일이야? 누가 죽었어?!"

놀란 김부장의 말에 곁에서 잠들었던 김부장의 와이프 목소리가 들려왔고

" 뭐? 누가 죽었어요?"


" 아냐. 여보 자. "

이내 목소리를 죽인 김부장이,

" 뭐야. 무슨 일인데?"


" 아 자세한 건 차후에 말씀 드릴게요. 죄송합니다. 내일은 제가 너무 경황이 없을 것 같아서 혹시 바로 전화 못 드릴까봐요. 별일은 아니고... "

" 뭐. 일단 알았어. 내일 회사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해둘 테니 시간 되는대로 전화해. 알았지? 큰 일은 아닌거지?"

" 네. "

" 그래. 알았어. 일단 밤이 늦었으니. 하암... 자세한 건... 내.. 일 통화하지. 뚝. "


' 휴우~'

김부장과 통화를 마치고 들어오니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잠이 쏟아졌다. 나는 서우의 병원침대에 기대어 어느새 잠이 들어 버렸다.




" 휘우씨~ 휘우씨~"

서우의 목소리에 잠이 깨 보니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내가 놀라 벌떡 일어나 그녀의 머리를 짚어보고 이리저리 돌려보며 그녀가 어디 다른 곳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을 한 후 다시 간호사를 호출하는 버튼을 누르고 곧 김간호사가 와서 링거줄을 빼주며  조금 더 안정을 취하고 오전에 퇴원하면 된다는 안내를 듣고 난 후에야 그녀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 여기 어디에요?"

" 구리시에 있는 병원요."

" 구리시요? 여기 어떻게...?"

" 어제 서우씨가 거기서 쓰러지는 바람에 너무 놀라서 아는 병원이 여기뿐이라 일단 데려왔어요."

" 아... 그냥 집이나 근처 병원에 가셔도 되는데..."

" 어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고 어떻게 거기 있어요. 무슨 일을 당할지 알고. 그 사람들이 누군지 알지도 못하고 얼굴 제대로 못봤는데..."


" 그래서 그 밤에 여기까지 온거에요?"

" 네. 다행히 서우씨한테는 별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괜찮은 ... 거에요? 어제 그 소리를 듣고 쓰러져서 너무 놀라..."


" 아... 그 소리..."

그녀는 어제의 기억에 조금 머리가 아픈지 손으로 한쪽 머리를 감싸  고개를 숙이고는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 아직도 머리 아파요? 괜찮아요?"

" 아.. 괜찮아요. "


걱정 어린 눈으로 그녀에게

" 다행히 몸에는 큰 이상은 없는 것 같던데 내일 날 밝는 대로 검사하고 가요. "

라고 말하자,


그녀는 문득 생각이 난 듯

" 괜찮아요.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요."


" 전에도요? 언제.. 아니 어디서요?"

" 예전에 전 남자친구가 죽었을 때요. 그때도 쓰러졌었어요. "


" 그때도 소리를 들었던 거에요?"

" 그건 아닌데... 그 소리는 그보다 예전에 아주 어릴 적에 어머니따라 갔다가 들었었어요. 그때 생긴 트라우마가 있다보니 그런 소리에  이상반응을 일으켜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었어요."

" 트라우마요?"

" 네. 아마 어제 저희가 목격했던 상황이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가서 겪었던 상황과 유사했었나 봐요. 그리고 그 소리도..."


그리고 이내 그녀는 다시 머리가 아픈 듯 인상을 찌푸리며 이마를 움켜쥐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는 다시 자리에 눕혔다.


" 미안해요.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생각나게 해서..."


그러자 그녀는 다시 자리에 일어나 앉으며

" 아니에요. 이제 정말 괜찮아요. 그것보다 출근해야하는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내려가야죠. "

" 아뇨. 회사에는 연락했어요. 날 밝는대로 서우씨도 회사에 오늘 연차를 내요. 이 참에 검사 좀 받고 오늘 지나면 내일은 주말이니 좀 쉬세요. "


" 그럼 조금만 더 누웠다 일어날게요. "




아침 7시.

회진을 하러온 형이

" 너 아직 안가고 뭐했어?"

" 이제 가려고."

" 새끼. 밥은 먹었어?"


" 나가서 같이 먹을게. "

나는 그렇게 투명스레 말하고는 서우를 부축해 나오며 형의 곁을 지나오다, 문득 형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어제 일은 고마워. 전화할게."

" 잘 지내면 됐어. 새끼야. 연락하지마. 그게 더 나아. 다른데 가서 치료나 좀 받고. "


" 응."


그렇게 병원을 나서 차에 오르자 그제야 서우는 내게 물어봤다.

" 형이었어요?"

" 네. "


그러자 그녀는 아무 말없이 나를 꼭 끌어 안았다. 그리고 내 등을 다독여 주었다. 내가 놀라 고개를 돌리려 들자, 그런 내 머리를 그녀는 가만히 쓰다듬었다.

" 가끔은 힘들면 이렇게 기대도 되요. "




병원을 나서고 보니 이른 아침.

막상 어디로 차를 몰아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든 그녀에게 아침은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고속도로 바로 입구에 보이는 휴게소에 들러 그녀와 해장국을 먹었다. 그리고 커피를 사들고 차에 올라 라디오를 틀었고 라디오에서는 아침을 알리는 경쾌한 음악이 흘러 나왔다. 커피를 양손으로 쥐고 있던 서우가 골똘히 생각을 하더니 핸드폰을 들고 망설이고 있었고 나는 문득 그녀가 오늘 출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냥 포기해요. 지금 가도 지각일텐데."

" 그게 그렇게 쉽게 빠질 수 있는 직장은 아니에요. 제 업무 특성상. "

" 그렇기는 해도 어째든 어디에든 유도리라는 건 있기 마련이니. 잘 생각해 봐요. 이왕 이리 된거 방법이 있겠죠. "


 내 말이 조금은 도움이 된 것일까. 이내 그녀는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가 싶더니 내가 라디오 소리를 줄이자,

" 네. 본부장님. 급히 휘우씨와 구리시에 오게 되어서요. 죄송합니다. 네. 그럼 부탁드립니다. "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 그렇게 사적인 이야기까지 다 보고해야해요?"

" 아무래도 제가 부탁드리는 입장이니까요. 사적으로 아는 분이기도 하고. 제가 그나마 한국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분이기도 하구요."

" 아... 음. 그 말은 조금 섭섭한데요?"

" 뭐가요?"

" 그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란 말요. "

" 네?"

" 사실 그게 저 말고 다른 사람이란 게 조금 질투가 나네요. 하하하하."

나름은 어색하지만 본의 아니게 속마음을 말해버려서 조금은 나자신도 당황했다. 아니 그렇게라도 그녀가 조금은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내 마음을 알기는 하는지 듣기는 했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 어제는 고마웠어요. 여러므로 신세를 지네요. 자꾸. "

" 아뇨. 전 괜찮대도요. 진짜.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요. "


" 그럼 이제 어디가죠?"

" 음. 일단 서우씨 검사를 좀 받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 그건 안돼요."

" 왜요?"

" 저희는 정해진 기관이 따로 있어요. 다른 곳에서 하면 본부에 연락이 들어가요. 그래서 조금 상황이 복잡해져요. 가뜩이나 업무시간도 지키지 않고 이렇게 무단으로 결근한 상태라...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고. 아무튼 그것보다 휘우씨 병원이 먼저 인거 같은데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 위에 붙여진 붕대로 손을 뻣었고 그제야 나는 화들짝 놀랐다.

" 아앗."

" 저 아직 손도 안댔거든요? 음. 그 병원에서 응급처치는 했는가 보네요? 어제 나오면서 부딪혔나봐요?"

" 저 얼마나 아팠다구요. 진짜 피도 엄청 났어요."


내가 아이마냥 투정을 부리자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서우는

" 풉. "


하고 웃었다. 그런 서우를 보며 나도 껄껄껄 웃었다. 그러자 이내 그녀는

" 이제 조금은 솔직한 모습을 보이시네요. 우선 병원부터 가요. 그래야 제 무거운 마음이 조금 덜 미안할 것 같아요. 네? "

" 뭐. 서우씨 마음이 그래야 편하다면 그러죠. 뭐."


그렇게 나는 차를 몰아 서울시내 피부과로 가서 진료를 받고 상처를 마저 봉합했다. 그리고 나와 한강 고수부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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