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들려 눈을 감아도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어찌 이대로 잠이 들 수 있지? 이리도 편안하게 잠든 서우와 달리 나는 정말 온몸에 긴장이 된 채 바짝 온 털이 쭈뼛 선 듯 그렇게 몸을 곧게 펴고 팔이 저리도록 그녀에게 팔베개를 하고 옆으로 누워 한참을 그녀가 깊은 잠에 빠지길 기다렸다.
그러다 무심결에 잠이 들었다.
물컹.
' 헉.'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남다른 감촉.
눈을 뜨자 그녀의 가슴에 내 손이 올려져 있었고 나는 화들짝 놀라 손을 뗐다.
무심결에 옆으로 붙여 두었던 팔을 그녀의 가슴에 올리고 너무 놀라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데 그녀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더 몸을 뒤척이며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내 턱아래로 깊게 파묻은 그녀의 머릿결에서 늘 침대에서 나던 그녀의 향이 풍겨온다.
머리는 어지럽게 혼란스럽다. 온 몸에 마치 소름이 돋는 듯 심장이 미친 듯 뛰는 게 느껴지는 순간.
나는 기어이 슬그머니 그녀가 깰까 조심스레 팔을 빼서는 거실로 향했다.
그녀의 곁에 더 있다가는 정말 내가 어찌될지 나도 장담할 수 없었다. 이대로는 날을 샐 수도 그렇다고 그녀를 깨울 수도 없었다.
이렇듯 혼란스러울 때는 그냥 단순한 게 최고다. 아무 생각 없이 본능에 충실한 것.
거실로 나와 코트로 배를 덮고 대자로 누어 팔로 눈을 가린 채 나는 차라리 상상의 길을 걷는 것을 택했다. 그것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임으로.
포근한 햇살에 눈을 뜨자 이불이 덮어져 있었고 아침부터 서우는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 일어났어요? 아침은 식탁에 챙겨뒀어요. 회사에서 급히 연락이 와서 나가봐야 해서요. 지금 아래서 기다리고 있다고 연락와서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인사는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회의 들어가서 확인만 잠깐 하고 돌아오면 되는 일이라 금방 끝날 거 같기는 한데 집에 계셔도 되고 아님 전화드릴게요. "
내가 뭐라고 채 대답도 하기 전에 그녀는 서둘러 현관으로 향했고 나는 그런 서우를 멍하니 이불을 칭칭 감은 채 졸린 눈을 부비며 거실 한복판에 앉아 바라보고 있었다.
신발을 신으려던 그녀는 이내 몸을 돌려 내게 다가와 내 볼에 입을 맞추며
" 이건 보답. 어제 잘 지켜줘서 고마워요. 굿모닝~"
그녀의 입맞춤에 당황해 하는 내게 그녀는 윙크를 하며 이내 집을 나섰다.
' 꿈인가...?'
나는 그대로 다시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싸늘하던 새벽과 달리 바닥에는 온기가 돌아 따스했다. 햇살까지 들어와 따사로운 거실창아래 그렇게 굼벵이 마냥 이불을 칭칭 감고 나는 잔뜩 웅크린 채 밤새 설친 잠을 몰아서 잤다.
얼마쯤 잠이 든 것일까. 어디선가 들리는 전화벨 소리.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여전히 이불을 몸에 돌돌 감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소리를 따라 핸드폰을 찾아 다녔다.
그러다 식탁 위 스피커 옆에서 발견한 서우의 핸드폰. 전화를 받으려 하자 이내 전화가 끊기더니 다시 내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내 옷을 찾아 입으며 전화를 들었고 전화를 받자 다급한 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휘우씨. 아무말 하지말고 그냥 듣기만 해요. 지금 바로 제 폰을 찾아서 가지고 바로 호수든 바다든 가서 폰을 던져 버려요. 어서. 아니다. 우리가 만나야 하니까. 그때 우리가 시장에 갔다가 갔던 호수 그래. 그 연호호수에 가서 폰을 던져 버려요. 제가 그리로 지금 갈게요. 뚝. "
그녀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서둘러 마저 옷을 입고는 핸드폰을 챙겨 들고 급히 연호공원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주차를 하고 미친 듯 전망대로 달려가 호수중앙을 향해 냅다 핸드폰을 던져 버렸다. 그리고 주차장으로 와서 차에 타고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멀리서 택시가 보이나 싶더니 이내 내 차 옆으로 다가오며 서우가 급히 내린 후 내차를 타고는
" 가요. 어서. "
그녀의 주문에 나는 급히 차를 몰아 연호 공원을 벗어났다. 그리고 국도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 무슨 일이에요?"
" 아무래도 불안해서요. 영상의 존재를 아는 것 같아서요."
그때 그녀의 가방에서 전화가 울렸다.
" 네 본부장님. 주말이라 조금 일찍 나왔습니다. 휘우씨께 부탁해서 운전 좀 배우려고요. 네. 네. 그럼 월요일 출근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
" 휴우~"
전화를 끊은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핸드폰이 두대였어요?"
" 네. 미국에서 귀국할 때 사수가 급할 때 사용하라고 주셨던 게 있었어요. 개인용으로. 지금 사용한 건 귀국후에 개통한 거였는데... "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내 휴대폰 전원을 껐다.
" 아무래도 개인용 핸드폰을 다시 하나 해야 할 것 같아요. "
서우의 말에 나는 말없이 차를 몰아 포항으로 가서 휴대폰 매장으로 향했고 그 길로 새로 휴대폰을 내 명의로 개통해서 그녀에게 건넸다.
" 서우씨 명의로 하면 아무래도 위험할 수 있으니까. 우선은 이걸로 써요. 쓰다가 상황을 보고 판단하죠."
" 그럼 돈이라도 제가 낼게요. "
" 그것도 사실 어떻게 될지 모르죠. 그날 우리가 있었던 곳에 촬영을 한지 어떻게 알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서우는 잠시 망설이더니,
" 출근을 해서 회의에 들어갔는데 그때 그 현장에 우리 요원 중 한 명이 잠입 중이었나 봐요. 멀리서 저희인지 확인한 건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날 목격자가 촬영한 것 같다며 두 명을 추적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마도 휘우씨 차량이 촬영된 걸로 봐서 요원이나 주변인들도 같이 감시 중인 거 같아요. 추적 범위가 워낙 넓기도 하고 아직 특정인이 좁혀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아 우선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방심할 수는 없어서 흔적을 지워야 해서요. "
서우의 말에 불현듯 내차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내친 김에 중고차 매매상에도 들러 차도 팔아버렸다. 그리고 급히 가장 빨리 출고되는 차를 신청하고 자동차 대리점을 나섰다.
급하게 진행된 일정에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그제야 한 숨을 돌리고 근처 식당으로 들어섰다.
" 미안해요. 어쩌다 제 일에 휘말리는 바람에 휘우씨가..."
" 아니요. 사람일이란게 어찌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는 거니까요. 그런데 서우씨는 거기 계속 근무하는 게 괜찮은 거예요?"
" 이제껏 목표로 했던 보이지 않는 존재를 증명하려던 마음이 어느 순간 뒤 바뀌어서 저를 숨겨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려서 저도 조금 난감해졌어요. 이 일을 하면서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거든요. 오히려 한국에 들어오며 보이지 않는 실체에 한발 더 다가선 느낌이 들어서 나름은 기대를 했었는데 어떻게 다가설 수록 더 멀어지고 안갯속을 걷는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어요. 이제는 혼란스럽기까지 해요. 내가 과연 증명해야 하는 존재가 무엇이고 도대체 내가 쫓기고 있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뭔지. 뭐가 나를 이렇게 불안한 마음이 들게 만드는지. "
서우의 말에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 흠. 어쩌면. 말이죠. "
내가 긴 침묵 끝에 입을 열자 서우는 나를 바라봤고 나는 사장님이 가져 나온 소고기국밥을 받아 들어 휘휘 저어 한 숟가락을 뜨고는 그녀에게 권했다.
" 먹어봐요. 먹을만해요. 소고기국밥이라는 건데 추운 날씨에 몸을 데워줘요."
내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서우는 내가 한 숟가락 뜨려고 숟가락을 들자 그 손을 꼭 잡고는
" 말해봐요. 그 어쩌면 뭘 말하려던 거죠?"
" 후우~"
나는 다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숟가락 위 밥을 불어가며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내 손목을 움켜쥐고 있던 그녀의 손을 잡고 다시 진지하게 바라봤다.
" 어쩌면 이렇게 지키고 싶은 마음이 마음이 생기면서 그 혼란스러움이 시작된 게 아닐까요?"
" 지키고 싶은 마음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 거예요?"
다소 긴장한 듯 초조해 보이는 서우.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 자 식기 전에 밥부터 먹어요. 이제 움직이려면 속이 든든해야 하니까. 어서. "
그러자 그녀는 뭔가 더 말하려다 이내 실망한 듯 투덜대며 밥을 덜어 후후 불더니 밥을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고 뭔가 먹을수록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정말 입맛에 맞아서 맛이 있는 건지 쉬지 않고 열심히 먹었다. 그러다 숟가락을 탁 놓더니,
" 가끔은 말이죠. 휘우씨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어요. 온통 신경이 딴 데 가있는 사람에게 마치 본능에나 충실하라고 말하듯 이렇게 네?"
그렇게 말하며 다시 숟가락을 들어 다시 국밥을 덜어 후후 불어 떠먹더니 급기야 국밥을 통째 당겨 국물을 퍼먹고 바닥까지 싹싹 긁듯 그렇게 말끔히 한 그릇을 비워냈다.
" 캬아~"
그녀도 모르게 나온 감탄사.
내가 휘둥그레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이내 새침한 표정으로 뭘 보냐는 표정으로 나를 째려보듯 보더니,
" 됐죠? 자 이제 말해봐요. 뭐냐니까요?"
그녀의 재촉에도 아랑곳 않고 나는 씨익 웃으며 그 뜨거운 국밥을 덜지도 않고 후후 불어가며 깍두기를 얹어가며 크게 한 숟가락 덜어 한입에 넣기를 몇 번 만에 건더기를 다 먹어치우고 이내 그릇을 들고 국물을 쭉 들이키며 바닥에 내려놓았다.
" 이렇게 먹는 게 한국식이죠. 한국에 오셨으니 한국문화에 적응 중이신 거고. 나름은 한국에서의 생활을 배워가는 중인 거죠. 그렇다면 한국인들에게 중요한 문화 중 하나 가족을 배워가는 중이라고 보시면 되겠네요."
다소 엉뚱한 대답을 늘어 놓는 내게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는
" 가족요? 전 가족도 친구, 지인도 없는데요?"
" 이제 생겼죠. 이렇게 버젓이. 바로 앞에."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가서 결재를 했다. 그리고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에게로 가서 그녀의 손을 잡고는 식당 문을 나서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