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nrightsea Oct 21. 2023

#1-26. 다섯 번째 별

혼란

 "차로 돌아온 나는 망설이다 가전대리점으로 향해서는 진열된 75인치TV를 샀다.

 내일 배달해준다는 것을 급하다는 핑계를 대며 기어이 설득하여 용달까지 불러서 차에 실어 집에 들이고 설치도 혼자 20대 알바하면서 익혔던 솜씨를 발휘해서 대충 연결하고 핸드폰에 노트북으로 인터넷 연결까지 하고  미러링으로 거실 쇼파에 앉아 TV를 틀자, 그제야 갑자기 끌렸던 미국 이야기들이 화면에 채워졌다.

나는 궁금했다. 왜 그녀는 다른 때는 그래도 답은 하는데 유독 오늘 내 말은 일씹일까.


 화면에서 겨우 잡은 CNN뉴스에서는 미국 위싱턴에서 있었던 테러 소식이 자막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 ...국방부 관계자 말에 따르면 인체에 내장된 것으로 의심되는 폭발물로 인하여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피해규모와 건물 내부는 정부주요기관인 관계로 파악중이며 테러로 의심되는 정황인지에 대하여는 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신중하고 면밀히 조사중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


스치듯 잡힌 영상에서 폭발의심되는 남성의 얼굴은 주홍빛으로 붉게 물들며 핏줄이 선명히 드러나며 화면이 바뀌었고 곧이어 아수라장이 된 현장도 화면이 정지되며 넘어가고 촬영을 중단하라는 외침이 자막으로 동시에 번역되며 채 편집도 제대로 되지 못한 영상들이 그렇게 어지럽게 화면을 메우고 있었다.


' 젠장 미국 소식이나 들으려던 건데 하필 CNN 채널을 잡아서는... 미국에 뭔가 일이 생겼나보네. '

안그래도 속시끄러운 날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영상을 보고는 화면을 꺼버리고 나는 리모컨을 멀리 던져 버렸다. 그래 수요일까지만 참자. 그때면 인터넷도 제대로 연결되고 다른 채널도 볼 수 있을 테니까.


침대에 누어서 물끄러미 핸드폰을 들어 서우의 톡을 보고 다시 페이스북에 혹시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없는지 이리저리 뒤져봐도 그녀는 그 흔한 페이스북에 인스타그램조차 하지 않았다. 고대생물인건가. 요즘사람 같이 않은 그녀의 행보는 알려고 들 수록 미궁에 빠지는 것만 같았다.


 



월요일 점심.

김부장과 식사를 하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김부장에게 몇가지 서우와 관련된 이야기를 대강 둘러대며 형의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그녀와 몇번 식사를 한 이야기와 키스를 한 이야기를 하고나자,


" 흠. 딱 보니 알겠던데. 이과장은 전혀 눈치 못챘어?"

" 뭘요?"

" 그 민경사. 좀처럼 틈이 없는 사람이잖아. 이과장 말대로 미국에서 왔다면 그 나이쯤이면 연애도 해봤을거고 자유로운 개방사회에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환경에서 지냈을 텐데. 구지 한국까지 와서 이런 촌구석에 박혀 지내는데 말이야. 안그래?"

" 뭘 눈치채요?"

" 허 참. 자 봐봐. 결혼을 하면 미국이 살기 좋을까. 우리나라가 살기 좋을까? 아니지. 반대로 여자 혼자 살기에 미국이 안전할까. 한국이 안전할까? "


" 거야. 미국요?"

" 허허. 이사람. 왜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 아무래도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거기서 지냈고 이제껏 혼자서도 잘지냈으니까. 아니 그런데 그거랑 제 고백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도대체."


" 잘보라구. 미국은 결혼을 하면 우선은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많은 지원이 되는 나라야. 아이를 나으면 더하지. 그래서 오히려 혼자 살기보다는 동거나 결혼을 해서 같이 사는 경우가 많아. 그래야 여러 사회보장시스템에 혜택을 누리니까. 그런데 서우씨는 그런 것도 없이 지냈다며. 그렇다는 건 그만큼 그런 혜택이 필요없는 고위 관계자일 가능성도 배제 못하지. 거기에 여자 혼자 살았다? 연애도 거의 안하고 일만 하고? 그게 말이 쉬워 그렇지. 주변에서 가만히 두겠어? 어디 몸매가 빠져. 인물이 빠져. 뭐 그렇다고 이과장이 못생겼다거나 그런건 아니지만. 뭐 이과장도 이정도 인물에 이정도 키에 재력에 뭐하나 빠지는 건 없지. 돌싱인거랑 네 좁아빠진 속 빼고."


" 김부장님..."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자, 김부장은 슬그머니 입에 물었던 커피를 손에 움켜쥐고는

" 그러니 보라구. 그정도 혼자 생활해왔으면 자신의 생활패턴에 젖어서 어지간한 남자는 눈에도 안들어올거고 자네가 모든 걸 갖추고 모셔와도 쉽지 않을 상대란 말이야. 하물며 성격도 이미 어느정도 자신의 성향이 자리잡았을텐데. 어린 여자들에 비해 감당하기 힘들면 힘들지. 안그래? 자기 기준이 그렇게 확고한 사람한테 냅다 고백하고 마치 당장 결혼이라도 하자는 듯 바로 집에 데려오려한 건 너무 성급한 행동이었단 말이야. 내말은."


마치 내 무지를 깨부순 것 마냥 통쾌해 하는 김부장의 표정과 달리 나는 그녀에 대해 솔직하게 다 말하지 못해 생긴 오해들로 섯불리 김부장이 판단한 부분에서 단단히 착각한 것까지 대략 난감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더는 자세히 말할 수 없는 마음에 그런 김부장의 생각에 동의 하는 것 마냥


" 아... 형님 말을 들으니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잘못했네요. "

" 그렇지? 암튼 뭐 이왕 그리 된거 열심히 두드려봐. 또 알아? 그러다 보면 열릴지. "


그렇게 말하며 김부장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음흉한 눈빛으로 나를 스윽 내려다 본 뒤  

"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한동안은 이과장 야근 못하게 철통방어하겠어. "


그렇게 말하며 먼저 자리를 떴다.


어이 없는 해석이기는 해도 일정부분 내가 미쳐 생각지 못했던 그녀의 생활과 사고 방식의 차이는 어쩌면 김부장의 말과도 일맥상통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나름의 확고한 신념이 있듯 그녀가 마음이 있음에도 나를 밀어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테니까.




퇴근 무렵, 사무실에서 두문분출하던 허사원이 갑자기 내곁으로 다가와 내게

" 이과장님 오늘 저녁 사신다면서요?"

" 네? 제가 언제? "


나는 당황하며 그녀를 바라봤고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내게 고개를 숙여 귓속말을 하는가 싶더니, 내 컴퓨터에 USB를 꼽아 화면을 띄웠다. 그리고 잽싸게 내 귀에

' 이 영상 . 경찰에서 보면 몹시 궁금할텐데. 안그래요?'


화면에는 내가 박경장의 차에서 내려 박경장을 내동댕이 치고 달아나는 장면이 찍혀 있었고 내가 놀라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잽싸게 USB를 뽑아서 호주머니에 넣고는 짧은 미니스커트로 선명히 드러나는 엉덩이를 살랑 살랑 흔들며 걸어가다 뒤돌아보더니

" 그럼 주차장에서 기다릴게요."

그렇게 말하며 이내 사라져 버렸다.


내가 놀라서 주변을 두리번 거리자 그새 다들 퇴근을 하고 나만 덩그러니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서둘러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는데 김대리가 후다닥 사무실로 달려 들어왔다.


" 김대리 퇴근한거 아니야?"

" 아 저 정대리 여행갔잖아요. 안그래도 바쁜데 구내식당에서 밥만 서둘러 먹고 올라왔습니다. 얼른 끝내고 저도 퇴근하려구요. 근데 그 사이 허은설씨는 퇴근했어요? 오늘 되게 섹시하게 꾸몄던데... 아 까비... 얼굴볼려고 서둘렀는데."


" 아 퇴근했어. 그럼 수고해. 나도 먼저 간다."

" 어? 이과장님 퇴근하신다구요? 저녁드시러 가시는게 아니구요? 그럼 오늘은 야근 안하세요?"


" 아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

나는 그렇게 김대리를 두고 사무실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는 허사원이 차에 있다가 내려 내게로 다가왔고 나는 그런 허사원을 지나쳐 그녀의 차로 갔다. 그러자


" 제가 운전해요?"

" 나 차없어. 은설씨가 운전해요."


" 은설씨? 훗. 그러죠. 타세요."

차에 탄 그녀는 벨트를 메며 나를 바라보더니 웃으며

" 제 이름도 알고 계셨네요? 맨날 사무실에서는 허사원이라 부르시더니. "


" 그건 입사초부터 워낙 입에 붙어서... 가요. "

내 말에 조금 실망한듯 한 그녀는 이내 차를 몰아 바닷가 찻집과 비빕밥집을 운영하는 곳으로 향했고 예약된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자 그제야 그녀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 저한테 할말 없으세요?"

" 무슨말요?"

" 음. 뭐 그렇게 나오신다면야. "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회사 CCTV에 나온 장면을 핸드폰으로 띄워 내게 내밀었다. 거기에는 내가 담배를 피며 주차장에 서 있고 허사원과 박경장이 차에 타고 빠져나가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 아까보여준 건 CCTV화면이 아니었는데... 어떤게 먼저요?"

" 음. 그것보다 보통 이런 걸 보여주면 무슨 사이냐를 물어보는 게 먼저 아니에요?"


" 그건 남여사이니 내 알바 아니고. 허사원 나 뒷조사해요? 이런건 왜 당신이 가지고 있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핸드폰을 뺏어 영상들을 지워버렸다. 하지만 그런 내 행동에도 그녀는 전혀 당황하는 기색없이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며 웃었다.


" 알고 계시죠? 박경장. 지금 어디 있어요?"

" 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내가 그 회사 직원도 아닌데...그리고 그걸 왜 나 한테 물어요? 경찰도 아니고 당사자한테 연락해보면 될 것을."


내가 시치미를 뚝때고 있자, 어느새 돌솥밥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른 자가 살아 탱글탱글한 비빔밥이 나왔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도 없이 냉큼 비벼 크게 한입에 떴고 곧 그 뜨거움에

" 앗 뜨거."

라고 말하자 허사원은 컵에 물을 따뤄 나에게 주며 말했다.


" 아닌데...분명 아는데."

" 뭘... 난 모른다니까? 왜 박경장한테 연락이 없어요? 둘이 만나는 사이야?"


내 천연덕스러움에 조금 어리둥절해 하던 허사원은 이내 숫가락을 들어 밥을 비비기 시작해 한 숫가락을 떠 후 불더니 조심스레 한입에 넣었다.

나는 그녀가 하는 행동을 들키지 않게 유심히 바라보다 이내 못본 척 다시 크게 한입 덜어 후후 불어서 냅다 한입에 털어 넣었다.

" 이과장님 그렇게 안봤는데 진짜 급하시네요?"

" 뭐. 그거야 사람 나름이죠. "

그렇게 말하며 나는 밥을 휘휘 저어가며 열심히 열기를 식혀가며 크게 몇숫가락 입에 털어 넣었고 그런 나를 바라보던 허사원은


" 저 좀 달라진 것 같지 않아요?"

" 응? 전혀?"

" 음. 그럴리가 없는데."

그렇게 말하며 밥을 먹다 두팔을 기 턱아래 받친 채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이 느껴져 마치 방금 넘긴 밥알이 한올 한올 올라올 것만 같았지만 그럴 수록 나는 더 머릿속으로 나는 무지 배가 고프다고 연이어 생각하며 마저 몇숫가락을 더 떠서 그릇을 비워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본 그녀는 이내 돌아서는 내 팔을 냉큼 잡았고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천천히 바라보며

" 근데 거기는 왜 간거요?'


그렇게 그녀에게 묻자 허사원은 이내 당황해 하며 불안한 듯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런 허사원을 바라보며 입모양을 지퍼잠그는 시늉을 하고는

" 그럼 이걸로 우리 딜은 끝? 더는 이렇게 사석에서 보지 맙시다."


그렇게 뒤돌아 나오자 마자 나는 바로 옆 기사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택시기사님을 불러 냉큼 차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와. 이 미칠듯 한 하루.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를 월요일.

무슨 일들이 이렇게 폭풍처럼 전혀 연관성도 없이 들이 닥치고 지나가고 하는지.

집앞 편의점에서 캔 맥주 한개와 소주 한병을 사들고 올라가며 속으로 다짐했다. 올라가자마자 둘다 한번에 쏟아붙고 그냥 예전의 나로 돌아가 내일 걱정은 내일하며 아무 생각없이 잠들기로.


집에 들어서자 마자 나는 옷을 벗고 어제 마트에서 샀던 츄리닝으로 갈아 입고는 이내 식탁에 앉아 조명등 아래서 종이컵에 정성스레 맥주를 붓고 소주를 1/3를 붓고는 한번에 털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반복. 반복.


하지만 급히 먹은 술은 술기운이 올라 오려니 시간이 걸렸다. 거실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다보니 문득 담배 생각이 났고 나는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라 담배를 사러 가려다 내려 침대로 향했다.

 형수가 사다준 이불에 몸을 파묻은 채 가만히 누었다 다시 온몸에 돌돌 말아 거실로 나와서는 쇼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왠지 깊게 잠들기 싫은 밤.

몇번의 뒤척임 끝에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고 눈을 떠 보니 12시 반.


밀려드는 한기와 귀찮음에 몸부림 치다 결국에 나는 물도 살겸, 담배도 살겸 편의점으로 향했고 편의점에서 나와 담배를 피며 아파트를 올려다 봤다.


여전히 꺼져 있는 서우의 아파트.


터덜터덜 어울리지도 않는 양복코트에 구두에 츄리닝 바지.

내려다 보니 내 복장도 가관이었지만 이 밤에 누가 보겠나는 생각에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그때 멀리 차가 주차되나 싶더니 대리기사가 내리고 옆좌석에서 휘청거리며 한 여성이 내리더니 돈을 주고 비틀거리며 이 곳으로 걸어왔다.


 밤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냥 지나쳐 먼저 올라가기에 그녀의 걸음은 이 곳을 다가올수록 속도가 빨라질수록 비틀거렸고 급히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내가 잡으려는 순간, 문을 잡은 그녀.

서우였다.


" 어디서 이렇게 취한거에요?"

쓰러질 듯 휘청이는 그녀를 부축하고 그녀의 층수를 누르자,

" 휘...우씨?"


 잔뜩 긴장해 찌푸렸던 얼굴로 바라보다 나인지 확인 그녀는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한숨 돌린 듯 오징어처럼 늘어지며 내 품에 안겨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1-25. 다섯 번째 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