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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Nov 08. 2019

페흐 라쉐즈에서 세월호 리본을 만나다 (2)


전사들의 벽이 있는 77번 구역은 묘지 북동쪽 맨 구석자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안내판을 보니 그곳을 향하는 중간에 눈에 띄는 이름들이 적지 않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짐 모리슨, 발자크의 무덤은 방향이 달라서 건너 뜁니다(사진 1).



 고엽(Les Fuilles Mortes)의 가수 이브 몽땅이 잠든 곳은 44번 구역. 그의 무덤도 보고 싶었지만 역시 포기. 하지만 프레드릭 쇼팽과 에디트 피아프의 무덤은 안 볼 수가 없네요.

12번 구역의 좁은 오솔길 옆에 위치한 쇼팽의 묘지. 선이 여린 그의 옆 모습을 새긴 릴리프 부조 앞에 시들었거나 아직도 꽃잎이 생생한 꽃다발 여러 개. 펜스 난간에는 흰 색과 빨간 색의 폴란드 국기 리본이 매어져 있습니다(사진 2, 3).



페결핵에 신음하며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39살 젊은 나이에 이국에 묻힌 천재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생전에 조르즈 상드를 비롯하여 여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쇼팽답게, 오늘 무덤 앞에 서성이는 대여섯명은 (저를 제외하고) 모두 여성입니다. ^^

에디트 피아프의 묘는 전사들의 벽에서 50미터도 떨어져있지 않은 97구역에 있습니다. 곡예사 아버지를 따라 거리에서 최초로 노래를 불렀던 20세기 최고의 샹송가수 피아프. 하지만 평생 사랑에 목말랐고 역설적으로 평생 외로웠던 “어린 참새(Piaf)”의 고독을 떠올려 봅니다(사진 4).   



97구역에는 개인 묘지도 있지만 다카우, 아우슈비츠 등 나치 강제수용소 희생자들의 묘비가 여럿 서 있습니다.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갑자기 한국말이 들립니다. 20대 초반의 학생  들이 스무명 남짓 다카우 수용소 희생자 묘비를 반원형으로 둘러서 있네요. 그리고 인솔자(역시 청년)가 2차 대전 당시 독일과 유럽의 정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단체로 페흐 라쉐즈를 찾아온 모양입니다.

눈빛을 반짝이며 설명 듣는 젊은이들 얼굴이 푸른 나뭇잎처럼 반짝입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 빙그레 웃음이 납니다.목례를 하고 지나치려는데, 설명을 마친 가이드 청년이 저를 보더니 놀라면서 “혹시 김동규 교수님 아니세요?” 묻습니다.

제가 더 놀랐습니다. 파리 한 구석의 묘지에서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니. 페이스북 친구신가요? 물어보니 아니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신문칼럼을 읽었답니다. 이런 인연이, 서로 반갑게 악수를 나눕니다. 고려대학교 신입생들 스무명이 20일간 유럽 자동차여행을 왔다는군요. 여기는 코뮌전사의 묘를 보러 왔냐 물으니 모두들 일시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에디트 피아프 묘지 위치를 아냐고 여학생 한 명에게 물었습니다. 에디트,,,요? 눈이 동그래져서 되묻습니다. 그렇지요 이 세대들이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을 알 리가 없고 <빠담 빠담>을 알 리가 없겠지요. 웃으며 아니라고 말하고 작별을 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한 목소리로 인사 건네더니 모두들 언덕을 넘어갑니다. 도란도란 멀어지는 목소리들 너머로 무슨 훤한 휘광이 비치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3명이 함께 묻힌 피아프의 가족묘는 생각보다 소박합니다. (그녀가 즐겨 입던 검은 드레스를 상징하는 것인지) 윤기 나는 흑요석 묘석 위에 십자가 위 예수가 누워있고, <EP>라는 금박을 새긴 화병이 놓여있습니다. 꽃들이 가득 꽂혀있군요. 역시 붉은 장미가 많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꽃다발은 “에디트 피아프에게(To Edith Piaf) 조르게와 세릴이(From Jorge & Cheryl)”이라는 인쇄글씨를 코팅 입힌 메시지입니다(사진 5, 6).



드디어 코뮌전사들의 벽입니다. 커다란 떡갈나무 너머에 가로로 길게 돌로 쌓은 벽이 누워있습니다(사진 6). 벽 너머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일반 주택들입니다. 담쟁이 덩굴로 덮혀있는 높이 3미터 정도 벽 한 가운데 대리석판이 붙어있군요. 거기에 이런 글귀가 부조되어있습니다. “1871년 5월 21일에서 28일까지, 코뮌 희생자를 위하여”(사진 7, 8).



작은 화단에는 팬지꽃이 불타오르고 석판 주위로 시든 꽃다발들이 여럿 놓여있습니다. 이른살은 넘어보이는 노부부가 먼저 와있군요(사진 9, 10). 석판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동구 어느 쪽 나라로 짐작되는 말로 조용히 서로 대화를 나눕니다.  





저도 벽으로 다가가서 석판을 어루만져 봅니다. 판을 둘러싼 담벼락에 작은 쇠고리들이 여럿 돌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작은 팬던트 하나가 걸려 있는게 아닌가요(사진 11). 노란 색의 세월호 리본이! 이곳에서 세월호 리본을 만나다니....


누가 남겨놓고 떠났을까요. 조금 전 왔다 간 학생들일까요, 아니면 그 전에 다녀간 누구일까요. 갑자기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한 손으로 입을 막고 하늘을 쳐다봅니다. 구름들이 눈물로 어룽어룽 젖어듭니다.

바람이 공중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여름 한낮. 파리의 묘지 한 모퉁이에 서서 코뮌전사들의 죽음과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을 함께 생각합니다.  

국가라는 잔인한 힘에 의해 희생되었으나 끝내는 민중의 가슴에 붉은 꽃처럼 되살아날 이름들. 백 수십년의 시공을 넘어 서로 만난 이 애절한 죽음들 앞에서 멀리서 온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그저 자꾸 벽을 만지고 자꾸 리본을 어루만지기만 합니다. 그렇게 종내 자리를 떠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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