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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Nov 09. 2019

구스타브 클림트와 에곤 쉴레, 두 남자 이야기


1. 천재 화가 에곤 쉴레가 빈 예술아카데미에 재학 중이던 1907년. 17살의 쉴레는 당시 46살로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올라섰던 클린트를 처음 만나서 자기 드로잉 몇 점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습니다. "저한테 재능이 있는가요?"

평생 쉴레의 후원자가 되었던 예술 칼럼니스트 "아서 로에슬러(Arther Roesller)의 목격담에 따르면 클림트는 이렇게 열광적으로 대답했다 합니다. "재능이 있냐고? 있어, 그것도 엄청나게!" 그리고 (자신도 천재라 불렸으면서) 쉴레의 재능이 부럽기 짝이 없다 경탄했다는군요.

29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날 이후 두 사람은 지지하고 존경하는 친구가 되었고, 특히 쉴레는 클림트를 통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유럽 인상주의, 상징주의, 유겐트스틸 등에 큰 영향을 미쳤던) 일본 판화미술의 표현기법과 구도를 흡수했습니다.

사춘기의 쉴레는 클림트의 강력한 지지 아래 화가의 길로 나아갔고, 후일 서로 예술관이 엇갈려 결별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상대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었답니다. 둘은 그림을 자주 맞바꾸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클림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왜 네 그림을 내 것과 바꾸려 하나. 네 그림이 훨씬 나은데 말야!"

1918년 28살의 새파란 나이에 당시 유행하던 스페인 독감에 걸린 에곤 쉴레. 그는 임종 직전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전쟁이 끝났어. 나는 가야 해. 세계 최고의 모든 미술관에 내 작품이 걸려야만 해!"

이 천재 화가의 스스로 예술에 대한 자부심이 어땠는지를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2. 쉴레의 그림이 가장 많이 소장된 곳은 빈의 레오폴드 미술관. 이곳에서 만난 쉴레 그림들이 하나같이 (10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충격적이지만 그 중 백미가 있더군요. 제목은 <추기경과 수녀> . 스물 두 살 되던 1912년에 발표한 그림입니다.(그림 1, 2)




무릎을 꿇고 서로를 끌어안은 남녀가(특히 추기경이) 서로의 몸을 탐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이 순간 극단의 금기를 뛰어넘어 아득한 남자와 여자입니다. 검고 붉고 초록색의 배경 아래 남자는 여자의 목과 가슴을 뜨겁게 애무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가장 강렬한 것은, 화가 혹은 관람자를 향하고 있는 수녀의 눈에 서린 두려움과 수치심 그리고 극도의 긴장감입니다.

정작 제가 깜짝 놀란 것은 이 포즈와 설정을 이미 어디선가 봤다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이틀 동안 머리에 맴돌던 이미지를 베니스에서 로마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드디어 찾았습니다.

1990년대 초반 세계 광고계를 강타했고 대중문화에 의미심장한 영향을 미쳤던 <베네통> 캠페인 중의 한 장면. 바로 검은색 복장의 신부가 눈처럼 환한 흰옷 입은 수녀와 열정적 키스를 나누는 모습이었습니다.(그림 3)



이 논쟁적 광고를 만든 올리베로 토스카니(Olivero Toscani)는 과연 쉴레 그림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했던 걸까요? 한발짝 더 나아가 혹시 쉴레에 대한 오마쥬를 시도한 것이었을까요? 토스카니를 만날수도 없고, 또한 20년도 더 지난 옛날이니 사실 확인은 쉽지 않겠지만 제 마음 속에 떠오른 강렬한 의문이었습니다.

사정이 어쨌든, 20세기 초반 에곤 쉴레가 급진적(radical) 표현주의 회화를 통해 시도했던 금기 파괴의 힘은 세기를 뛰어넘어 빈 한 모퉁이 미술관 벽 위에서 지금도 괴괴한 힘을 내뿜고 있습니다. 사회적, 종교적 관습과 제도를 한껏 조롱하고 야유하면서. 그 강도가 얼마나 센지 제가 한동안 옴쭉달싹 못하고 그림 앞에 사로잡혀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작품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난잡하다 할만한 사생활과 각종 스캔들을 일으켰던 에곤 쉴레. 그의 개인사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상관없이, 그의 그림은 오늘도 이렇게 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들고 세상을 두들겨대고 있습니다.

3. 구스타브 클림트 팬들이 많으시지요? 오스트리아 유겐트스틸(jugenegstil, 아르누보의 독일식 표현) 양식을 대표하는 이 거장은, 과감한 색채와 상징적 표현 그리고 에로티시즘을 결합한 작품으로 전 세계적 매니아층을 거느리고 있지요.

특히 <키스>, <죽음과 삶>같은 작품은 그 풍부한 상징성 때문에 대중문화에서 가장 널리 소비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제가 찾은 레오폴드 미술관에는 <죽음과 삶(1911년에 처음 그려져서 1916년에 바탕 그림의 황금색을 짙은 녹색으로,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의 얼굴을 치켜들게 다시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키스는 벨베데르 궁전에 있는데, 폐관 30분전에 도착해서 20유로 입장료가 너무 아까워 안 봄^^. 클림트의 그림만 익숙할 뿐 그의 실제 얼굴은 빈에 와서 처음 봤습니다. 레오폴드 미술관 4층 전시실 입구 쪽에 클림트 사진이 여럿 있는데.... 놀랐습니다. 너무나 평범하게 생긴, 이를테면 중년 농부 아저씨의 얼굴이군요. ^^

그의 그림이 주는 이미지는 아주 댄디(dandy)하고 샤프한데 말이지요. 둥그런 턱살에 사람좋은 표정의 구스타프 클림트. 평생 결혼도 안 하고 뜨거운 로맨스를 즐긴 플레이보이 이미지 치고는 의외였습니다. 반면에 미술관 여러 곳에 걸려있는 에곤 쉴레의 얼굴은, 익히 알려진 그의 자화상의 느낌이 고스란했습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스스로 그린 그의 얼굴보다 더 예민하고 날카로운 세기말적 프로필입니다.

이 미술관에는 쉴레의 유화만 40점, 그 밖의 드로잉은 90점 이상이 전시되어있습니다. 그림이 너무 많아 슬라이드쇼로 보여드리는 게 나을 듯 합니다. 야한 그림이 많습니다.


아 참, 중간에 몇초 정도 이상한 장면이 나올 겁니다. 왠 젊은 아가씨가 미술관 바닥에 누워 온 몸을 비비 트는 장면.

저도 처음 봤을 때는 무슨 간질 환자인 줄 알았답니다. 근데 자세히 보니 쉴레 그림 앞에서 행위예술을 펼치고 있는 거더군요. 새파란 나이에 세상 떠난 쉴레의 넋을 위로하려는 진혼의 몸짓인 걸까요.

조금 전에 저와 엘리베이터 같이 타고 올라온 아가씨였습니다. 옆머리를 펑크 스타일로 밀고 흰자위가 압도적으로 많아 눈빛이 묘한 기운으로 휘번덕이던(표현이 과해서 죄송^^) 인상이었어요. 혹시가 역시라고 범상치 않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아래는 그림과 공연을 편집한 슬라이드쇼-

https://www.facebook.com/dongkyu.kim.566148/videos/1068237256580319/?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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