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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Nov 10. 2020

<성북동 소행성 주인 이야기>



1.
(그는 이 사실을 모르겠지만) 편성준의 글을 오래전부터 읽어왔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10여년 가까이 된 듯하다. 인터넷 서핑 중에 우연히 그의 블로그를 들렀다가 거기 올라온 글을 다 읽게 된 것이다.   

왜 그리 열심히 봤을까? 우선 그가 (젊은 시절 나의 직업이었던) 카피라이터라는 것에 끌렸다. 그가 일했던 회사 건물이 내가 일했던 곳과 대각선으로 200미터도 안 떨어졌다는 사실. 그가 비몽사몽 취하던 마포시장 낡은 술집이 내가 자주 들르던 곳이라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게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의 글이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편성준의 글에는 어깨에 힘 주는 주제가 거의 없다. 아내와 연애담. 덤덤한 하루의 일상. 음주와 관련된 에피소드들. 그의 전매특허인 어이없는 실수담이 위주다.

그런데 이런 글들이 매력적이었다. 겉절이 김치가 묵은지의 깊은 맛을 못 따르듯이, 소곤소곤 인간적인 이야기 속에 삶에 대한 단단한 성찰이 숨어있었던 게다.  

2.
서로 몰랐던 인연이 아는 인연으로 바뀐 것은 페이스북을 통해서였다. 언제부터 페친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페이스북에 (조금 지나서는 브런치에) 올리는 글을 빠짐없이 읽는 애독자가 되었다. 레고블록처럼 작은 소재가 모여 목 긴 기린이 되고, 코뿔소가 되고 때로는 무지개를 피워 올리는 그의 글쓰기가 좋았다.

다니던 광고프로덕션에 사표를 던졌다는 이야기도, 지인의 비어있는 펜션 빌려서 제주 한달살이를 했다는 것도, 중산간 마을을 산책하면서 늘 들르던 카페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올 봄 제주 여행 때 직접 그 카페를 찾아가기도 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문이 닫혀있어 참 아쉬웠지만).

그런 편성준이 책을 냈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상당수 내용은 이미 SNS에서 읽은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책으로 읽으니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건축의 재료는 한 장 한 장 벽돌이지만, 그것이 모여 집이 완성되면 존재감도 가치도 다른 무엇이 되듯이.   

3.
이 책의 으뜸가는 장점은 편성준 답게 시종일관 재미있다는 것이다. 1인칭으로 쓰여졌지만 천연덕스런 제 3자의 관찰기 같다. 자기 체험을 다룬 에세이지만 소설처럼 스토리가 숨어 있다. 여섯 챕터로 구성된 아내와 고양이 순자와 광고 이야기를 읽어가다가 나도 모르게 여러 번 큰 소리로 웃었다.

그만큼 공감이 간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화장실 이야기와 건망증에 얽힌 황당한 사건조차도 그렇다. 그의 경험담이지만 꼭 내 이야기 같아서 말이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 아니다. 이 책에는 다른 미덕이 있다. 계속해서 페달을 안 밟으면 쓰러지는 경쟁 세상. 톱니바퀴로 꽉 짜인 이놈의 이윤 추구 사회에서 애써 뒤돌아 자기 삶을 되찾으려는 한 남자의 고군분투가 찡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말한다. 논다고 다 굶어죽지는 않는다고. 평생 한 번은 하고 싶은 일에 에너지를 쏟아 봐도 되지 않겠냐고(편성준에게 이것은 직업적 글쓰기인데). 이것도 허락이 안 되면 그게 인생이냐고.

깊이 공감한다.

4.
나는 책 읽고 나면 그 안에서 작가의 생각을 대표할 만한 문장 하나를 고르는 버릇이 있다. 이 책에는 290페이지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비록 느리고 고단해도 지금처럼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고마워하고 또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만 있다면 인생은 그럭저럭 살만하지 않겠는가.”

작가의 이런 마음이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이 매우 잘 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 알라딘 서점의 경우 첫 주에 에세이 부분 60위였다. 그러다가 40위가 되었고, 어제 보니까 무려 14위까지 올라갔다. 이유가 뭘까.

이렇게 험한 시절일수록 거창한 담론보다는 소박한 이야기에 사람들이 마음을 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의 말마따나 우리는“누구나 자신의 슬픔이나 외로움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게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허덕대며 걸어가는 우리네 일상에 보내는 웅숭깊고 따뜻한 위로편지다.  

5.
여기까지 쓰다 보니 나 스스로조차 편성준을 잘 아는 것같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얼굴도 못 본 사이다. 마주칠 기회는 있었다. 그가 아내와 부산에 놀러왔을 때였다. 해운대 맛집 찾는다는 글을 보고, 내가 잘 아는 돼지국밥집에서 소주나 같이 한 잔 하면 좋겠다 싶었다.

그게 잘 안 되었다. 나중에 그가 말하기를 부담을 주는 거 같아 부러 연락을 안 했다는 거였다(솔직히 좀 섭섭했다^^).

좌우지간 나는 조만간 그(와 그의 아내 혜자 쌤과 고양이 순자)를 얼굴로 만나보게 될 것이다. 자그마하지만 매우 크기도 한 그의 집 성북동 소행성. 그 골목을 찾아가서 콩콩 나무대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렇게 짙어가는 어둠 바라보면서 마당에서 소주 한 잔 할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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