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말 오랜만에 서점에서 책을 샀다. 페이지를 슬슬 넘기면서 서문을 읽어보기. 표지 디자인을 감상하고 저자 소개도 읽고(드물게는 킁킁 새 책 냄새도 맡고) 마지막에는 엄지와 검지, 중지 세 손가락으로 슬쩍 책을 들어 무게를 가늠해보는 행위.
작은 의식을 치르듯 소소한 기쁨을 누린 후 계산대로 가서 값을 치르는 것.
이렇게 서점에서 책을 직접 구입하는 일은 저자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생각에 다가서기 위해 독자가 감당하는 최초의, 즐거운 경배일 게다.
떠올려 보니 이 같은 의례를 잊어버린지가 까마득하다. 최근 몇년동안 거의 모든 책을 온라인으로 주문해온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2.
걸어서 귀가하다가 공원 가로등 아래서 책의 띠지를 뗀다. 그리고 페이지를 펼쳐본다. 앞부분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저는 의견의 불일치야말로 '쇠가 쇠를 단련시키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 생활할 때는 토론에 이기는 것이 인생에서 이기는 일인줄 알았다. 선생이 되어서도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심지어 온라인 공간에서조차 나는 얼마나 까칠한 존재였던가, 문득 가슴이 서늘해진다.
밤이 되니 가을이 더욱 깊다. 하늘에 보름 가까운 달이 휘영청하고, 그저께까지는 뀌뚜라미 소리가 요란했는데 어느새 바람이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