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
중국 혁명사를 다룬 것 가운데 고전으로 불리는 이 책이 발행된지 벌써 83년이 지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홍범 등의 번역으로 1985년에 두 권으로 나눠진 최초 번역본이 나왔지요. 그러다가 같은 두레출판사에서 개정판이 1995년에 나왔고, 2013년에 역시 같은 출판사에서 통합본이 출간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약 10만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입니다.
이 전설의 존재를 오랫만에 다시 읽습니다.
책이 쓰여진 시기는 1936년 국공내전이 극단으로 치닫던 때. 당시 31세의 젊은 미국기자 에드가 스노우는 장개석에 의해 철통같이 봉쇄되어 있던 공산소비에트 홍구(紅區)에 잠입합니다. 그리하여 모택동을 필두로 팽덕회, 주덕, 임표, 주은래 등 젊은 혁명가들과 4달을 함께 생활하게 되지요. 그 결과 붉은 비적(匪賊)으로만 알려졌던 그들의 삶과 이념의 진면모를 세계에 타전하는 기념비적 저술이 나오게 된 겁니다.
두번째 읽는 책이건만 근래에 보기 드물게 몰입해버렸습니다. 홍군소년 병사들의 천진난만한 모습, 스노우가 가르쳐준 카드게임이 공산당 정치국 간부들에게 유행해가는 과정, 4개월 간의 기록과 사진필름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뻔한 배낭 분실 건. 무엇보다 대장정의 장면 장면들이 한편의 장대한 드라마입니다.
중국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부활했습니다. 인터넷에서 관련 서적을 이것저것 검색해봤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이 주제에 대한 출판물들이 태부족하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예를 들어 홍군 총사령관이었던 주덕(朱德) 일대기를 다룬 스메들리의 <위대한 길>. 이 책을 구하려 하루 종일 인터넷을 뒤졌는데 절판된지 오래인 것을 확인했답니다. 낙망의 심정으로 지내다가 며칠 후 다시 검색에 도전했는데... 있더군요! 인터넷 중고서점에 1986년 발간된 활판인쇄본이 딱 한권 남아있는 걸 발견한 겁니다. 사흘 굶은 것처럼 이 책도 후다닥 독파했지요.
베스트셀러라면 아프니까 청춘이다 어쩌고 달짝지근한 힐링 책이나, <성공을 위한 방법...> 운운의 처세서 아니면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니 누가 이런 고리타분한 책들을 찾겠습니까?
당시 상황을 좀더 이해하기 위해 도서관에 내려갔더니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은, 산케이신문에서 발행한 <모택동비록 1, 2권>. 하지만 국공내전 시기를 다룬 것은 아니고, 문화대혁명을 중심으로 하는 격변을 저널리스틱하게 묘사한 책이군요. 극우논조의 산케이라서 3류소설은 아닐까 싶었는데, 다행히 중국에서 나온 원전을 큰 왜곡없이 반영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어제 오늘 읽고 있는 것은 <등소평 전기>와 일본학자 中嶋嶺雄이 엮은 <중국혁명사>. 그렇게 책을 읽다가 자연스레 몇 년 전에 다녀온 베이징이 생각났습니다. 후통 뒷골목을 나와 저녁에 방문한 중심가 왕푸징 거리. 휘황찬란 빛나는 명품 상가 앞에 거지도 상거지 모습을 한 아낙네가 몸이 아픈지 술에 취한건 지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모습이 어찌 모택동의 나라일 수 있나" 혀를 끌끌 찼었던가요.
그러다가 문득, 이러한 내 글 읽기 자체가 혹시 시대착오적인 건 아닌가 싶은 (서늘한) 생각이 드는 겁니다. 공유제에 기초한 사회주의 체제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권력과 자본이 결탁한 극단적 관료자본주의 국가. 사회주의 시장경제라 강조하지만 기실 민중들의 의식은 이미 정글자본주의를 뼛 속까지 받아들인 중국의 본질이야 익히 아는 바.
2019년 기준으로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의 연간 평균 수입액이 무려 55배의 차이를 나타낼만큼, 미국 뺨칠 정도의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진행 중인 나라가 중국인 겁니다.
그런데도 80여년 전 새로운 하늘을 열기 위해 누더기 옷 입고 흙 동굴에서 자던 게릴라 지도자들 이야기에 빠지다니... 너는 도대체 무슨 꿈을 꾸고 무엇을 어쩌겠다는 것이냐? 이런 자문이 뇌리를 강타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