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고 권혁주를 추모하며
미국 포크음악의 전성기를 주도했던 밥 딜런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발표가 세간의 큰 화제다. 한 작가의 특정 작품이 노벨문학상에 선정되었던 지금까지의 전례와는 달리 대중음악의 가사를 시문학의 하나의 중요한 갈래로 인정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파격이다. 정작 밥 딜런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싱어송라이터에게 돌아가는 노벨문학상의 권위를 의심할 수도 있겠다. 혹자는 밥 딜런이라는 동명이인의 작가가 상을 받는 것이 아니겠냐고 했다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 수상과 관련해 한림원은 새로운 시적 표현을 미국 대중음악 전통으로 끌어들인 공로를 인정하여 밥 딜런이 수상하게 되었다고 담백하게 밝혔다. 세상이 변하듯 이를 담고 표현하는 틀도 진화하고 있다.
밥 딜런의 노래 중 가장 많이 알려진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는 한 서부영화의 배경 음악으로 1973년도에 쓰여졌다. 이후 이 곡은 30여 편의 영화에서 사운드트랙으로 사용될 만큼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게 되었고, 1997년 독일에서는 같은 제목의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2013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두 명의 시한부 암환자, 마틴과 루디가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둘은 같은 병실에서 만났고, 얼마 남지 않은 자신들의 인생을 위해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는 루디의 소원을 이루려고 동반탈출을 감행한다. 일탈을 위해 주차장에서 훔친 자동차는 거액의 현금이 실려있던 조폭의 스포츠카였다. 마틴과 루디에게는 현상 수배령이 떨어지고 조폭과 경찰은 이들을 잡기 위해 기상천외한 추격전을 펼친다. 영화는 마틴과 루디가 바다를 찾아가는 여정을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무겁고 진지하게 교차시키며 그려간다.
영화의 백미는 마틴과 루디가 차에서 내려 세찬 바닷바람에 요동하는 갈대밭 사이를 걸어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그리며 시작된다. 그들이 바다로 달려왔던 이유는 천국은 곧 바다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천국의 문 앞에서 지친 둘을 맞이한 그날의 파도는 평온하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나이와 신분에 상관 없이 인생은 격랑을 견디며 살아가는 과정임을 그들은 마주하게 된다. 루디의 오른 손에는 술병이 들려있고 마틴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마틴은 루디가 말없이 건네는 술병에 목을 축인 후 모래밭에 앉았다. 그리고는 거친 파도를 응시한 채 쓰러졌다. 루디는 아무 말 없이 친구의 옆에 나란히 앉아 친구가 바라던 파도에 쓸쓸한 시선을 싣는다. 루디도, 그의 죽음을 대하는 마틴도 바람 이는 바닷가에서 삶의 마지막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최근 급성 심근경색으로 우리들의 곁을 떠난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의 비보를 듣고 이 영화의 엔딩 만큼이나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의 죽음이 안타까운 이유는 그가 유일무이한 연주력을 가진 최고의 연주자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많은 동료 음악가들 뿐만 아니라, 그의 연주에 열광했던 수 많은 팬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만큼 자신의 일에 책임을 다했던 리더였다. 칼 닐슨 콩쿠르와 파가니니 콩쿠르를 석권한 한국 바이올리니스트의 선두주자였지만 그는 무대의 크고 작음에 연연하지 않고 주어진 기회에 늘 최선을 다했다.
사고가 있기 전날 새벽, 연주를 위해 찾은 부산. 리허설을 마치고 홀가분하게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늦은 밤 해운대에 위치한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에 몸을 실었다. 그는 친구와 함께했던 한 잔 술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숙소로 돌아가는 20분 동안 아무 저항도 없이 그의 마지막을 담담하게 맞이했다. 그 순간 마틴은 없었다. 쉼 없이 달리기만 했던 권혁주에게는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보였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다. 천국은 곧 바다라는 루디의 믿음처럼 권혁주는 바다를 마주한 곳에서 잠이 들었다. 전설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지네트 느뵈(Ginette Neveu)와 마이클 래빈(Michael Rabin) 역시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갔다. 느뵈는 비행기 추락사고로, 래빈은 밝혀지지 않은 지병 때문이었다. 두 사람 모두 권혁주와 비슷한 나이였다.
고개를 들고 시선이 하늘을 향하는 순간 별을 만난다. 천국의 문을 두드린 권혁주는 별이 되었다. 필자는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