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 교사 13명이 숨지고 24명의 부상자가 나와 미 전역을 충격으로 몰아 넣었던 참사가 있었다. 1999년 콜로라도의 리틀턴에 위치한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은 미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주범이었던 에릭과 딜런은 이 학교의 졸업반으로 사건 후 현장에서 자살했다.
나중에 밝혀진 이야기이지만 이들의 원래 계획은 학교 전체를 폭발시키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사제폭탄을 직접 제작하여 자신들이 운전한 차에 싣고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식당에 설치했다. 그러나 폭탄은 불발되었고 만약을 대비해 준비했던 총 4정을 가지고 직접 학교로 들어가 사건을 일으켰다. 소름끼치리만큼 대담하고 치밀하게 계획된 참사였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은 리틀턴과 같은 작은 마을에서 이런 참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미국이 얼마나 큰 문제에 직면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을 만큼 심각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 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 중 뉴욕경찰과 소방국이 출동하여 공연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건의 발생했다. 한 정체불명의 남성이 탄저균으로 의심되는 흰색 가루를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공간 안으로 두 차례에 걸쳐 뿌렸다는 단원들의 신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주되고 있던 롯시니의 오페라 '윌리엄 텔'은 이 극장에서 80년 만에 연주되는 4시간30분짜리 대작이었고 마지막 4막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전 세계 유력 언론들은 경찰의 수사를 기다리며 취재진을 극장에 급파해 현장의 상황과 공연장을 빠져나오는 관객들의 목소리를 발빠르게 전했다.
이 일을 벌였던 장본인 로저 카이저는 친구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전국의 오페라 극장을 다니며 죽은 친구의 뼈 가루를 뿌려 흔적을 남기려 했던 '순수한 의도'라고 밝혔다. 같은 날 저녁 공연으로 예정되었던 또 다른 오페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역시 안전상의 이유로 취소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관객들과 오페라 애호가들은 범죄 의도가 없었다는 이유로 카이저를 체포하지 않은 경찰의 조치가 적절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며 이 사태를 일으킨 담당자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죽은 절친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한 친구의 의리와 우정 때문이었다는 순수한 의도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사상 초유의 혼란을 일으킨 장본인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가당할까?
친구의 의리와 우정 때문이었다는 순수한 의도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사상 초유의 혼란을 일으킨 장본인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가당할까?
리틀턴에서 사건이 발생한 지 17년이 되었을 때, 이 참사로 아들을 잃은 한 엄마의 삶을 기록한 책이 화제가 되었다. 바로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의 어머니 수 클리볼트가 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이다. 이 책은 용서 받을 수 없는 범죄자를 엄마라는 특별한 시선으로 풀어낸 책으로, 아들과 함께했던 17년간의 기억과 함께 제2의 딜런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개인과 사회적 노력이 담겨 있다.
저자는 아들이 저지른 학살에 대해 진심 어린 사죄로 자신의 책을 시작한다. 그녀는 심리학자들을 만났고 프로파일러와 범죄 전문가를 만나며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복기했다. 엄마로서 절박한 변명을 뒤로한 채 자신이 딜런과 함께했던 17년의 진실을 드러내며 우리의 자녀들이 빠질 수도 있을 또 다른 딜런의 위기에서 건져내기 위해 책을 펴냈다. 진실을 밝히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엄마로서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아냈다. 실제로 책의 수익금은 우울증과 자살예방 캠페인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모든 일에는 그럴만한 변명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그 변명이 폭력적으로 정당화 되는 데서 발생된다. 그 의도가 아무리 순수하더라도 팩트가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진실에 직면했던 수 클리볼트의 기록이 조국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부끄럽고 민망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