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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ny Apr 29. 2016

인생을 바꾼 인연

첼로의 거장 야노스 스타커

1998년 여름, 필자가 처음 미국 유학을 시작했을 당시 학교를 상징하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바로 거장이라는 표현 말고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첼리스트 야노스 스타커(Janos Starker)이다. 헝가리 출신의 스타커는 리스트 음악원에서 공부한 후 미국으로 건너와 시카고 심포니,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수석 첼리스트로 활동하다가 1958년 인디애나 대학교(Jacobs School of Music Indiana University)에서 명 교수로 경력을 이어갔던 클래식 음악계의 입지적 인물이다. 


야노스 스타커에게 첼로를 공부한 사람은 이미 지옥을 경험한 사람과도 같다


“야노스 스타커에게 첼로를 공부한 사람은 이미 지옥을 경험한 사람과도 같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를 거쳐간 첼리스트들의 경력은 보석처럼 화려하다. 그래서인지 연주자보다 교육자로서의 스타커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수많은 첼로 연주자들의 표준이 되는 150여 장의 음반을 남겼고, 그래미상을 포함하여 미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음반상을 수상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스타커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유학 초기에 헝가리의 작곡가 코다이(Kodaly)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비올라로 편곡하기 위해 몇 달을 씨름하던 시기였다. 8분짜리 첫 악장을 완성했을 때 스타커에게 갔는데 그가 진행하는 공개수업(master class)에 초대해주었다. 당시 80세를 바라보던 거장이 자신의 제자도 아닌 새내기 유학생의 연주를 들어야 하는 이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한 네가 이 첼로 곡을 연주한 최초의 비올리스트"라고 격려해 주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무반주 첼로 소나타가 작곡되었던 시절, 사람들은 "연주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다. 일반 첼로 곡과는 달리 악기의 조율법이 다르기 때문에 실제로 악보상의 곡과 실제 연주되는 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들의 곤혹스러움은 여기서 시작된다. 마치 노래방에서 반주를 들려주면서 노래는 반주보다 반음 낮춰 부르라고 하는 것처럼 악보를 익히는 단계의 어려움은 다른 곡들과 차원이 다르다. 지금까지 이 곡을 녹음한 수많은 첼리스트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그의 해석을 뛰어넘는 음반은 단연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코다이의 독주 소나타는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과 더불어 모든 첼리스트들이 반드시 넘어야하는 관문이 되었다. 그 중 스타커가 남긴 코다이와 바흐의 무반주 음반은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Indiana Universtiy Jacobs School of Music


스타커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Hilary Hahn)이 일주일 시간을 내서 그를 만나기 위해 인디애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전 세계를 호령하며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빼곡한 연주 스케줄을 소화하는 그녀가 금쪽같은 시간을 할해하여 시골 동네까지 찾아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연주를 위해서도,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녀를 초대한 사람도 없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이룬 그녀의 음악 여정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함이었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스타커의 지혜를 듣기 위해 낮선 여행을 자청했던 것이다. 


첼리스트 양성원 ©예술의전당

한국을 대표하는 첼리스트 양성원 연세대 교수는 어린 시절에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를 따라 수많은 음악회를 따라 다녔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에 잠을 깼을 정도로 음악회는 지루했고 꼬마 양성원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러던 그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음악회가 있었는데 바로 야노스 스타커의 첼로 독주회였다. 나도 저런 소리를 멋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꼬마는 10여 년 후 자신의 우상이었던 스타커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그의 애제자로서 거장의 음악 여정에 함께하는 행운을 누렸다.


일생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로인해 수없이 많은 인연이 생기지만 운명같은 짦은 만남을 통해서도 한 사람의 인생이 송두리째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게된다. 그래서 만남과 인연은 중요한 것이 아닐까. 그것이 비록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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