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홀 예술감독 클라이브 길린슨(Clive Gillinson) 인터뷰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의 기부로 뉴욕 한복판에 세워진 카네기홀이 125주년을 맞았다. 1981년 당시 유럽에서 최고 주가를 올리던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던 차이코프스키를 초청한 개관 음악회를 시작으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카네기홀을 거쳐간 음악가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드보르작, 말러, 바르토크, 그리고 거슈윈과 같은 정통 클래식 뿐만 아니라 베니 굿맨이나 비틀즈에 이르기까지 음악가라면 반드시 거쳐가야하는 무대가 되었다.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1950년대 링컨센터 건립 계획이 발표되자 당시 매년 100회가 넘는 연주를 해오던 카네기홀의 최대 고객 뉴욕 필하모닉이 이주를 결정하자 퇴물이 될 상황을 맞은 것이다. 폐쇄 직전까지 내몰렸던 홀의 운명은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이 주도하는 구명운동을 통해 희망의 불씨로 되살아났다. 뉴욕시는 부동산 업자의 손에 전전하던 카네기홀을 매입하였고, 곧이어 비영리단체로 탈바꿈하는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1976년, 카네기홀 85주년에 처음으로 시작된 갈라 콘서트는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한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였다. 당시 카네기홀의 회장이었던 아이작 스턴의 주도로 시작한 이 콘서트는 호로비츠, 로스트로포비치, 메뉴힌, 피셔-디스카우, 번스타인과 같은 드림팀이 출연하는 전통의 시발점이 되었고 그 명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후 몇 차례 보수 공사를 통해 아름다움과 더불어 최고의 음향으로 무장한 음악가들의 최종 종착지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한국에서 7000마일 떨어진 뉴욕의 한 콘서트홀의 125년을 경청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카네기홀의 수장 클라이브 길린슨(Clive Gillinson)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맨해튼 그의 집무실을 찾았다.
인도에서 태어나셨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네, 맞습니다. 제가 카네기홀에서 처음 일하게 되었을 때 인도의 한 유력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인도 출신 소년이 카네기홀의 수장이 되다”라는 기사를 1면에 내고 싶어했지요. 그런데 생후 3개월에 인도를 떠났다고 이야기 했더니 곧바로 관심을 꺼버리더군요. 인도에서 태어난 건 맞지만 워낙 짧게 있었어서 제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유명 악단의 첼리스트에서 전문 경영인으로 옮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예술단체 경영은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고 예전부터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였어요. 그런데 재정적인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당시 매니저도 악단을 떠나게 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새로운 매니저를 영입하려고 했지만 파산이라는 커다란 위기를 감수하고 악단을 살릴 적임자를 찾지 못했지요. 어찌하다보니 제가 3개월 동안 시한부로 매니저의 업무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자 악단에서는 제게 매니저를 맡아달라고 정식으로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책임질 확신도 없었고, 더 좋은 후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 끝에 악단의 요청을 고사했지요. 이후 계속 첼리스트로 일하면서 악단의 살림을 도왔습니다. 시간은 더 흘렀고 런던 심포니는 제게 다시 한 번 매니저직을 맡아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때는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식 매니저로 취임하게 되었어요. 그 자리에서 21년을 런던 심포니와 함께 했고 2005년에 카네기홀로 옮겨 왔습니다.
올 시즌이 카네기홀 125 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25년이라는 숫자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기념이 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 있다는 것은 기회입니다. 그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일을 이루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가야하는 길을 조망해 볼 수 있다는 차원에서 그렇습니다. 지난 125년 동안 카네기홀이 남긴 놀라운 예술적 유산을 통해 사회에 공헌한 바가 있다고 자부합니다.
특별한 시즌인만큼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목부터 눈에 띄는 “125 Commissions Project”부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카네기홀 125년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만큼이나 미래를 제안하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지요. 먼저 향후 5년 동안 다양한 세대의 작곡가들에게 총 125작품을 새롭게 위촉하는 방대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입니다. 최소 125작품,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지요. 저는 이 프로젝트가 클래식 음악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중요한 축은 현대음악으로 명성있는 크로노스 콰르텟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Fifty for the Future”라는 이름으로 매년 10작품씩 5년간, 총 50작품(남성작곡가 25명, 여성작곡가25명)을 저희와 크로노스 콰르텟이 공동 위촉하고, 카네기홀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초연될 예정입니다. 이 공연은 온라인을 통해 무료티켓이 제공됩니다.
“Fifty for the Future”이외에 지난 10월 시즌 오프닝 연주때 뉴욕필하모닉의 연주로 초연되기도 했던 작곡가 매그너스 린드버그(Magnus Lindberg)의 작품이 총 3곡 초연됩니다. 이밖에 존 아담스 (John Adams), 탄둔 (Tan Dun), 브래드 멜다우(Brad Mehldau), 아론 커니스 (Aaron Jay Kernis), 캐럴린 쇼 (Caroline Shaw)를 포함한 다양한 작곡가들이 선보이는 36곡의 새로운 작품도 소개됩니다.
최근 베를린 필하모닉의 사이먼 래틀을 초청해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한 것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번 연주도 125주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성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Perspectives: Simon Rattle”였습니다. 이번 시즌과 내년 시즌, 두 차례에 걸쳐 카네기홀에 상주하며 음악회를 열게 됩니다. 이번 시즌에는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선보였습니다. 지난 11월에 5일 동안 연주가 열렸었는데 그야말로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연주자와 관객이 혼연일체가 되었던 음악회에서 엄청난 에너지와 감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래틀이 연주 전에 이야기 했듯이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대하다보면 그 정상에서 낭만파 시대를 직시할 수 있게 됩니다. 이후 150년의 음악이 어떻게 진화했는지의 밑그림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독일 전통을 대표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만남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erspectives: Evgeny Kissin”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프로젝트가 눈에 띄는데요. 키신을 초청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키신과 카네기홀은 여러모로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올해가 카네기홀 125주년이기도 하지만 키신의 카네기홀 데뷔 25주년이기도 합니다. 1990년 당시 카네기홀 100주년 기념으로 열렸던 그의 리사이틀이 연주 실황 CD로 출반되어 큰 호평을 받기도 했는데요, 세월이 흘러 이제 키신은 우리 시대의 가장 존경받는 아티스트이자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뉴욕의 청중을 만나게 된 것이죠.
Kissin Perspectives는 총 여섯 번의 연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뉴욕 필하모닉(알렌 길버트 지휘)과 메트 오케스트라(제임스 레바인 지휘)와의 협연, 두 번의 독주회, 한 번의 실내악 연주회(펄만/마이스키), 그리고 유태인 작곡가들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선보이는 무대를 펼치게 됩니다.
이밖에 특별한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유명 포크 싱어송라이터인 로잔 캐시(Rosanne Cash)가 꾸미는 네 번의 음악회를 비롯해, 번스타인 작곡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세 차례 무대에 올리는 “The Somewhere Project”도 계획되어 있습니다.
125주년 관련 내용에서 화제를 바꿔 보겠습니다.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카네기홀과 줄리어드 음대가 주축이 되서 시작한 Ensemble ACJW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한국에는 없는 독특한 모델인데 어떤 단체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ACJW는 카네기홀(C), 줄리어드 음대(J), 와일 인스티튜트(W), 그리고 뉴욕시 교육부와 파트너 관계로 운영되는 단체입니다. 음대를 졸업한 유망한 연주자들을 선발해서 다양한 형태의 연주 기회를 제공할 뿐만아니라 뉴욕 인근의 공립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의 기회를 2년간 제공하는 펠로우십 프로그램입니다. 2007년 처음 시작하였는데, 초기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은 잘 자리 잡았고 안정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ACJW를 시작한 배경이나 동기가 궁금합니다.
학교를 막 졸업하는 젊고 뛰어난 재원들이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까 하는 고민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청중이 바라고 사회가 요구하는 음악가의 표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요. 제가 처음 카네기홀에 왔을 당시 매년 1만5천명의 음악 전공자가 배출되는 반면, 오케스트라에는 150명을 위한 자리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을 위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ACJW라는 새로운 모델을 통해 젋은 음악가들이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길을 성공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ACJW에 한국인/한국계 단원이 있나요?
현재 18명의 펠로우들 가운데 김시우(바이올린), 김범재(플루트), 그리고 대니김(비올라)이 한국계 단원입니다. ACJW를 거쳐간 많은 펠로우들이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 중 한 명은 뉴욕 필하모닉의 한국인 플루트 단원 손유빈 입니다.
이 밖에 몇 년 전부터 특정 도시와 그 문화를 집중 조명하는 페스티발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7년에 “Berlin in Lights”이라는 페스티발을 개최했던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에는 작곡가 번스타인의 음악을 중심으로 미국 음악의 역사를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09년에는 중국(Ancient Paths, Modern Voices), 2010-11년 시즌에는 일본(JapanNYC), 2012년은 라틴 아메리카(Voices from Latin America), 2014년에는 빈 필하모닉과 빈 슈타츠 오퍼가 참여한 “Vienna: City of Dreams”와 더불어 남아프리카의 문화를 소개하는 페스티발이 있었습니다. 뉴욕이 다양한 문화가 집중되어 있는 곳이라는 유리한 점이 있지요.
마지막으로 한국 문화나 음악가들을 집중 소개할 계획은 없으신지요?
최근에 있었던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도 다시 한 번 확인했지만 한국은 대단한 나라입니다. 국가의 크기나 인구수에 비해 뛰어난 예술적 재원들이 모여있는 곳이지요. 지난 가을에 열렸던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와 쇼팽 콩쿠르라는 최고 명성의 대회 우승자가 모두 한국인이라는 것은 이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곧 발표할 예정이지만, 뛰어난 한국 음악가들을 카네기홀 무대로 초청하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아티스트들은 세계 클래식 음악의 최전선을 지켜내고 있는 우리 시대의 커다란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카네기홀 125주년을 맞이하며 안네 소피무터는 카라얀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카네기홀과 똑같이 생긴 홀을 지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공간이 살아낸 역사는 흉내낼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카네기홀은 인류에게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선물해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은 저에게도 매우 특별한 곳이에요. 왜냐하면 아티스트로서의 나를 만들어주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야 하는, 최선의 내가 있도록 하는 신비스러운 공간입니다.
이들이 걸어온 길은 우리가 곧 직면하게 될 미래의 단면이다. 그들에게는 앤드류 카네기와 아이작 스턴과 같은 개척자들이 있었다. 예술혼을 불태우는 수많은 음악가들과 더불어 타협할 수 없는 무대를 만들어간 스탭들의 땀방울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눈물을 선사했다. 최고의 무대를 지켜내려는 치열하고 끊임 없는 후원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공간은 헤아릴 수 없을만큼 가득 채워진 청중의 갈채와 환호로 매순간 다시 태어났다. 카네기홀 125년,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