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조지 거슈윈
현역 시절 김연아 선수의 기량이 최정점에 달했던 지난 2010년, 그녀는 전 국민에게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안겨 주었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완벽했던 그 경기를 몇 번씩 다시 찾아봤다. 쇼트트랙이나 빙속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왔던 한국 대표팀이었지만, 여자 피겨스케이팅은 단 하나의 금메달뿐인 그야말로 동계올림픽의 꽃이 아닌가. 그 무대의 가장 꼭대기에 한국 선수가 올라갔다는 사실이 한동안 믿기지 않았다.
김연아 선수는 첫날 쇼트프로그램에서는 영화 007 시리즈의 음악을, 이튿날 프리부문에서는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을 사용하며 절정의 무대를 선보였다. 당시 해설진은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이 주로 남자 선수들의 연기에 사용되는 힘이 넘치는 곡이라고 소개하며 여자 피겨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많이 연주되지 않던 거슈윈의 협주곡이 김연아 선수로 인해 조명되며 사람들의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거슈윈’을 입력하면 작곡가에 대한 정보와 더불어 수많은 밴쿠버 올림픽 피겨 관련 기사들이 검색된다. 거슈윈의 음악은 별로 듣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한 네티즌은 김연아 선수 때문에 피아노협주곡을 감동적으로 들었다고 했다.
음악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조지 거슈윈은 친숙한 이름이 아닐지 모르겠다. 그는 유럽중심의 클래식 음악 전통에 재즈라는 요소를 가장 성공적으로 접목시킨 인물이다. 그의 선율은 최고의 재즈 트럼펫 연주자 루이 암스트롱의 영감을 떠오르게 하고, 뉴올리언스에서 듣는 빅밴드 공연을 옮겨 온 듯한 착각을 불러온다. 그는 1990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또 한 명의 작곡가 애런 코플런드와 더불어 가장 미국적인 정서를 담은 음악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계 부모를 둔 조지 거슈윈은 1898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제대로 된 작곡 수업을 받지 못했던 그는 16살에 고등학교를 중퇴한 이후 뉴욕 극장들을 전전하며 극장의 음악들을 몸으로 체득했다. 그는 좋은 선생님과의 만남을 통해 작곡을 배운 것이 아니라 극장의 밴드 음악을 접하는 일과 함께, 한 음악출판사의 피아니스트로 속해 있는 동안 감각적인 선율을 작곡하는 것으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발전시켰다. 그의 음악에 현장이 느껴지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대로 된 작곡 수업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었다. 당시 유럽은 프랑스 작곡가 라벨이 중요한 인물로 평가를 받던 시기였고, 거슈윈은 그의 제자가 되어 제대로 된 작곡 수업을 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라벨은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미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미국적인 언어로 구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공부해서 이류 라벨이 되기보다는, 지금 가고 있는 길로 정진해서 일류 거슈윈이 되는 것이 낫다”는 라벨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최고의 선생님을 만날 기회에 부풀었던 거슈윈의 입장에서는 자존심에 상처가 있었겠지만, 라벨은 극장 밑바닥부터 단단히 연마된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이를 지켜주고 싶었던 것이다.
거절이라는 방법을 통해 가장 큰 가르침을 받았던 거슈윈은 38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뮤지컬과 대중음악 작곡에도 힘을 쏟았다.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는 할리우드로 이주하여 영화음악 작곡에 몰두했다. 피아노 협주곡을 비롯해, ‘랩소디 인 블루’, 서머타임으로 잘 알려진 오페라 ‘포기와 베스’등을 통해, 그는 대중과 가까운 자신의 음악세계를 견고하게 세워가며 동시에 그 외연을 확장시켜갔다. 당시 100만 장이나 팔릴 만큼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랩소디 인 블루’는 일본의 대표적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 등장했고, 노영심이 작곡했던 변진섭의 ‘희망사항’에도 사용되었다.
어둑 컴컴한 시골의 한 작은 재즈바에서부터 밴쿠버의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의 역사적인 순간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그의 음악의 힘은 보통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가장 미국적인 감성으로 덧칠한 대중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거슈윈은 가장 미국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작곡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