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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ny Jun 02. 2016

3인의 혁명

포스트 모던 아티스트 3인방의 예술 세계

미국이 낳은 모스트 모던 댄스의 거장이라 불리웠던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이 동시대 다른 무용가들과 달랐던 점은 춤에 있어서 움직임 자체에 관한 견해였다. 유유히 흐르는 배경 음악에 따라 이야기가 펼쳐지는 서사적 구조를 가졌던 일반 현대무용과는 달리 커닝햄의 작품은 동작이 가진 고유한 가치를 그대로 지켜내는 편이었다. 실제로 그의 생전에 무대에 올렸던 200여 작품들의 대부분은 연극적 요소가 가미된 드라마가 아니었다. 그는 동작으로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미해 보이는 간결한 몸짓 자체만으로도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춤은 그냥 동작일 뿐 이라는 것이다. 전통적 개념의 틀을 깬 새로운 세계였다.


비디오 아티스트로 알려진 백남준의 작품 역시 커닝햄의 예술 세계와 맥을 같이 했다. 그는 백남준의 행위예술과 비디오 아트 작품 세계를 높이 평가했다. <TV물고기>라는 백남준의 작품 속에 등장하여 춤을 추었고, 백남준의 초청으로 팀을 이끌고 한국에서 수차례 공연을 가졌다. 뉴욕을 베이스로 했던 두 거장은 동시대의 예술적 동지가 되었다. 사실 백남준은 일본에서 음악과 미술을 함께 공부한 후, 독일로 건너가 미술, 건축, 철학, 그리고 음악 등을 두루 섭렵하여 그의 예술적 토양을 확장시키며 시대를 앞서가는 비디오 아티스트로서의 기반을 쌓아갔다. 


Cunningham in rehearsal with dancers, photo by Mark Seliger
The Anarchy of Silence. John Cage and Experimental Art
<TV Fish> by Nam June Paik


이 두 사람의 예술 세계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 있었는데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이다. 그는 백남준이 동경대학 재학시절 연구하던 쇤베르크(12음기법을 확립하여 조성음악의 해체의 선봉에 섰던 작곡가)의 숭배자였다. 그는 목적적 무목적성을 표방하여 우연성 음악 세계를 개척한 작곡가이다. 


1952년 뉴욕 맨해튼에서 북쪽으로 100마일 떨어진 우드스탁(Woodstock)에서 열린 한 음악회에 피아니스트 데이빗 튜더(David Tudor)가 무대에 올라왔다. 그는 손에 쥐고있던 작은 시계를 피아노 옆에 두고 연주를 시작했다. 1악장이 시작되는가 싶었는데 1분 30여초가 지나자 튜더는 피아노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뚜껑을 열자 이제는 연주가 시작되는 줄 알았지만 2분 40초 동안 아무런 연주를 하지 않고 뚜껑을 닫았다. 세 번째로 피아노 뚜껑을 열었을 때 역시 1분 20초 동안 그는 피아노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뒤로 돌아왔다. 튜더는 4분 33초 동안 무대 위에서 어떤 음도 연주하지 않았다. 대신 관객들의 숨소리와 술렁대는 소리, 그리고 밖으로 나가는 청중의 발자국과 같은 우연한 소리들이 연주된 것 뿐이었다. 


존 케이지의 예술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4분 33초>를 통해 그는 ‘소리’를 매개로 하는 음악의 정의를 다시 쓰게 했다. 기존의 ‘화음’ 혹은 ‘불협화음’이라는 차원을 뛰어넘어 ‘음악으로서의 소리’ 혹은 ‘그냥 소리’라는 새로운 구도를 제시했다. 존 케이지는 피아노의 줄에 여러 나무 조각이나, 쇳조각 같은 것을 닿게 하여 피아노가 소리를 낼때마다 우연한 울림들이 만들어지도록 하거나, 타자기 소리 같은 각종 생활 소음을 마이크를 통해 여과 없이 들려주는 것을 그의 음악 소재로 삼았다. 그는 동전을 던져 작곡의 방향을 정하기까지 했다. 


머스 커닝햄에게 있어서 춤은 동작의 조직이었듯이, 존 케이지에게는 음악은 침묵을 포함한 소리의 조직이었다. 존 케이지와 같은 시대를 살아갔던 백남준 역시 그와의 만남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말했을 정도로 큰 영향을 받았다. 


작곡가 존 케이지를 필두로 한 포스트 모던 아티스트 3인방의 예술 세계는 쉽게 이해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그들이 시도했던 혁명들을 통해 대중을 어루만지고 살갑게 교감하는 예술의 지평이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이 당장 우리 피부로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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