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K Dec 20. 2015

대한민국에서 삼십대 후반에 자발적 백수로 살아간다는 것

자발적 잉여의 사회 적응기

백수 :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 (같은 말-백수건달)

 사전상 백수의 정의이다. 요즘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의미와는 조금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대동소이하다고 생각되는 의미이다.

 스스로 어쩌다 자발적 백수를 선택하게 되는 사태를 초례하게 되었을까? 그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몇 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13년 대한민국이란 사회가 정해놓은 틀속에서 아주, 그것도 안정적으로  적응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항상  마음속에는 불씨 하나가 존재했는데, 그 불씨가 시간이 지나도 꺼지지 않고, 그렇다고 확 불타오르지도 않고 그 자리에 꾸준히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켜져 있었다. 그런데 미스터리 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불씨가  또렷해진다는 것이다. 


누구나 그런 불씨가 마음속에 켜져 있을 것이다.  그 불씨는 절대 꺼지지 않는다. 


 다만 불씨 위에 기름은 확 부을 수 있는 선택 권은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무언가 불합리하고 억울한 감도 없지 않지만 일방통행인 것은 확실하다. 2013년 그 시절 나는 자존감이  넘쳐흘렀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거라 믿었으며, 스스로는 특별하다라고 자만하고 있었다. 되돌아 생각하면 볼이 화끈거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 한동안 발끝만 뚜러지게 보게 된다. 그 시절의 흘러넘친 자존감은  마음속에 존재하던 불씨까지 옮겨 붙었고 순식간에 활활 타올라 버렸다. 그 불씨는 사표를 던지게 하였고, 패기 넘치는 여행을 떠나게 하였다. 여행을 다녀오면 무엇가 많이 바뀌고 더욱 성장하여 삶에 어떤 전환기가 확 다가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혼자만의 착가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고작 2달 정도의 시간은 

여행이 나에게 아무런 것도  가져다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을 깨닫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25개월의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고, 여행 마지막 도시 뉴욕에 도착했을 때 많은 생각들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외면하고 굳게 닫아 놓았던 돌아간 후의 삶에 대한 문이 자연스럽게 열리게 되었고 그 생각들은 무서운 속도로 뻗어나와 뇌를 잠식해 나가기 시작했다. 많은 생각과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을 가지고 돌아온 이곳은 나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주도적인 삶을  살아온다고 믿었으나, 막상 100% 순도의 주도적 삶이 주어지니 사막 한가운데 홀로 떨어져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와좌왕하는 어린아이의 모습과 다름이 없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한국 사회라는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스스로를 능동적이고 자주적인 인간이라 소리치며 살아왔던 것이다. 


컨베이어 벨트 위의 삶은 아주 편했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무리 없이 잘 흘러간다. 내가 잘하든 못하든 그것과는 별게의 문제이다. 벨트 위에서 아래로 내팽개 처지지 않을 정도의 결과를 보여준다면 벨트 위에서 보는 세상은 앞날도 대충 보이며 크게 예상을 벗어나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그 위에서도 많은 변수가 존재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돌발변수에 정신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줌 아웃을 하여 멀리서 본다면 컨베이어 벨트 위에 앉아 흐름에 따라 흘러간다면, 십 년 후에는 어디쯤 가있을 것이며, 이십 년 후쯤에는 어디쯤 있을지 대략 예상은 가지 않는가?!.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바라 본 아래의 세상은 매력적으로 보였다. 스스로 걸어가고 스스로 개척해가고 만들어가는 삶. 벨트 위에서 걸어봤다는 자신감에 벨트 위에서 땅위로  뛰어내렸다. 실질적으로 벨트 위에서 걸음마도 아닌 기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착각에서 비롯된 행위였다. 위에서 본 땅은 아스팔트 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뛰어내린 땅은 아스팔트가 아닌 갯벌이었다. 


 가만히 서서 생각하면 발목이  쑤욱하고 밑으로 빠져 들어 버린다. 뛰고 싶지만 발목까지 빠져버린 발에 어설프게 달려가면 넘어져 버려 온몸이 진흙으로 더러워질까봐 두려워  조심조심 걷게 된다. 그럴수록 컨베이어 벨트 위의 사람들은 점점 멀어져만 간다. 몸 쓸 불안감과 자괴감이 한동안 괴롭혔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어디로 걸어갈지도 모르며 넘어질지도 모르다는 스스로의 자괴감이 발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갯벌에 발을 푹 담근 체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한 달간의 시간이 지난 후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글쓰기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인생에 있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다시 한번 믿어 보기로 마음을 먹고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나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영국 날씨처럼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을 개었다 흐렸다를 반복하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러다 예상 밖의 일이 터진 것이다. 


아내가 임신을 한 것이다. 

 물론 실수를 한 것은 아니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아내의 재취업 후 그동안 해오던 피임을 끊고 아이를 가지기로 한건 계획에 의한 것이었으나 이렇게 빨리 생길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년 초에 아이가 우리에게 와준다면 고맙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피임을 하지 않자 바로 온 것이다. 

(부모를 닮아 아이의 성격도 참 급하다. ㅡㅡ;) 


 여행을 떠나면서 그리고 다녀오고 나서 혼자서 짊어지고 가려고 했던 가장의 무게를 조금  내려놓았었는데, 아기가 생김과 동시에 짊어지고 있던 무게의 몇 배가 한꺼번에 느껴졌다. 그 무게에 자연스럽게 눈과 생각은 컨베이어 벨트 위로 향하게 되었고 내면에선 컨베이어 벨트의 삶과 땅위의 삶에 대한 끝장 토론이 몇 날 며칠을 이어가고 있었다. 


 잠정적 휴전 상태에서 일차적으로 컨베이어 벨트가 우위를 점하게 되었고,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었다. 

정말 고맙게도 몇몇의 외국계 기업들이 기회를 주었다. 그리하여, 그동안 스스로 만족하며 멋스럽게 길렀던 수염을 자르고 오랜만에 슈트를 꺼내 멋스럽게 입고  집 밖을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이 들뜬다거나 긴장된다거나 흥분된다는 그런 류의 감정들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고 무덤덤을 넘어 화장실에 갔다가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뭔가 개운하지 않은 느낌까지 드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의문이었던 것이 면접을 다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확신으로 변했다. 돈 때문에 가슴이 뛰지 않는 일을 기계처럼 하는 것보다는 가슴이 뛰는 일을 해보자.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적인 결정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결정을 지지해준 아내의 믿음과 응원에 30대 후반의 젊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렇게 고맙게 나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회사 담당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대한민국에서 삼십 대 후반에 자발적 백수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INNER PEAC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