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못한 변수로 자전거여행은
산악국가인 네팔의 오르막이야 어느 정도 예견했었고 눈, 코, 입으로 들어오는 모래바람도 당연히 각오는 했었지만 네팔 도로의 기간시설이 이렇게나 안 좋은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네팔 어디에도 신호등은 없었고, 자동차들과 보행자들의 눈치싸움은 만연했다. 그나마 도심에는 교통경찰 한 명이 홀로 교통체증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달리는 고불고불한 산길엔 반사경이 있을 리 만무했다. 가끔 이런 산길을 달리다보면, 갑자기 튀어나온 트럭에 아찔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게다가 추월은 어찌나 빈번한지,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추월 차량 때문에 도로의 바깥으로 밀려나기가 일쑤여서, 깎아지른 절벽에 언제나 간담이 서늘했다.
가드레일 또한 허술하거나 없는 곳이 대부분이라, 지금 내가 이러는 것이 결코 엄살이 아니었다.
허나 점점 이것들에 적응되어도, 문제는 네팔을 떠날 때까지도 도저히 감당 안 되는 녀석,
바로 이 녀석이있었다.
클락션, 네팔에선 혼(horn)이라 부르는, 경적이 바로 그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네팔엔 신호등이 전혀 없다. 반사경도 거의 없다. 대도시 중심에만 교통경찰 몇몇이 있으니까
그래서 나름의 방편으로 발달한 것이 경적이다. 그러데 사실 이게 말이 좋아 발달이지 듣는 이의 입장에선 귀가 찢어진다.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짧고 소심한 경적소리가 아니다.
너무나 화려하고 요란한데다 끊이지 않고 터져 나와, 짜증이 나다못해 나중엔 혼이 빠질 지경이다.
어쩌다 잠잠해지며면 나도 몰래 긴장이 풀려버리는데 그때마다 다시금 파고드는 그 예리한 소리에, 미어캣처럼 몸이 곤두서졌다.
우리나라 오토바이 소리는 명함도 못 내민다.
이날도 산길을 달리며 이런 악조건을 헤치는 중이었다.
도로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출발하려는 찰려는데, 갑자기 자전거 한 대가 불쑥 튀어나와 나를 가로막았다.
“anyounhasey, hakoosalaieyo?”
“......?”
구릿빛 피부의 그는 자전거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알 수 없는 언어로 대뜸 말을 걸어왔다. 난 이 상황이 너무나 당황스러워 그가 하는 말을 이해 못한 채, 빤히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구릿빛 피부를 보니 남미 사람인가? 스페인어는 아닌데?.. 그러면 브라질사람?
갑자기 낯익은 말이 귀에 꽂혔다.
"한국어잖아!? 맞아요, 저 한국사람이에요!"
“역시 맞았네, 혹시나 해서 멈춘 거에요.”
“근데, 어떻게 한국어를 그렇게 잘하세요?”
“난 한국에서 18년간 일 했어. 한국이름은 칠복이야, 칠.복.이.”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전 지금 자전거로 네팔 여행중이에요.”
‘칠복이’라는 구수한 한국이름을 가진 ‘비스워즈’아저씨는 나처럼 ‘포카라’로 가는 중이었다.
왜냐면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과 화려한 스포츠 의류를 입은 아저씨의 모습은 일반 네팔사람과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전거도 네팔에서 본 적 없는 고가여서 네팔 사람이라고는 절대 가늠할 수 없었다.
네팔에선 기어 달린 자전거도 흔치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물론 동네 아저씨들도 내 자전거의 기어를 보곤 뭐냐고 물을 정도였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보면 한국에서 일했던 현지인들을 꽤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반가움에 그들과 대화를 나눴지만 어느새부터는 매번 안절부절했다.
그 이유는 타지생활이란 게 누구에게나 힘들다지만 돈 벌러 온 이들이 먼저 견뎌야 하는 큰 차별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과 한국 이야기를 하다보면, 괜한 불안감으로 뒤통수 아래쪽이 몇 번이나 아렸었다.
“그게.. 혹시, 한국에서 나쁜 일 당하진 않았아요?”
“아니, 그런 거 없었어, 한국 다 좋았어. 나는 비자만 받으면 또 한국 가고 싶어.”
"그래요? 한국에서 일하다 사고 많이 당하던데, 다행이에요."
“아니야, 한국 사람들 다 좋아, 얼마나 친절하고, 착한데.”
네팔에서는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 공부를 한다.
외국인노동자를 보는 우리의 시각이야 제각각이지만 지금 그들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임은 틀림없다. 그들은 현재 우리 산업의 근간을 받쳐주는 주춧돌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소수라는 이유로 혹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또는 자신의 무능을 전가하려는 이유로 무작정 그들은 몰아세웠던 건 아닐까? 최근, 유럽에서 일어난 일련의 테러를 난민들의 소행이라고 넘겨짚은 사례처럼 말이다.
칠복이 아저씨와 대화를 마치고, 다른 도시에서 재회를 했다. 그리고 아저씨의 초대로 카트만두의 아저씨 집에서 한 차례 더 만남을 이어갔다.
그때 아저씨는 내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말고, 사실 한국에서 가슴 아픈 일이 많았다고 조심스레 일러주었다.
그러면서 그 이야기가 날 불쾌하게 만들진 않을까,
오히려 날 걱정하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었던 과거를 얘기하던 아저씨는 갑자기 그때 자신을 도와준 한국인들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를 썼다. 그들이 너무 고맙다는 이유로 말이다. 순간적으로 그런 아저씨의 표정과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부러워서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난 잘 가고 있는 걸까?
한국에 돌아온 지금,
이번엔 내가 아저씨를 떠올리며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아저씨는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