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교육은 정말 필요 없는 것인가?
세계경제포럼은 2016년 1월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을 화두로 제시하면서, 4차 산업혁명을 ‘디지털 혁명에 기반하여 물리적 공간, 디지털적 공간 및 생물학적 공간의 경계가 희석되는 기술융합의 시대’로 정의했다. -다음 백과사전-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밥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현존하는 65%의 직업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고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러한 예측은 인간의 고유한 지적능력을 기반으로 하는 바둑에서 이세돌이 인공 지능 알파고에 의해 4대 1로 대패하며 현실로 다가왔다. 또한 2020년부터 코로나 펜더믹을 겪으며 미래사회로의 변화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에 사회 전반적으로 미래사회에 대한 대비가 필요함이 대두되었고 교육도 마찬가지로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준비 중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급변하는 시대에는 오늘의 지식이 곧 낡은 지식이 될 가능성이 크므로, 기존의 지식을 쌓아가던 교육은 더 이상 비전이 없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라도 필요한 지식을 찾아볼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지적은 더욱 설득력을 갖는 듯하다. 이에 미래사회는 지식교육보다는 창의성을 함양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고 교육부에서 개발하고 있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이러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창의성을 계발하는 교육 방법이란 무엇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지식 교육은 정말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에 대한 의문이 든다.
필자는 2019년 영국의 중등학교 교사인 크리스토둘루가 쓴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일곱 가지 교육 미신’이라는 책을 굉장히 감명 깊게 읽었다. 이 책이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영국의 교육정책의 문제점을 현장의 교사가 논리적으로 지적했다는 점이다. 그 당시(1999년~2012년), 영국은 역량중심 교육정책을 펼쳤고 이로 인해 창의성이 길러진다는 주장하에 학생 참여형 수업, 프로젝트 학습, 협동학습을 최고의 교수법으로 소개하며 지식 교육을 경시했다. 그녀는 이러한 교육정책이 현장에서 어떠한 부작용을 낳고 있는지 교육 임상 전문가로서의 의견을 설득력 있게 밝혔다.
두 번째는 영국에서 역량중심 교육과정의 문제점으로 인해 낮아진 학생들의 학력 문제를 인식하고 2013년 다시 지식 교육의 중요성을 교육과정에 반영하여 학력이 다시 좋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낯선 이국의 교육과정의 변화가 충격적이라고 인식한 것은 이러한 현상과 과정이 현재 우리 교육계에서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역량중심 교육과정은 우리나라 2015 교육과정 총론에 명시되었고 지금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적용되고 있으며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이를 계승한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그렇다면 지식교육은 정말 필요 없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점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일곱 가지 교육 미신>의 챕터들을 활용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가. 지식은 스마트폰 하나면 모두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지식교육은 필요 없다.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조사학습을 시키면 인터넷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복, 붙’(복사, 붙이기)하는 모습들을 많이 본다. 내용들을 살펴보고 이해한 다음 필요한 부분을 정리하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렇게 수행하는 학생들은 극소수에 해당한다. 귀찮아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지식이 너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공전을 검색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두 천체가 중력에 의해 공통 질량중심 주위를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도는 운동> 공통 질량이라는 어려운 용어는 차치하고 중력, 주기 등의 뜻을 모르면 검색 결과를 이해하지 못한다. 현장에서 접하고 있는 학생들은 용어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하게 떨어져 있어 다양한 자료를 검색한다 해도 이를 이해하고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식을 찾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고 검색 결과의 차이 역시 전문지식의 수준에 의해 그 질이 결정됨을 알 수 있다.
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지식의 변화가 급격하기 때문에 오늘의 지식은 낡은 지식이 될 것이다.
언론에서 언급하는 새롭게 변해가는 지식이란 산업계에서 통용되는 지식을 이야기한다. 성인을 상대로 하는 교육에 있어서는 위에서 언급한 이야기가 맞을 수 있지만 학생들에게는 모든 새로운 지식의 가장 근원이 되는 기초지식을 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기초지식을 기반으로 새로운 지식들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지식들의 결합으로 창의성도 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발견을 한 과학자들의 연령이 높은 이유도 해당 분야의 기초지식들을 충분히 쌓았기 때문인 것이다.
가. 지식과 창의성의 관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개정작업 중인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비전으로 ‘표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으로 선정하였다. 미래 시대에 가장 필요한 역량이 창의성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현대사회의 창의성의 대표적인 산물은 스마트폰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스마트폰의 시작을 알린 아이폰을 만들어낸 애플의 스티븐 잡스는 ‘창의성이란 단지 점들을 연결하는 능력이다’라고 밝혔다. 세계 창의영재 권위자인 김경희 교수는 창의력이란 ‘전에 있던 것을 완전히 없애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을 새롭게 구성하고 개선하는 능력’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창의성이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연결하는 능력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연결할 것인가?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지식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창의성 교육의 시작점은 지식교육임을 알 수가 있다. 다양한 지식들을 쌓고 이를 다양한 맥락에서 연결하는 연습이 창의성 교육의 방법인 것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비전은 창의성인데 구체적인 계획 어디에도 지식교육에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다양한 삶의 맥락에서 연결할 수 있는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마치 기초체력이 안되어 있는 아이에게 3점 슛을 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기술을 완벽히 익혔다 해도 공은 링에 닿지 못할 것이다. 창의성 교육에서도 기초체력과 같은 지식 교육이 탄탄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창의성이 발휘되기 힘들 것이다.
나. 지식교육 홀대의 원인 1
미래시대의 중요한 역량인 창의성을 강조하기 위해 교육계에서는 항상 기존의 지식 교육을 제물로 삼아왔다. 이러한 관습은 교육현장에 지식과 창의성을 상호 대척적인 관계로 인식하게 하였고 지식교육과 관련된 이야기는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현재 적용되고 있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위에서 언급한 영국과 마찬가지로 역량을 강조하며 지식 교육이 아닌 학생 참여형 흥미위주의 활동, 경험 중심의 교육을 강조하였고 이는 지식교육에 대한 홀대를 더 가중시켰다.
다. 지식교육 홀대의 원인 2
산업화 시대에 기성세대들이 학교에서 받았던 교육은 최대한 많은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었다. 이에 이해되지 않는 내용들도 기계식으로 암기해야 했고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강압적인 체벌을 감당해야 했다. 이러한 강압적이었던 시대적 잔상은 지식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라. 현장 임상전문가로서의 견해
현장에서 아이들을 직접 대면하고 있는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학력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음을 몸소 느낀다고 한다. 수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소화하는 학생들이 점점 줄고 있고 학습장애에 해당되는 학생들은 점점 늘고 있으며 대다수의 아이들은 더 이상 앎에 대한 관심과 욕심이 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스티븐 잡스가 창의성은 점의 연결이라 했는데 우리 학생들에게 연결할 수 있는 점의 수가 극히 적은 상태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교육방법이 창의성을 함양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 칸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모든 철학은 칸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그만큼 칸트의 철학적 업적은 서양 철학사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1000년 동안 신에게 속박되었던 인간의 이성이 다시 살아난 근대의 철학은 합리론과 경험론으로 양분되어 대척하고 있었다. 합리론은 인간의 이성으로 지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경험론은 사람들의 직접 경험을 통해서 지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칸트는 그의 저서 <순수 이성 비판>에서 이렇게 대척점에 있던 합리론과 경험론을 결합해 경험과 이성을 통해서 지식을 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을 했고 이는 서양 철학사의 큰 분기점이 되었다.
나. 생뚱맞게 왠 칸트?
지금의 교육계는 미래 인재에게 필요한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서 지식교육보다는 경험과 활동을 중요시하는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근대 철학사에서 이성과 경험의 서로 대척점을 이뤘던 것과 같은 상황이다. 칸트가 경험과 이성 두 요소가 함께 작동해야지 만이 지식을 구성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 것처럼 창의성 역시 지식과 지식을 맥락적으로 활용해 볼 수 있는 경험이 더해져야지만이 발현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원론적 시각을 버리고 탄탄한 지식 교육을 바탕으로 하는 맥락적 경험이야 말로 창의성을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학력이 굉장히 저하되어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지식교육에 무게를 실어줄 필요가 있다.
다. 레고 블록
딸아이가 가지고 노는 레고 블록으로는 무엇이든지 창의적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레고 블록의 개수가 적다면 무엇인가를 만들기가 힘들어진다. 마찬가지로 지식은 창의성을 조립하는 블록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편향되어 있던 지식교육에 대한 인식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재인식되어 바르게 정착된다면 미래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의 모습을 바르게 그려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