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좋은 곳에 가야 한다

멕시코 시티의 한 호스텔에서 있던 이야기

by 유하

멕시코 영화제 측에서 '직접 이곳에 오셔야지만 트로피를 준다'고 했다. 나는 덥석 받으러 간다고 했지만, 메일 끝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영화제 여건상 해외 시상자에게 비행기값이나 숙소값은 제공되지 않습니다.

그렇다. 내가 초대된 곳은 빈도, 베니스도, 베를린 영화제도 아닌 멕시코 시티에서 하는 작은 영화제였다. 그러니 이런 대우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돈이라고는 예전에 통장에 모아둔 약간의 돈과 인터넷 노마드로 벌고 있는 귀여운 수입 정도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돈 걱정이 크게 되지는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이미 몇년을 살아왔으니까. 오히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여행 방식이 있었다.

Workaway.

하루 5시간, 일주일 5일. 노동을 제공하는 대신 숙소와 식시를 제공해 주는 호스트를 찾을 수 있는 플랫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종류는 가지각색이었다. 그림을 그리거나 스쿠버 다이빙 혹은 요가를 가르칠 수도 있고, 호스텔 인셉션에서 일하며 언어를 연습할 수도 있고, 농사를 짓거나 요리하는 일도 있었다. 내가 관심이 있는 키워드 세가지였다. '요가', '농사', '자급자족'. 그 키워드를 중심으로 멕시코뿐 아니라 남미 여러 나라에 지원서를 보냈다. 호스텔도 있었고, 커뮤니티도 있었다. 가정집에도 연락할 수 있었는데 내 키워드와는 맞는 것 같지 않아서 지원하지 않았다. 한 곳에서 최소 한 달간 머물며 남미를 여행할 계획이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물었다. "언제 돌아올거야?"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이랬다.

돈 다 떨어지면 올게 ㅎ

스물일곱 살에 이런 결정을 하는 게 과연 철없지 않은가, 잠깐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6년 동안 이런 선택을 하면서 나는 점점 행복해졌기 때문에 괜한 걱정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결정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설령 결과가 기대와 달랐어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시간은 충분히 나에게 의미가 있었다. 내가 보낸 시간들은 마땅히 내게 필요했을 것이다.


며칠 뒤, 몇 곳에서 연락이 왔다. 그중 내가 선택한 곳은 멕시코 시티 안에서도 조금 조용하고 안전한 동네, [코요아칸]에 위치한 한 호스텔이었다. 도착하기 2주 전에 영상 통화로 면접을 보고 약 2주 동안 그곳에 머물기로 했다.

멕시코 시티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었다. 18시간 동안 비행기 안 공기에 절여진 몸을 우버 뒷자석에 구겨 넣고 어두운 도로를 달렸다.

호스텔 문을 열어준 건 19살의 귀여운 미국 남자애, 헨리였다. 그는 3개월 동안 이곳의 매니저로 있었다고 했다. 밤이지만 공유공간에는 포근한 노란 조명이 켜져 있었다. 아래층에는 조그마한 카페와 공유 사무실이 있었고 루프탑에는 토마토와 당근 등 다양한 채소가 심어져 있는 화분이 옥상 가장자리에 줄지어 있었다. 구석에 있는 테라스, 빨래를 날 수 있는 자리, 그리고 도시의 소음 위로 아주 희미하게 불어오는 바람.

헨리는 여기에 남미권 친구들이 많아 스페인어 연습을 하기 좋다며 나도 곧 이 공간을 사랑하게 될 거라고 했다. 자신은 내일 이곳을 떠나기 때문에 짐을 싸야 한다고 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부르라는 다정한 말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간 헨리. 아쉽지만 잘생고 다정한 미국 뽀이와의 대화는 잠시 접어두고, 나도 이곳의 시차에 적응해야 했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한 뒤 부엌으로 나오자 엄청 마르고 키가 큰, 뽀글머리의 남자애가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인사를 건네자 그는 얇고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했다. 그는 이집션, 이탈리안 믹스였다. 그의 영어도, 나의 스페인어도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탈리아 피가 섞인 사람답게 과할 정도로 친절했다.

그는 "코코아 마실래?" 라고 물으며 이미 물을 올리고 있었다. 조그마한 디저트도 만들어주겠다고 했지만 부담스러워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마치 우리 할머니처럼 내 거절을 못 들은 척했다. 그 당시에는 진짜 못 들은 줄 알았다. 나중에서야 호스텔 생활을 하며 그가 못 들은척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렇게 새벽의 코코아 냄새와 낯선 사람들의 친절 속에서 나의 멕시코 호스텔 생활은 시작되었다.

화, 수, 금,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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