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나와 가치관이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중학교 2학년이 된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미국 하이틴 드라마를 접했다. 제목은 ‘Everybody hates Chris’이었고, 모두가 크리스를 싫어한다는 내용이었다. 영어 수업시간에 그 드라마를 보며 영어를 배웠는데, 나는 그 수업 방식이 꽤 마음에 들었다. 아마 영어 선생님이 젊고 예쁘고 트렌디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 이후로 나는 미국 하이틴 드라마에 푹 꽂혔다. 하이틴 드라마에서 제일 신선했던 것은 바로 ‘파티 문화’였다. 함께 요리를 하고 이야기를 하는 파티와 많은 사람을 초대해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파티, 이렇게 두 형식의 파티가 있었다. 두 파티 모두 재미있어 보였고, 나는 하이틴 드라마 외에도 서양 문화가 스며있는 컨텐츠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외국에 나가서 꼭 파티를 하리라, 다짐했다.
외국에 나가기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것은 언어를 배우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문법 위주의 한국식 영어 학습법에는 진절머리가 나있었다. 그래서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아니, 나의 생각 자체를 바꿨다. 외국에 나가서 원어민과 대화하기 위해 영어를 익히고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를 익히고 연습하기 위해 원어민과 대화하기로. 하지만 내 주변에는 외국인이 없었다. 모를 때는 초록색 네모창에 검색을 해보면 안다. 어학원에 다니라는 조언도 있었고, 이태원에 가보라는 조언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방구석에서 할 수 있는, 제일 쉬운 방법은 ‘외국인 친구 만들기 어플’을 핸드폰에 까는 것이었다.
‘외국인 친구 만들기 어플’에는 전화 어플도 있었고, 문자 어플도 있었다. 그 중 내가 애용한 앱은 전화앱이었다. 약 10분 동안 전화를 할 수 있었고, 서로가 마음에 들면 매치되어 언제든지 다시 전화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한국에 있을 때도 많은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리고 나는 종종 그들과 실제로 만나서 놀았다.
제주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제주도에서 처음 만난 친구 이름은 베스였다. 베스는 한국에서 영어 원어민 선생님으로 일한지 3년정도 되었는데, 한국어를 거의 네이티브처럼 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어플을 통해 알아가다가 서로 마음에 들어 만나기로 했다. 처음 만나기로 한 장소는 제주에 있는 한 비건 레스토랑이었다. 베스는 비건을 하지는 않지만,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비건에 대해 열려있는 편이었다. 나는 30분 정도 일찍 오게 되었다. 그래서 레스토랑을 주욱 둘러보았는데 외국인이 꽤 많았다. 그동안 나는 그곳에서 사람들이 대화하는 것을 엿들으며 베스를 기다렸다.
베스는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우리는 비건 수제 햄버거를 시키고는 대화를 시작했다. 어플로 대화할 때도 느꼈지만, 우리는 공통점이 꽤 많았다. 둘 다 예대를 나왔고,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둘 다 언어공부하는 것을 즐겼다. 우리는 관심사도 너무 비슷했고, 성격도 비슷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할 이야기들이 자꾸만 늘어났다.
그렇게 우리는 짧은 시간에 서로에 대해서 많이 알아갔다. 사실 그 시기는 놀이동산에서 일하면서, ‘내가 제주도에서 왜 살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 무렵이었다. 나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과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외로움이었다. 내 생각에 공감하지 못하는 공간에 있는 일은 정말 괴로웠다. 원래 내 가치관이 뭐였는지 조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베스와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니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지. 내가 이런 삶을 살고 싶었지.’ 하는 부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만남은 잦아졌고, 우리의 사이도 가까워졌다. 낯선 땅 제주도에서 만난, 예상치 못한 인연은 어느새 나의 단단한 버팀목이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외국에 나가서 파티를 하고 싶었던 나의 바람을 베스와 함께 제주도에서 이루게 되었다. 다음 화에는 베스와 함께 한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담아 보겠다.
매거진, [제주도에서 무자본으로 살기]는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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