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외국인 친구를 만나면 생기는 일

제주도에서 소울메이트를 만났다.

by 유하



나와 베스는 만나려고 할 때마다 시간이 맞지 않았다. 나는 휴일에 일했고, 베스는 평일에 일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서로를 만나려고 했고, 결국엔 만나게 되었다.


처음 베스를 만났던 날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우리는 비건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며 여러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너무 잘 통했다. 언어 공부를 좋아하는 것, 독서를 좋아하는 것, 예술가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 환경에 관심 있는 것 등. 우리는 관심 있는 주제를 물고 물어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렇게 말이 잘 통한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의심스럽기도 했다. 정말 이렇게나 잘 맞는다고?


내가 이렇게 의심하는 것은 꽤 합리적인 일이었다. 예전에 만났던 친구 중에도 처음에는 아주 잘 맞는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자주 얼굴을 보다 보니 그 친구가 처음에 했던 말은 모두 나에게 맞춰주기 위한 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첫 만남에 강렬하게 통한다는 느낌을 잘 믿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베스는 달랐다.


베스와 나는 밥을 다 먹은 후에 비를 맞으며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한 카페에 가게 되었다. 그 카페는 정말 낭만적이었다. 큰 창문으로 이루어진 벽 넘어에서는 비가 돌담을 토닥토닥 두드리고 있었다. 우리는 제철과일로 만들어진 수박 주스를 시키고는 같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그림을 그리는 그 시간이 어색할 법도 한데, 나는 무척 집중해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다가 눈을 마주쳐도 그림을 멈추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풍경이 되어 그림에 녹아들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베스와 자주 만났다. 우리는 책을 좋아해서 자주 도서관이나 서점에 갔었는데, 그런 곳에 갈 때마다 기본 두 시간에서 네 시간 정도는 책을 읽었다. 베스는 내가 읽는 책에 관심을 가졌고, 나는 베스가 읽는 책이 궁금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추천해주는 책을 읽었다. 내가 베스에게 맨 처음 추천해준 책은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꽤 두꺼운 책이었는데, 베스는 그 책을 일주일 만에 한국어로 다 읽었다고 했다. 영어로 번역되어 있는 ‘노르웨이의 숲’은 재미없었는데, 한국어로 읽으니 확실히 다르다고 했다.


베스는 한국에서 산지 3년 차가 되어 간다. 그리고 한국어를 아주 유창하게 한다. 발음면에서는 미국인의 억양이 조금 들리지만, 어휘면에서는 한국사람 이상이다. 솔직히 외국에서 산다고 그 외국어를 잘하게 되지는 않는다. 나도 호주에서 1년 정도 살았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영어가 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베스를 보며 더욱 자극을 받았다. 베스와 대화를 나누며 언어를 공부하는 방법과 자세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었다.


요즘은 베스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비건 음식을 만들고 있다. 베스는 비건은 아니지만 환경을 위해, 건강을 위해 비건식을 자주 먹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서 비건 인구가 늘고 있다고 해도, 내 주변에서 비건인 사람을 찾기는 확실히 힘들다. 그런 와중에 베스가 먼저 일주일에 한 번씩 비건 음식을 만들자고 제안해준 것은 정말 고마웠다. 외국 친구와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는 것.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아주 재미있는 일이다. 타코를 먹고 싶은 날에는 라틴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추며 요리를 하기도 하고, 당근 테킬라가 먹고 싶은 날에는 당근 테킬라를 만들고 남은 당근으로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들기도 한다. (이와 관련된 연재는 블로그에서 하고 있다.)


베스와 함께 있으면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뚜렷해진다. 내 주변 사람은 항상 나를 ‘걱정’하며 내 행동을 막으려고 한다면, 베스는 ‘그래! 한번 해봐! 만약에 성공한다면 정말 멋질 것 같아. 성공하지 않는다고 해도 재밌을 거 같은데?’라는 말로 나를 움직인다. 놀이동산을 그만둘 때도 나의 결정을 지지해주었다. 그렇게 베스와 함께 하면서, 나는 누군가를 지지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도 누군가가 무엇을 걱정하거나 결정할 때, 안된다고 말하기보다는 그들의 결정을 믿고 지지해주기로.


매거진, [제주도에서 무자본으로 살기]는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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