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 하는 동물은 때려도 되나요?
나는 놀이동산의 댄서이자 연기자로 제주도에서 친구와 함께 자취를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퍼레이드도 했고, 연극도 했으며, 스트릿 댄스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동물 형태의 인형탈을 쓰고 해야 했다. 예전에 탈을 쓰고 전단지 돌리는 알바를 했었다. 그때는 탈을 쓰고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참 힘들었는데, 탈을 쓰고 춤을 춰야 한다니!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익숙해지니 곧 잘하게 되었다.
처음 인형탈을 쓸 때는 정말 힘들었다. 인형의 발이 너무 커서 걸을 때도 발을 모으지 못한 채로 걸어야 했다. 또 머리가 너무 커서 팔을 올릴 때도 끝까지 올라가지 않았다. 머리 무게 때문에 거의 일주일은 어깨가 아팠던 것 같다. 캐릭터의 눈은 나의 눈과 볼 사이에 위치해 있어서 한쪽 눈을 통해서만 앞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편하게 한쪽 눈으로만 보려고 하면 인형탈의 고개가 돌아가기 때문에, 그냥 보는 것을 포기하며 걸어야 했다. 처음에는 길이 익숙하지 않아서 자주 넘어질 뻔했지만, 길이 익숙해진 후에는 뛰어갈 정도가 되었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숨 쉬는 것이었다. 특히 제주도에서 더운 날에는 습기가 엄청났기 때문에 숨을 쉬는 것이 쉽지 않았다. 멤버 중 한 언니는 폐소 공포증이 있어서 더 힘들어했다.
우리는 분장실에서 공연을 하는 곳까지 캐릭터용 열차를 타고 이동했다. 우리는 그때도 항상 캐릭터 연기를 해야 했다. 나는 여성스러운 캐릭터였기 때문에 항상 여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 열차를 타고 이동을 할 때는 한껏 연예인 기분에 심취할 수 있었다. 내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면 사람들이 내 인사에 답해주었다. 심지어는 먼저 인사해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열차를 타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꼭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흔드는 손을 잡기 위해서 막 뛰어 오곤 했다. 하지만 매니저님은 움직이는 열차를 타고 있는 캐릭터의 손을 잡으면 관광객이 위험하니까 우리에게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다가오는 사람의 손을 은근슬쩍 피하거나 손 모양을 파이팅하는 포즈로 바꾸기도 하며, 그 상황에 대처했다. 대부분 캐릭터가 신기해서 다가오는 손님은 어린이 손님이었지만, 그날 다가온 손님은 울퉁불퉁 근육이 몸에 박힌 중년의 남자 손님들이었다. 나는 평소대로 손을 잡지 못하도록 피했는데, 그 손님들은 그게 자존심이 상했는지 내 머리통을 치고 마구 비웃었다. 나는 동물 캐릭터였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그 상황을 스탭들에게 알릴 수도 없었다. 나중에 분장실로 돌아왔을 때 울분을 토하면서 말하기는 했지만, 그때는 이미 지난 일이었다.
이렇듯 동물 캐릭터 인형탈을 쓰면 조금 억울한 일이 많이 생겼다. 특히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를 만만하게 봤다. 심지어 어린 꼬마들도 사진을 찍는 시간에 다가와서 마구 때리기도 했다.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쟤네들한테는 그래도 돼'라고 말하는 학부모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이 문구가 머리에 스쳤다. ‘연예인이니까 감수해야지' 누군가에게 가하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나는 여자 캐릭터였기 때문에 조금 더 힘들었다. 바로 치마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성추행’이라고 불리는 ‘아이스께끼'는, 동물 캐릭터에게는 해도 상관없는 장난이었다. 이 뿐 아니라, 돼지 캐릭터에게는 ‘너 정말 맛있게 생겼다.’라는 발언도 과감 없이 하기도 했다. 이런 일을 겪으며 나는 현타가 왔다.
그즈음에 내가 호주에서 만났던 전 애인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네덜란드 사람이었는데, 요즘 뭐 하고 있느냐고 안부를 물어봤다. 나는 동물 인형탈을 쓰고 춤을 춘다고 말했다. 그는 내 말을 듣더니, 왜 그런 일을 하냐고 말하며 웃었다. 네덜란드는 동물의 권리에 대한 법이 있을 정도로 동물을 하나의 생명체로 간주한다. 그러다 보니 동물을 이용한 관광상품은 거의 없는 편이다. 네덜란드에 있는 동물원도 동물을 전시해 놓는 개념이 아닌, 동물의 집에 사람이 방문했다는 느낌으로 공간을 구성해 놓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이라면 절대 내가 하는 일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비건으로서 동물원에 가지 않고, 돌고래 쇼 등 동물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행위를 불매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또한 동물을 대상화하고 전시하는 일이 아닐까? 귀엽다며 마구 만져지고,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껴안는 행위. 상대방은 분명 좋은 의도로 한 것이지만, 그것을 당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확실히 느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그런 것을 사람들에게 촉진시키는 행위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렇게 나는 결국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매거진, [제주도에서 무자본으로 살기]는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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