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러버와 비건은 함께 살 수 있을까?
“유하는 비건이에요.”
나는 갑자기 내 친구로부터 커밍아웃(?)을 당했다. 사실, 나는 직장생활을 할 때는 내가 비건이라는 사실을 밝히기 어려워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의도치 않게 내가 비건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에게 고마웠다. 놀이공원에는 외국인이 많이 있었어서 그런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비건이라는 개념을 잘 받아들이는 듯했다.
특히 팀장님은 친구의 커밍아웃(?)을 듣고 나를 특별히 신경 써줬다. 배식을 담당해주는 분들께 새로 들어온 사람 중에 비건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고, 내가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반찬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다고 하루 두 끼 제공해주는 곳에서 비건 식단이 함께 나오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채소나 과일이 반찬의 비중을 많이 차지하지 않는 날은 힘들었다.
나는 그 기간을 내 친구 덕분에 잘 이겨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친구는 내가 비건을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다. 서울에 있을 때도 비건 맛집을 찾아서 나를 데려가기도 했고, 인스타에 떠도는 신상 비건 마카롱을 나에게 사주기도 했다. 작년 내 생일 선물로는 비건 만두 열 팩을 사주어서 일 년 내내 간식으로 만두만 먹었다. 이번 생일에는 비건 떡 케이크를 주문 제작해주었는데 너무 맛있고 예뻤다.
비건이라면 다 알 거라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나에게 공감해주지 않는지. 그래서 이렇게 지지해주는 친구가 있으면 너무 고맙고, 그 존재가 소중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친구는 정말 고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예쁜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비건이 되는 일은 ‘착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여튼 그런 이유로 반찬에 채소와 고기가 함께 나오면 고기만 빼서 친구를 주었다. 아니면 애초에 반찬을 담을 때 고기만 빼고 담으려고 노력했다. 나물은 비교적 담기 쉬웠는데, 고기와 함께 볶아 나오는 채소 같은 경우에는 담기가 정말 어려웠다. 비건은 고기 기름이 들어간 것도 먹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생존하기 위해 채소에 고깃기름이 묻어있더라도 그냥 먹었다.
그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눈썰미 좋은 내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유하, 저기 건의함 있는데, 한번 건의해보는 거 어때?”
나는 그 말에 솔깃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바로 실행에 옮겼다. 뭐라고 쓸지 많이 고민했다.
‘비건 식단을 따로 만들어 달라고 하는 건 무리겠지…?’
고민 끝에 건의 내용을 적어서 건의함에 넣었다. 내용은 대충 고기와 야채가 함께 나오는 메인 식단이 있다면 고기만 빼고 일 인분만 만들어 달라는 식으로 적었다.
하지만 건의함에 제안를 한 지 10일 정도 흘러도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역시 그럼 그렇지..’
나는 정말 많이 실망했다. 사실 먹는다는 것은 매일매일 겪어야 하기 때문에 조금은 힘들었다. 내가 음식을 받을 때마다 항상 친절하게 인사를 걸어주시는 영양사님과 요리사분들이었기에 조금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내 먹을 권리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직접 영양사분에게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대에 식사를 하러 갔다. 그리고 나는 밥을 먹으며, 영양사분에게 말 걸 타이밍을 노렸다.
‘지금이다!’
나는 너무 부끄러웠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고 영양사분에게 혹시 건의함을 보셨는지 물어봤다. 영양사분은 아주 티 없는 순수한 얼굴로 못 봤다고 대답해주셨다. 나는 그제야 안도했다. 아, 이분들은 내 건의를 무시한 게 아니구나, 그저 보지 못했을 뿐이구나.
“저는 비건인데요, 요즘 메뉴에 제가 먹을 수 있는 반찬이 없어서요. 혹시 채소와 고기가 함께 들어간 반찬이 있으면, 고기만 빼고 일 인분만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 비건이 있다는 말은 들었어요. 그런 게 불편하셨군요. 그럼 내일은 카레니까 고기가 없는 카레를 일 인분 준비해 놓을게요.”
영양사분은 너무도 친절하게 내 요청을 들어 주셨다. 그 덕분에 나는 그곳에서 조금 더 영양 있는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영양사분에게 정말 감사했다. 한 편으로는 많은 비건들이 나처럼 공동체 생활에서 눈치 보지 말고 건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건의하는 비건들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먹을 권리가 보장되는 날이 앞당겨질 테니까.
앞으로는 내가 사회생활을 하게 되더라도, 조금 더 비건 커밍아웃(?)을 할 수 있는 짬밥이 생긴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만약 당신이 비건이라면, 나처럼 사회생활에서 비건 커밍아웃을 망설인다면, 이 글을 읽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매거진, [제주도에서 무자본으로 살기]는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이번주는 비건 관련 강의를 가게 되어 금요일 날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화요일에 정상적으로 발행됩니다. 항상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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