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생각한 이유
문득, 할 일이 없어서 회사 안을 주욱 둘러봤다. 대리님, 과장님, 내 동기들. 모두 열심히 컴퓨터를 쳐다보며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나도 여기서 오래 일하면 대리님처럼 되겠지? 더 오래 일하면 과장님처럼 되려나.
나는 네덜란드 계열 물류회사에 다녔다. 내가 맡은 일은 영어로 서류를 작성하고 컨펌을 받은 후에 서류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서류를 작성할 때 오탈자가 없어야 했기 때문에, 꼼꼼한 성격이 유리했다. 꼼꼼함과 거리가 멀었던 나는 하루 종일 컴퓨터를 보며 서류를 작성하는 일과 오탈자를 고치는 일을 반복적으로 해내야 했다.
나는 이 일에 별 흥미가 없었다. 앉아서 컴퓨터만 보는 일은 정말이지 싫었다. 아니지, 지금 컴퓨터를 보며 글을 쓰고 있으니 컴퓨터와는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그냥 이 회사에서 나와 맞지도 않는 일을 반복하며 내 하루를 보내는 것이 싫었다. 그저,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회사의 부품이 되어가는 일에 성실하게 임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엥?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다고? 지금 같은 취업난에 취업을 했으면 감사히 회사에 다니면서 꼬박꼬박 월급 받는 게 제일 좋은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다. 그게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런 결정은 이십 대 초반만 내릴 수 있는 무모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던지, 월급이 적다던지, 업무강도가 세다던지 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내가 퇴사를 하는 이유는 아주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다.
회사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월급도 괜찮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한 덕에 막내 페널티를 톡톡히 받았다. 조금만 잘해도 칭찬을 해주셨고, 실수를 해도 다음에는 잘할 수 있다며 다독여주셨다. 어딜 가나 미친 사람은 꼭 있다던데, 내가 있는 곳은 예외인 듯싶었다.
회사는 서울 시청 근처였는데, 집에서는 조금 멀었지만 점심시간마다 바로 앞에 있는 도서관에 갈 수 있어서 좋았다. 시청 앞에서 매일 시위가 있었는데, 그런 시위를 보는 것은 꽤나 재밌었다. 그리고 그런 시위를 보며 내가 모르는 세상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내가 회사를 나가는 이유는 정말 ‘일이 맞지 않아서' 뿐이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 남는 시간에 어학원을 다녔다. 내가 듣는 수업에서는 날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유독 내 기억에 남는 주제는 이거였다.
“돈을 아주 많이 벌지만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 살 것인가, 돈은 먹고 살락 말락 하게 벌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것인가.”
그때 나는 아주 당연하게도 후자를 선택했다. 행복하자고 사는 것인데 일주일의 절반 이상을,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곳에서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했었다.
사장님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나는 시간만 나면 틈틈이 인터넷 서핑을 하며 뭘 하고 싶은지 생각했다. 내가 주로 보는 것은 블로그였는데, 외국, 예술, 언어 쪽이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사람들만 있었다.)
이 회사를 들어온 이유도 외국 계열 회사이기 때문이었다. 네덜란드 계열 물류 회사였고, 외국과 교류하는 일이 많으니까 내가 외국어를 쓸 일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과장님 한분은 중국인 바이어와 매일 중국어로 통화를 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쓸고 닦은 내 중국어 실력이 이 회사에서 빛을 발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는 고작 사원이었고, 외국어를 쓸 일은 6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 그럼 내가 사장님이 되면 되지. 그래서 중국어 쓸 일을 만드는 거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거야. 어쩌면 겨우 먹고 살 정도로 돈은 벌게 될 수도 있겠지.
나는 하고 싶은 일로 어떻게 먹고살 수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일단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그만두면 길이 보이리라, 이렇게 생각하며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겨우 먹고 살 정도로 돈을 벌고 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사장님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