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별
[겨울: 제6부]
어린 시절 누구나 하나쯤 애착인형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성장과정을 함께해 온 인형이기에 몇 해가 지나면서 여기저기 모난 상처들이 생긴다. 옆구리에 솜이 삐쭉 나오는 거는 예사도 아니다. 팔이 뜯어지거나 혹은 인형 얼굴이 모호해지기도 한다. 최근에 망가진 인형을 고치는 인형 병원에 관한 글을 읽다가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던 나의 애착 인형이 생각났다. 하기야 25년도 더 지난 일이기에 잊고 지낼만하다. 그래도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의 애착인형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강아지 인형이었다. 큰 특징이 있다면 몸에 비해 얼굴이 컸고 얼굴에 큰 반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뭘 그리 애지중지했는지 잠을 잘 때에도 어디를 갈 때에도 항시 내 옆에 그 인형을 두었다. 그런 내가 하루하루 성장해 나갈수록 강아지 인형은 군데군데 망가져갔다.
어느 날은 강아지 인형 한쪽 눈이 떨어져 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그 인형 존재 자체가 나에게 큰 의미였기에 겉모습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나와 다른 생각이었다. 항시 머리맡에 있던 인형이 사라졌고 놀란 나는 방문을 열고 나와 인형이 사라졌노라며 말을 꺼냈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심드렁한 표정과 말투로 “그 인형 이제 더 갖고 있기 힘들잖아. 여기저기 망가져서 쓰레기통에 버렸어.”라고 말했다. 이별 준비도 할 겨를 없이 인형이 사라져 버렸으니 어린 나에게 그 말이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사실 어른의 시선에서는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물건이 망가졌기에 버린다는 그런 단호한 태도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는 소중한 친구 같은 존재였다. 황급히 밖을 나가 엄마가 일러준 쓰레기통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도 쓰레기 배출일이 아니기에 인형은 통 위에 살포시 올려져 있었다. 마치 인형 또한 이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깜깜한 밤 망부석처럼 나를 기다린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인형을 버려야 한다로 엄마와 꽤나 실랑이를 벌였고 며칠을 못 가 애착인형과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되었다. 그때는 어찌나 서러웠는지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며 잤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엄마는 나에게 이별에 대한 예행연습을 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사소한 것부터 떠나보낼 줄 알아야 앞으로 살아갈 세상 속을 헤쳐 나갈 테니 말이다. 크고 작은 이별을 겪으면서 이제 나는 집에 인형이나 아끼는 물건을 버려야 할 때 큰 고민이나 감정 없이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그런 슬픈 감정을 경험할 수 있는 것 또한 좋은 경험이며 지금은 부럽기도 하다. 조그마한 인형이 없어졌다고 울고불고해보고 싶기도 한데 억지로 눈물 연기를 한다고 해도 아마 불가항력이지 않을까 싶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그 경험 이후 나 홀로 한 가지 다짐을 한 적이 있다. 혹여 나중에 결혼을 하여 아이가 생긴다면 나는 그 애착 인형을 소중히 다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기에 조심스럽기도 하고 아이가 스스로 좋은 이별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싶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