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물들이다
[겨울: 제5부]
사람들의 손톱을 유심히 보면 사람들의 외형처럼 모양이 다 제각각이다. 바짝 깎은 손톱, 단정하게 정리된 손톱, 손톱을 깨무는 버릇이 있는 것 같은 손톱, 화려한 컬러 혹은 큐빅을 붙인 손톱을 볼 수 있다. 이 손톱 유형 중에 나는 바짝 깎은 손톱을 선호한다. 어떤 연예인이 방송에서 손톱을 바짝 깎아야 개운한 느낌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연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도 손톱을 보았을 때 연한 분홍색을 띠는 부분만 보이는 손톱의 상태가 매우 만족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여름이면 빨간색 혹은 검은색과 같은 강렬한 색상으로 손톱을 칠하곤 했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그 강렬한 손톱만큼이나 다듬어지지 않은 개성이 뚜렷했고 스스로를 알아가듯이 다양한 색깔을 입혀보던 시기였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거추장스러운 걸 좋아하지 않기에 색을 지워내고 바짝 깎은 손톱을 유지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택배 상자 테이프를 뜯어야 할 때 손톱으로 벅벅 깔끔하게 긁어 떼어내는 걸 좋아하고 콜라 캔뚜껑도 손톱을 이용하여 확실하게 따는 걸 선호한다. 그러기에 일상생활에서 이런 행동을 몇 번 하고 나면 손톱 위 장식이 날아갔거나 칠한 손톱이 긁혀 나가기 일쑤였다. 그러다 문득 봉숭아꽃 물들일 때가 좋았었지 라는 생각을 했다. 요즘에는 봉숭아꽃을 손톱에 물들인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순 없지만 내 어린 시절에는 흔하디 흔했다. 집 앞을 나서거나 학교 화단을 보면 쌍쌍이 있는 봉숭아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어김없이 봉숭아꽃이 피는 시기에 나는 봉숭아꽃을 손바닥에 담아 집에 갔다. 엄마는 나의 손톱에 절구로 다듬은 봉숭아꽃을 손톱에 톡톡 올리곤 크기가 제각각인 비닐을 한 손가락씩 감싸주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면 흰 분홍 손톱이 붉은 연주황색으로 바뀌는 걸 보고 있자니 참으로 신기했다. 하지만 간혹 양조절에 실패하여 손톱 범위를 넘어갔을 때는 손톱이 아닌 그 주변부까지 물들어 버리는 불상사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문방구에 분말가루의 형태에 봉숭아꽃 물들이기 제품을 찾아볼 수 있었다.
추운 겨울이 다가왔을 무렵 봉숭아 물이든 손톱이 어른들 눈에 띄면 “사랑이 이루 어질려나보다.”라며 빙그레 웃음을 짓곤 했다. 출처가 어디인지 알 수는 없으나 한 번쯤 들어본 말이 있다. 첫눈이 오기 전 손톱에 봉숭아 자국이 남아 있다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정확한 기원을 찾고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로맨틱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병사의 기원에서 애정의 기원으로 전이되었다는 단촐한 말이 쓰여 있었다. 그렇다면 왜 굳이 봉숭아 꽃을 물들인 손톱을 보며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퍼져 나갔을까.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기에 혼자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이게 뭐라고 별 시답지 않은 것이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봉숭아꽃을 물들인 손톱은 우리의 변덕으로 인해 지워낼 수 없다. 한 번 손톱에 물들인 이상 손톱이 다 자라나서 잘라내어 사라질 때까지 함께한다. 그리고 손톱이 자라나 애매하게 남은 경계선을 보며 쉽사리 정리하지 못하는 마음과 비슷하다. 또한 새롭게 지우거나 덧칠하지 못하기에 그 물들인 손톱은 한결같은 마음 혹은 순수한 사랑이 아닐까. 지금의 나는 어린 나이와는 달리 조금은 퇴색되어 버린 마음을 갖고 있기에 어른들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지워낼 수 없는 그 애매모호한 명확한 선이라는 것이 볼품없어 보일 수 있으나 잊지 않고 간직한 모양일 테니까. 그래서 축복이 담긴 바람으로부터 온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올해 소복이 내린 눈을 보고 들었던 생각이 떠올랐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눈에 둘러 쌓여 있었다. 새하얀 눈이 나뭇가지 한 올 한 올을 명확한 선으로 그려내면서 그 또렷한 선이 아름다웠다. 그 선을 보고 있다가 마치 사랑도 저렇게 명확할 때가 아름답다고 볼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꼭 그 또렷한 선이 애매한 물이든 손톱을 떠올리게 했다. 애써 지우거나 감추지 않고 날 것으로 드러난 모습이 명확하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