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가로질러 가면
[겨울: 제7부]
버스를 타고 집에서부터 회사까지의 거리가 넉넉잡아 한 시간 반이 걸리기에 제목을 버스여행이라고 적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출퇴근을 지하철로 했는데 올해부터 출근만큼은 버스를 타고 간다. 원체 사람 많은 장소를 꺼려하는 나에게 사실 지하철 안은 쉽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들로 빼곡히 들어찬 지하철에서 등을 맞대고 가다 보면 정신적 에너지가 소모되는 걸 심심치 않게 느끼곤 했다. 그래서 올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출근길만큼은 버스를 타고 가자는 것이었다. 물론 명확한 단점은 부지런히 집을 나서야 한다는 것이지만 기대하는 장점 또한 있었다. 버스를 타게 되면 지하철만큼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치일 필요가 없으며 부지런히 집을 나서야 하기 때문에 일찍 잠을 자게 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의외로 재미난 출근길 풍경을 볼 수 있고 잊고 있었던 추억들을 상기시킬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 추억들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하루쯤은 출근길에서 여유로움과 느긋함을 느끼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1 비 오는 날
비가 오면 느릿느릿 가는 달팽이도 물로 인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날이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지각을 피하기 위해 더 부지런히 집을 나서야 한다. 날씨의 영향으로 버스가 느릿느릿 도로를 지나갈 가능성도 크고 무엇보다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조차 이날만큼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버스라는 공간이 주는 아늑함이 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직사각형 안에서 마구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는 경험은 꽤나 즐겁다. 그리고 창문에 무수히 번지는 물줄기를 감상하는 것 또한 볼만하다. 특히 비가 차츰 사그라들 때 마치 먹물에 담근 붓으로 사선으로 얇게 한 획을 그어 내는 듯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버스가 웅덩이를 빠르게 지나쳐 갈 때 물이 위로 솟구쳐 오르는 모습 또한 재미를 더한다. 특히 반대편 차선에서 차들이 빠르게 지나갈 때 뿜어내는 물줄기는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하기도 한다. 그 모습을 버스 창문을 통해 멍하니 보고 있으면 마치 바다 혹은 강 위를 빠르게 지나가는 보트 위에 있는 듯해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느끼기도 한다. 출근길임에도 잠시나마 여행을 하는 기분이랄까.
2 잊고 있던 기억들
이따금씩 창문 밖을 보다 보면 반대편 차선에서 같은 노선버스를 볼 때가 있다. 그 순간 버스 기사님의 손을 주목하여 보곤 한다. 어린 시절 같은 노선버스 기사님들끼리 마주치면 손인사를 주고받았던 장면을 기억하기에 나도 모르게 그 순간을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내 집중력이 흐려진 탓인지 도통 손인사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데 한편으로 혼자 걱정을 하기도 한다. 친하지 않은 직장동료라서 그럴까 혹은 둘 중 하나가 보지 못하고 놓친 걸까 라는 생각도 해보기도 하고 주고받는 수신호가 바뀐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추가로 이렇게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좋았던 점은 잊고 있었던 추억이 불현듯 떠올라 그땐 그랬지 하며 웃음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단편적인 추억의 예로는 다음과 같다. 유치원이 집 앞에 있음에도 친구들이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게 부러워 몰래 따라 탔던 일, 주머니에 100원을 꺼내어 불량식품을 사 먹는 대신 마을타스를 타고 돌아다녔던 일,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하던 남학생을 보기 위해 등하교 버스 시간을 맞추어 타곤 했던 일이다.
3 재미난 혹은 좋아하는 풍경
부지런히 집을 나와 마을버스를 타고 두 세정거장을 지나 내린다. 그때 하차시간이 7시 30분 전이라면 연달아 지나가는 버스 두 대를 볼 수 있다. 항상 같은 시간대에 똑같은 버스가 지나가는 걸 보다 보니 기다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도토리 그림이 그려진 출근맞춤버스가 사람들을 태우고 가면 바로 잇따라서 법원버스가 사람들을 태우고 간다. 그럼 굳이 시계를 보지 않아도 7시 30분이 되었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조금 더 기다리면 내가 타야 하는 버스가 도착하는데 나는 버스에 올라타면 제일 먼저 맨 뒷좌석에 자리가 있는지 빠르게 확인한다. 특히 창가 맨 뒷자리 자석이 비어 있는 날에는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깥 구경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자주 혜화역을 지날 때면 읽던 책을 덮거나 답하지 않은 문자에 답장을 멈춘다. 혜화역에서 창경궁을 넘어갈 때 길풍경이 어여쁘기에 눈에 담기 위함도 있지만 창경궁 맞은편 암치료센터와 장례식장을 마주하면 지금 내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 부러운 일상일 수도 있겠지 라는 생각과 짧은 반성을 한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여행 같은 찰나의 순간들이 있는데 그 순간들은 충무로역에서 남산타워가 보일 때, 남산터널을 지나 한남동이 보일 때, 한남동을 넘어 한강다리를 건널 때 풍경이다. 잠시나마 출근길이라는 걸 잊고 정말 버스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그래서 그런지 당연한 일상 속 풍경임에도 그곳을 지날 때면 다시금 창문을 바라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