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한 컵홀더 하나의 차이

그 시절에 너와 나

by 아녀녕

[겨울: 제8부]



흔히들 곧 죽어도 차가운 음료만을 마시는 사람을 ‘얼죽아’라고 표현하는데 내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계절에 상관없이 출근길 나의 손에 어김없이 차가운 음료나 커피가 들려 있다. 그리고 그 일회용 컵에는 컵홀더가 씌워져 있는데 그걸 보고 있으면 이따금씩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뭐 지금이야 카페에서 환경 보호를 위해 다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주는 게 일상이지만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일회용 컵에 컵홀더를 씌워 마시는 게 흔하디 흔했다. 그 덕분에 컵홀더와 얽힌 이야기가 있다.


무더운 여름 그 시절 나와 그 친구는 카페에 있었다. 테이블을 중심으로 마주 앉아 어색한 기류를 흘리며 그 친구가 가져다준 음료를 마셨고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카페 안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그 친구가 움켜쥐고 있는 일회용 컵에 눈길이 갔다. 차가운 음료 때문에 컵에 물기가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음에도 그 친구는 불편한 기색 없이 컵홀더를 씌우지 않은 채 음료를 마셨다. 그리고 자연스레 내 시선은 나의 음료컵으로 옮겨졌다. 내가 마시는 음료컵에는 컵홀더가 씌워져 있었기에 음료를 마시는 그 친구를 빤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컵홀더를 씌우지 않고 마시면 손이 차갑지 않냐는 나의 물음에 그 친구는 웃으며 나는 이렇게 마시는 게 편해라고 말했다. 지금도 그 장면이 사진 한 장처럼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아직까지도 눈에 선한 까닭은 무엇일까.


나는 작년에 감명 깊게 봤던 ‘청설’ 영화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극 중 캐릭터가 청각 장애를 앓고 있다는 설정이 있었기에 수화로 소통하는 장면들이 많은 영화였다. 덕분에 큰 영화관에서 자막만 나올 뿐 적막이 감도는 순간이 꽤나 많았고 그런 순간들이 어색했지만 신선한 경험이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 영화에서 제일 좋았던 장면에 대해 말을 하려고 한다. 그 장면에서 느꼈던 감정이 그때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이기에 말이다. 여자 주인공과 여주인공의 여동생은 청각 장애로 인해 기분 나쁜 차별을 경험하게 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 주인공은 그 둘의 기분을 달래주기 위해 놀러 가자고 말을 건넨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클럽이었다. 클럽이라는 공간은 음악 소리가 매우 크기에 사람들과 대화를 주고받기가 매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그 덕분에 청각 장애가 있어도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들과 어울릴 수도 있는 공간인 셈이다. 특히 그 장면 중에서 커다란 스피커 앞으로 남자 주인공이 두 자매를 데리고 가 음악이 울려 퍼지는 스피커에 손을 올려주는 장면이었다. 음악을 들을 순 없지만 그 스피커에 울리는 진동을 손으로 느끼며 함께 그 순간을 즐겁게 보내는 모습이 감명 깊었다. 남자 주인공의 그 행동을 보며 저 사람 참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를 느꼈다. 본인의 일상에서는 당연한 것이 타인에게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고.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만약 그때 차가운 음료 두 컵 모두 컵홀더가 씌워져 있었다면 단순한 매너라고 생각하고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미묘한 컵홀더 하나의 차이가 그 사람의 따뜻함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지 않았나 싶다. 그 당시 주변 친구들에게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면 당연한 매너인데 네가 너무 순진했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정말로 그 친구들의 말처럼 내가 순진했었을 수도 있지만 단순한 매너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그 친구의 선한 웃음과 마음이 따뜻하고 예뻤다. 나는 타인에 의도하지 않은 사소한 행동에서 따뜻함이 묻어 나올 때 그 사람을 달리 보게 되는 것 같다.


일상에서 사소한 배려가 어떤 날에는 크게 다가올 때가 있다. 특히나 요즘 들어 나는 그 배려가 귀하다는 걸 다시금 체감한다. 나이를 한 해 먹어갈수록 누군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과정이 다소 힘이 들기에 시간이 지나고도 그 장면이 눈에 선한 이유가 아닐까. 그 이후에 그 친구에게 그 컵홀더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고 음료를 가져다줄 때 컵홀더를 두세 개씩 겹쳐서 장난스레 나에게 가져다주곤 했던 일이 떠오른다. 이따금씩 그 친구의 소식이 궁금할 때도 있는데 다 지난 연이기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