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두었다

2023년 제주 여행기

by 아녀녕

[겨울: 제9부]



1 사랑하는 달


십 년 넘게 오지 못했던 제주도 여행을 뜻밖에 그와 함께 오게 되었다. 그는 여태 내가 제주도 여행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는 말에 약간의 놀라움을 보였다. 하긴 해외여행을 가본 적은 있지만 제주도는 왜 이리 가기가 어려웠던 건지 그에게 복잡한 나의 감정을 이해시키기 어려워 “그냥”이라고 답했다. 토요일 오후에 홀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향했다. 공항으로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 상공에서 바라본 제주도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설렜지만 마음 한 켠은 씁쓸함이 있었다. 하루 먼저 도착한 그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 어색한 장소에서 그를 보니 반갑기도 하고 공항까지 마중을 나오는 게 번거로웠을 텐데 고마웠다. 그리고 그는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 너무 많다며 이번 여행은 어디를 보여 줘야 하나라고 혼잣말을 하며 곰곰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전부터 좋아하던 노래와 시인의 책에서 언급되었던 협재와 애월을 가보고 싶다고 말하자 그는 저녁노을을 보여주겠노라며 걸음을 재촉했다.

책과 노래를 통해 그려왔던 협재와 애월의 모습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특히나 협재 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때 그 따뜻한 하늘빛을 머금은 바다와 그 차갑지 않은 적당한 온도의 바닷물을 참방거리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과 주변의 야자수들을 보며 다시 한번 감탄했다. 그 모습이 꼭 한 장의 엽서에 그려질 법한 모습이어서 나도 모르게 그 풍경을 사진으로 담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왜 난 이 모습을 왜 이제야 보러 온 것일까 라는 아쉬움을 느꼈다.

그리고 애월을 보러 가는 차 안에서 애월의 뜻이 궁금하여 검색을 해보았다. 애월의 사전적인 의미는 해안가 모양이 초승달처럼 둥글게 보인다 혹은 물가의 약간 높은 땅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애월은 또 다른 의미로 남을 것 같다. 보통 사랑하는 이를 해님 달님처럼 비유해서 부르기에 나에게 애월은 사랑하는 달님의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달리는 차 안에서 애월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볼 때마다 그를 보며 “애월이다. 애월” 외치고 미소 지었다. 차마 그 뜻을 부끄러워 말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은 전달되지 못한 채 이렇게 문장으로만 남게 되었다.



2 다음에


제주도 마지막 밤 숙소 앞바다에 많은 배들이 떠있었다. 배들이 밝은 조명을 켜놓은 탓에 멀리서 바라본 나의 눈에는 조명을 비춘 무대 위에 올라온 느낌이었다. 나는 이런 장면이 신기하면서도 의아해서 그에게 왜 많은 배들이 떠있는 건지 아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밤낚시를 온 것 같다며 오징어배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여행 마지막 날 밤낚시 체험을 할 수 있었다는 정보를 뒤늦게 알게 되어서 조금은 아쉬웠다. 그래서 그에게 다음에 제주도를 오게 되면 함께 오징어배를 타보자고 했고 제주도 여행을 와서 오징어배를 타자고 하는 사람은 처음이다 라며 웃었다. 나는 그에게 ”다음에, 다음에 꼭 하자. “라고 재차 말했고 그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가보고 싶던 음식점과 카페가 일찍 문을 닫아 가지 못했고 그 아쉬움에 자주 그에게 다음에 오면 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계속해서 “다음에”를 외치는 나의 말에 귀찮을 법도 한데 그는 그러자고 대답을 해주었다. 나는 왜 그렇게 자주 그에게 다음에 라고 운을 띄우며 말을 했던 걸까 생각해 보니 다음에도 함께 오고 싶다는 말을 돌려서 표현했던 것 같다. 다시 이야기에 처음으로 돌아와서 제주도 밤바다에 많은 오징어배들의 불빛들이 이렇게 낭만적일 수 있구나 싶었다. 아무래도 그 불빛들이 잘 가라는 작별 인사를 하듯 연신 밝은 불을 내뿜는데 하필 또 마지막 밤이기에 아쉬우면서도 좋은 추억으로 남겨질 밤이 될 것 같다. 그리고 그때 그 불빛들의 작별인사가 우리 사이의 이별을 미리 예측했던 것이지 우리에게 그 다음은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