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왕실에서는 오랜 시간 지켜져 온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신년연설을 위할 때만 딱 한 번 여왕이 대중 앞에 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정치적인 이슈들은 덴마크 총리와 정부기관이 맡게 된다. 하지만 이 오랜 전통을 지키기엔 코로나 사태는 너무 버거웠고, 결국 덴마크는 여왕을 다시 대중 앞에 세우는 강수를 두었다. 그렇게 마그레테 2세는 이례적으로 대중 앞에 나와 연설했다.
여왕님의 일침 “집에 있으세요”
이전에는 없던 코로나 특별 연설을 하는 마그레테 2세 @brnmn
덴마크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마그레테 2세답게 그녀의 한마디는 실로 강력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해 반신반의하던 사람들도 여왕의 말대로 집에 머물기 시작했고, 며칠간 코펜하겐은 유령도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인적이 뜸했다.
늘 사람들로 가득하던 코펜하겐 도심 써클브릿지와 그 주위 @politiken
유럽 내 코로나의 여세가 점점 심해지는 것처럼 덴마크도 코로나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다 보니 국경 폐쇄와 함께 사회적 격리가 발효되었다.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사회적 격리
오랜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삶의 전부이다시피 하는 덴마크인들에게는 사회적 격리는 매우 혹독한 처사이기도 하다. 그래도 나름대로 이전의 삶을 ‘조금은 다른 형태로’ 유지해가고자 하는 덴마크인들의 노력은 가상할 정도이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모닝커피를 함께하는 이웃 주민(좌) 친구와 가족 대신 애완견들과 함께 생일파티를 즐기는 모습(우) @andershemmingsendk
대중교통이나 공공시설에서도 사회적 격리를 위해 옆 자리를 비우게 한다거나 손을 쓰지 않도록 하는 등의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손가락 대신 팔꿈치로 버튼을 누르라는 사인이 새로 붙은 기차 내부 @dsb.dk
거리와 공원 곳곳에는 출입금지 표지판이나 옆 사람과의 거리를 유지하라는 경고가 담긴 메시지를 놓았다. 심지어 공원에서 옆 사람과의 거리를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경찰이 제재할 수도 있다는 경고문을 적어 놓기도 했다.
공원에 설치된 출입금지 표지판과 거리두기 경고문 Photo by. Ariadni D.
하.지.만. 이제 봄이다.
북유럽 사람들에겐 봄의 의미는 남다르다. 그래서 어둡고 긴 겨울을 지나 드디어 봄볕이 내리기 시작하는 시기에 그들의 인내가 어디까지 일지는 의문이다. 여왕님의 발표가 있고 나서 며칠은 사회적 격리가 잘 지켜졌지만 몇 주가 지난 지금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봄기운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스멀스멀 집 밖으로 나오고 있다. 특히나 햇빛만 보면 바쁘게 뛰어가다가도 멈춰 서서 햇빛을 쬐는 덴마크인들에게 다가오는 4월은 혹독함을 넘어 고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다.
그들에게 4월은 혹독함을 넘어 고문 수준
‘해가 뜨는 날이지만 밖에 나가지 못할 때’라는 게시글 @andershemmingsendk
‘덴마크의 보통 날씨 vs. 격리 중 덴마크의 날씨’라는 게시글 @andershemmingsend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