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jerde
버터핑거스Butterfingers. 아빠한테서 유전된 선천적 별명입니다.
손가락에 버터가 발린것 마냥 물건을 자주 떨어뜨린다고 아빠에게 붙여졌던 별명이 그 딸에게도 전해졌습니다. 다행히 아빠는 운동신경이 좋아 접시를 손에서 떨어뜨리더라도 바닥에 닿기 전에 낚아챕니다. 아쉽게도 저에겐 후자는 없고 그냥 떨어뜨립니다. 그리고 화가 납니다. 얼마나 많은 화낼 만한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거 선물 받은 건데.
이게 얼마짜린데.
이거 세트로 쓰는 건데.
이거 이제 단종됐는데...
얼마 전에도 손끝에서 그릇 하나가 미끄러지면서 결국 이가 나갔습니다. 남편이 신혼집으로 가져온 그릇이라 사실 화보다도 미안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보고 있던 남편이 화를 내거나 아쉬워하기는커녕 배꼽을 잡았습니다. 역시 버터핑거스가 괜히 버터핑거스가 아니라며. 그러고는 깨진 조각을 치워주며 주문같이 한마디 던지더랍니다.
Patina!
페티나!
덴마크어 페티나는 오래된 청동에 푸른 녹이 생기는 것과 같이 세월에 따라 자연스레 생기는 변색이나 변화를 말합니다. 일상에서는 오래 사용한 물건에 남은 세월의 흔적과 고풍스러운 멋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영어랑 같은 의미와 철자를 쓰고 있습니다.
친구나 가족 집에 놀러 가면 곳곳에서 패티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래된 등, 그을린 냄비자국이 있는 다이닝테이블, 할머니 집에서 떼 온 것 같은 액자. 그중에서도 단연 패티나가 돋보이는 것은 이가 나간 접시가 아닐까 합니다. 얼마 전 한국 팝업으로 유명세를 탄 덴마크 브런치카페 아뜰리에 셉템버Atelier September도 패티나스러운 접시를 쓰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가 나간 접시는 아직도 잘 쓰고 있습니다. 네 개 세트 접시라서 손님 올 때도 개의치 않고 내놓습니다. 제가 떨어뜨린 접시는 이제 저녁 식사의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되었습니다. 저는 놀림받는 입장이지만 다함께 웃을 수 있는 주제가 되어 이상하지만 스스로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도 버터핑거스입니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물컵을 떨어뜨렸거든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제 제겐 화를 잠재우는 주문이 생겼으니까요. Pat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