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mte
가만히 생각해 보면 덴마크는 참 거친 환경을 가진 나라입니다. 척박한 환경과 부족한 자원 탓에 덴마크 땅에 처음 정착했던 조상 바이킹은 역사 속 침략의 대명사가 되었을 정도입니다. 지금도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부는 날카로운 바람과 일 년 중 171일은 비나 눈이 오는 기상조건. 심지어 겨울에는 해가 너무 짧아 우울증을 달고 살 수밖에 없는 그런 곳입니다.
기후변화 덕에 조금 따뜻해져 드디어 본인 마당에도 사과가 열린다고 신나서 농담하던 한 덴마크 친구를 보니 각양각색의 사과뿐 아니라 없는 과일이 없는 우리나라 환경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궁금했습니다. 덴마크 사람들도 나랑 똑같은 사람들인데 어떻게 이런 환경을 참고 견디는지. 아니, 오히려 어떻게 이런 환경을 누리고 즐기는지 가요.
처음 이 소도시에 발을 디뎠을 때에는 크리스마스와 새해로 온 나라가 들떠 있는 시기였습니다. 12월에서 새해까지는 한 달 내내 온 동네가 축제 분위기였고, 길마다 크리스마스 장식과 불빛이 반짝이며 아이들부터 어르신들까지 크리스마스 가족모임, 새해맞이 파티 준비로 설렌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지나가고, 대망의 새해가 왔습니다. 새해 전날 오후부턴 도시 곳곳에서 폭죽이 쏘아 올려지고, 밤에는 말 그대로 불야성을 이루어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1월. 화려한 무대가 끝나고 난 뒤에 느껴지는 무거운 적막이 왔습니다. 불 꺼진 초라한 장식들 위로 매일같이 추적추적 오는 비와 매서운 바람. 그리고 이런 날씨를 뚫고 꾸역꾸역 일터로 학교로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참 안됬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곤 남편이 거친 날씨를 뚫고 일터에서 돌아오면 위로할 요량이었는데, 돌아와서 하는 첫마디가 너무나도 예상을 깨는 말이었습니다.
우리 여름휴가는 언제 갈까?
아닌 게 아니라, 1월 첫 주부터 직장에서는 6-8월에나 올 여름휴가일정을 미리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창밖에는 우울한 풍경이 펼쳐져 있을 지라도 이미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름의 쨍한 햇빛과 푸른 바다가 가득했던 것이었습니다.
어둡던 1,2월이 지나고, 3월이 되니 길가 곳곳에 보랏빛, 노란빛 꽃들이 빼꼼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마트에서는 작은 꽃화분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꽃망울이 가득한 꽃선물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4월이 오니 제법 바람에 따뜻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두꺼운 재킷을 벗고, 간혹 반팔 반바지로 러닝을 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렇게 5월이 되니 나무들이 푸릇푸릇해졌고, 결국 여름이 왔습니다.
오늘은 비가 와도 내일은 해가 뜰 것이라는 기대. 지금은 차가운 바람이 몸을 파고들지만 곧 내가 푸른 바닷속을 파고들 것이라는 기대. 어쩌면 이렇게 단순한 내일에 대한 기대가 오늘이라는 다시 안 올 하루에 더 감사하고 누릴 수 있는 열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