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토대와 낭만요리

#Sjette

by 니키코


저희 집에는 남편이 처음 자취를 시작할 때 가족들에게 선물 받은 아주 두꺼운 요리책이 하나 있습니다. 육류부터 생선 그리고 디저트까지 덴마크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먹는다는 다양한 요리의 레시피가 적혀있습니다. 하루는 이 무겁고 오래된 요리책을 펴서 눈에 들어오는 요리 하나를 골라 따라 해보았습니다.

밀가루를 묻힌 닭을 살짝 익혀낸 버터에 건토마토를 썰어 넣는다.
그 다음 잘게 썰은 양파와 다진 마늘을 넣어 중간불에서 볶는다.
양파가 익으면 그 위에 오레가노, 타임, 로즈메리를 넣고 향을 낸다.
마지막으로 치킨스톡과 휘핑크림 그리고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고 팬에서 잘 섞는다.
...

스토브 앞에 서서, 재료가 하나씩 쌓일 때마다 한 단계 한 단계 차곡히 향과 맛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재료손질부터 요리가 완성되기까지 장정 세 시간이 걸렸습니다만 기나긴 요리의 과정이 맛보는 순간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 보다 더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KakaoTalk_20250803_154535982_02.jpg
ⓒ 2025. 니키코 All rights reserved.

옆나라 독일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Don't chase butterflies, build a garden.
나비를 쫓지말고, 정원을 가꾸어라.


덴마크에서 안식년을 보내기로 결정하며 제 노트에 꾹꾹 눌러쓴 글귀입니다. 한참을 달려야 하는 시기에 구태여 이력서에 텅 빈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지가 고민이었을 때 이 글귀를 만나게 되었지요. 그 덕에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비록 이력서에는 텅 빈 공간이 생길지 몰라도 내 정원에는 더 많은 나무가 심기겠구나 하고요.


그 정원은 나비에게 잘 보이기 위한 정원이 아닙니다. 내 정원이 좋은 나비는 언제든 놀러 올 것이고 나비가 오지 않더라도 내겐 단단하고 멋있는 정원이 생기는 것이니 밑질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KakaoTalk_20250803_154110042.jpg
ⓒ 2025. 니키코 All rights reserved.

요리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며 안식년을 선택했던 저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고 느꼈습니다. 느리지만 차곡히 맛이 있어지는 요리와 느리지만 차곡히 단단해져 가는 제 모습이 겹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천천히 재료를 쌓아가며 공을 들이다 보면 저도 꽤나 성공한 낭만요리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전 06화내일에 대한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