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한 케이크

#Syvende

by 니키코


한때 K-장녀 신드롬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가족을 돌보는 역할과 과도한 사회적 책임을 지며 자라난 한국의 장녀들은 성인이 되어서 불안과 우울을 경험한다는 것이 요지이었지요. 사회적으로 K-장녀들의 아픔을 공감해 주고, 또 이해해 주려는 다양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유명 의사들이나 강사들이 앞다투어 장녀 공감콘텐츠를 만들고, 우울감을 극복하는 방법을 이야기 하며 지금껏 무거운 마음으로 살던 장녀들에게 위로를 전했습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렇게 말하면 치사한 사람이 되는 것 같지만. 막내인 저로써는 조금 억울했습니다. 장녀의 무거운 부담감과 책임감이 부각되면서 반대로 막내는 그냥 응석받이라는 오해를 가진 채 묻힌 것 같았거든요.


장녀가 책임을 담당한다면, 막내는 양보를 담당합니다. 제일 좋은 것, 새것, 큰 것은 집안에서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장녀가 갖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이니까요. 막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빠르게 분위기를 읽을 줄도 알고, 조금 툴툴댈지라도 양보할 줄도 압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저는 막내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모던한 시대지만 아직도 사회막내는 상차림과 고기굽기를 담당합니다. 무리 속에서 눈치 빠르게 분위기를 파악하고 센스있게 보조하는 것이 막내의 중요한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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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니키코 All rights reserved.

덴마크에서 다니던 첫 직장에서의 첫 출근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그날은 새로 온 저를 위한 작은 환영 미팅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함께 일하게 될 매니저들과 팀원 열댓 명이 케이크와 커피를 놓고 둘러앉아 서로 소개하는 자리였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눈치 빠른 코리안 막내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여기서도 본인이 막내임을 감지하고 조용히 앞에 놓인 케이크를 잘라 옆 자리에 있던 매니저에게 넘겼습니다.


그 순간! 매니저는 놀란 눈으로 제게 물었습니다.

넌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니?
아니. 엄청 좋아해. 난 그냥...마지막 남은 조각을 먹으려 했지.
Oh no... 케이크는 제일 가까이 앉은 사람이 먼저 먹는 거야. We are Equal!

그렇게 매니저는 제 접시에 가장 크고 이쁜 케이크 조각을 담아주었고, 본인은 그다음으로 큰 조각을 담으며 세상을 다 가진마냥 신나게 케이크를 먹더랍니다.


이게 뭐라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마치 옛날 그 어느 드라마에서 나온 '나를 이렇게 대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라는 그 유치한 대사가 머릿속에 맴도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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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평등하다는 게 불편한 점도 있습니다. 제 몸보다 큰 물건을 끙끙거리며 옮기고 있어도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또, 매니저나 선배와 함께 식사를 해도 본인이 먹은 음식값은 본인이 내야 합니다. 모두가 평등하기에 각자가 지고 가야 하는 책임인 것이지요.

저는 이런 책임질 수 있는 평등이 좋습니다. 각자가 각자의 분량만큼 누리고 책임지는 그런 시스템이 있었다면, 말도 못 하고 혼자 책임을 지며 힘들어했을 K-장녀는 애초에 없지 않았을까요.


인생 처음 맛본 평등한 케이크. 결국엔 그 케이크 한 조각에 이렇게 덴마크랑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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