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헌 Dec 01. 2018

멋진 신세계
- 불행이 없는 디스토피아 -

불행이 없어 불행한 세계

주제 : 과학적 진보와 인간성 / 작품 : 멋진 신세계 <올더 헉슬리>

두근두근 금요일에서 나눈 대화를 소재로 쓴 글입니다.





소마와 인간성


여기, 먹으면 행복해지고 현재의 불행을 잊을 수 있는 약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조금 우울한 것 같습니다. 이 약을 드시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조건에서 이 약을 먹지 않을까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을 벗어나는 약이라니 누구도 거절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한 세계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통제되는 사회, 플라톤의 철인 국가가 실현된 유토피아입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불행할 때면 소마라는 약을 먹습니다. 그러면 잠시 후 기분이 좋아지고 불행은 씻은 듯이 없어지지요. 불행을 '극복'한 인간은 어떻게 될까요?


"저는 소마가 꼭 나쁜 것 같지는 않아요. 지금도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약을 먹고 있잖아요" - 다혜
"그렇죠. 그런데, 그렇게 불행을 없앤 인간 사회가 정말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 다솜


우리는 불행을 싫어하지만 불행이 제거되었을 때 인간의 삶은 '고통'받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결점을 개선할 필요도, 시련을 극복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이 책에서 소마는 인간에게서 불행과 함께 성장과 공감을 가져가 버렸습니다. 먼저 성장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부정적인 감정들은 인간을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을 극복하고 한계를 깨버릴 때 인간은 성장하는 것이지요.


그 작은 약 하나가 인간의 행복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책에서도 사람들은 소마를 먹지만 뭔지 모를 이질감을 느낍니다. 물론, 그때 다시 소마를 먹어 그런 생각을 재빨리 잊어버리곤 하지요. 좋은 삶은 행복한 삶일 수도 있겠지만, 깊이 있는 삶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삶의 깊이를 위해서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을 최대한 느껴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소마는 인간에게서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진정한 행복은 불행을 충분히 사유했을 때 온전해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행복으로만 가득한 삶은 얼핏 보기에 좋을 것 같지만, 한 가지 음식으로 차려진 식탁이 아닐까 합니다. 그것도 매우 단 음식으로만요. 그것보다는 다양한 맛이 어우러진 조화로운 식탁이 더 좋지 않을까요? 옛말에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지요. '차고 넘치느니 모자라니만 못하다.' 행복이 정말 넘쳐 흘러서 모두가 조그마한 병에 행복을 가득 담아가지고 다니는 세계가 인간에게 유토피아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은 나의 불행에서 시작된다.


"아파본 사람 슬퍼본 사람이 타인의 아픔에 대해 더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소마는 불행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연대도 빼앗아가 버린 것 아닐까요?" -종헌


타인과의 연대는 공감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것을 느끼고 서로를 이해해야만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소마는 '정치적인 도구'입니다. 통치자인 철인이 대중들의 연대를 막을 수 있는 아주 좋은 수단이지요. 서로의 불행에 공감할 수 있으니 사람들은 연대하지 않고 사회에도 반감을 갖지 않을 겁니다. 물론, 애초에 불행을 느끼지 않을 테니 불만도 없을 테지만요.


이 책에서 소마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철저하게 통제된 인간 사회를 유지시켜주는 핵심적인 요소지요. 그리고 꽤나 유토피아적인 생각이기도 합니다. 불행이 없는 사회라니 얼마나 우리가 바라는 사회였나요. 그런데, 성장과 공감이 결여된 인간이 보여주는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들의 행복이 진정한 행복인지 우리는 묻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자유에 관한 책이기도 합니다. 불행할 자유가 없이 행복만을 강요받는 사회는 또 다른 불행을 나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행복도 우리가 얻어낸 것이 아니라 약 하나로 얻을 수 있는 그런 행복이라면 진정한 행복이 아닐 수 있다는 것까지 시사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불행은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불행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 바로 예술을 빼앗아 갑니다.


"불행이 없다면 예술이 나올 수 있을까요? 인간의 고뇌가 담긴 것이 예술이잖아요. 그런 사회에서는 예술을 감상하려고 하지도 않을 테지만, 예술이 사라진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되는 거 같아요." - 신영


예술은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가치들을 담아내는 그릇이죠. 그런데 인간에게서 불행을 가져간다면 인간이 담을 수 있는 가치의 그릇이 작아지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느끼고 경험하는 세계가 그만큼 축소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유라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집합이라면 소마는 인간의 자유 또한 가져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 좋은 예술을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또 자유가 줄어든 인간이 그만큼 행복해진다는 것 또한 생각해봐야 할 문제고요. 아, 물론 여기서의 자유는 물질적인 자유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식의 자유, 세계를 바라볼 때 얼마나 다채롭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대한 자유를 의미합니다.




통제된 사회와 유토피아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만족해하며 살아갑니다. 그 누구도 사회에 불만을 품지 않고 각자의 재능에 맞는 일을 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와 맞닿아 있지 않나요? 이런 생각은 이 책을 보자마자 얼마나 허무한 생각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결국, 이 책을 통해 인간의 행복은 통제가 아니라 자유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인간이 살아갈 유토피아 또한 불완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딱딱 들어맞는 사회는 인간에게 안정감과 질서를 주지만 그 반면에 자유를 빼앗아 갑니다. 그들이 좋아하고 있는 일도 사실은 누군가가 "계획" 하에 이루어진 일이니까요. 그리고 그들의 행복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사회를 위해 존재합니다. 더 나은 자신, 성장하는 내가 아닌 균형 잡힌 사회와 질서 있는 사회를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행복은 정해진 길을 따라갈 때가 아닌 길을 벗어나 뜻밖에 마주친 것에서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대했던 것 이상이 우리에게 돌아올 때 인간은 행복을 느끼지요. 항상 예상한 것만큼의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행복할까요? 이것이 행복이 가진 아이러니인 것 같습니다. 행복의 예측 불가능성, 통제 불가능성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주니 말입니다. 다시 소마 얘기로 돌아가 보면 소마는 딱 정해진 만큼의 쾌락이 담겨 있습니다. 그 이상은 없지요. 또 책에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 이외에는 행복을 느낄 수 없습니다. '뜻밖의 자신'을 발견할 기회가 없는 것이지요.


호르몬의 쾌락을 우리가 행복으로 정의한다면 그 사회는 행복한 사회일 것입니다. 하지만, 행복을 더 나은 경험, 깊이 있는 삶이라고 정의한다면 그 또한 불행한 삶은 없을 것입니다. 이 사회는 그야말로 '불행이 없어 불행한 사회'인 것 같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