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경함에 대하여

오래된 버릇과 헤어지는 과정

by 와이


23년 지기 친구와 헤어지는 중입니다. 저의 기억 속에서는 늘 함께 하던 친구인데 주변에서 모두 반대를 하니 오랫동안 우정을 이어가는 게 쉽지 않아 져서요. 제 가장 오래된 버릇, 손톱 물어뜯기입니다.

생각해보면 이 버릇을 끊어내는 건 부모님, 동생, 회사 사람들과 남자 친구까지 입을 모아 말하던 숙원사업에 가까웠습니다. 이 모옷-된 버릇은 위생적으로도, 치아와 턱 건강에도, 미관상으로도 좋을게 하나 없으니까요. 프로이트의 구강기 고착이라 말하는 친구도, 손톱깎이를 집과 사무실과 가방에 다 넣고 다니라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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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고양이가 자기 몸을 그루밍할 때에는 “고영선생 귀여워 지구뿌셔ㅓㅓ”하더니 내 손톱 내가 처리하는 건 온 세계가 나쁜 버릇이라 하는 이유를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는 27년 만에 지긋지긋한 인연을 끊어내고 손톱을 기르는 중입니다.

이유는 꽤 단순합니다. 회사에서 미팅을 하거나 신입사원 교육을 할 때 모니터를 가리키는 게 부끄러울 때가 많아진 것도 있고요. 여행을 가기 전 처음으로 젤 네일을 받아보았는데 색상을 추가하고 젤을 제거하는 가격까지 듣고 나니 손톱을 건드리기도 무서워진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역시, 자본주의의 힘만큼 강력한 건 없어요.

사실 손톱을 기른 지 한 달 남짓이 되었는데요.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좋은 점을 (아직은) 잘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몸에 없던 무언가가 생긴 것 같은 감각에 아직은 익숙해지지 못한 것이 큽니다.

우선, 손톱이 길어지니 손가락을 세워서 키보드를 칠 때마다 헛도는 느낌이 듭니다. 이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도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피겨스케이팅을 하고 있어요. 고모네 강아지가 아파트 마룻바닥에서 앞으로 달려 나오지 못하고 타닥타닥 거리며 제 자리에서 미끄러지는 모습을 보고 손뼉 치며 웃은 적이 있는데 이제 와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어 질 정도입니다. 하늘아 누나가 정말 미안했어. 방과 후 컴퓨터 교실에서 별 헤는 밤을 1등으로 끝내던 의기양양한 과거는 어디로 가고, 업무 메신저에서 오타가 너무 많아 민망할 정도입니다.

게다가 키보드를 빠르게 칠 때면 소리가 어찌나 큰지, 사무실에서 나만 키보드를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기말고사 일주일 전쯤의 고요하고 예민한 도서관에서 지퍼로 된 필통을 Z-이-익 열면서 눈치 보던 때가 떠오르더군요.

물론 단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가장 뿌듯할 때에는 꼭 묶인 시장 비닐봉지를 으른처럼 잘 풀 때입니다. 검은 비닐 파뿌리처럼 하얘질 때까지 힘으로 뜯어내던 손톱 짧던 제 자신과 비교하면 철기시대와 구석기시대, 그것도 뗀석기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가장 큰 장점은 바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걸 경험하는 그 ‘생경함’에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울 게 없는 일상에서 매일 아침에 주먹을 꽉 쥐면 느껴지는 단단함이 있다는 게 얼마나 신기한지 모릅니다. 일례로 저는 한 번도, 제 손으로 제 몸을 긁으면서 ‘시원함’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요즘은 제 손이 몸을 스칠 때 아픔까지 느끼기도 합니다. 왜 갓난아기에게 손싸개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팔에도 제가 만든 생채기가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마치 갑자기 큰 힘을 얻어서 조절하지 못하는 무협지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까지 듭니다.

아무튼, 오늘도 저는 틈만 나면 손톱을 한참이고 내려다보았습니다. 제 자신은 조금 신뢰도가 떨어지는 친구라 자본주의의 힘을 빌려 다음 주 수요일에 젤 네일 예약을 걸어두었습니다. 그럼 또 한 달은 손톱님을 함부로 다루기도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런 저에게도 긴 손톱에 익숙해지고 손톱을 짧게 깎아 아프다고 말하는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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