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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해 Nov 29. 2022

안녕, 내 첫 차

나는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살아가지 못할 자신이 있다.

  코란도는 원래 아버님의 차였다고 했다. 자세한 경위는 모르지만 아버님은 서울에 계시는 작은 아버님께 돈을 빌렸는데 갚을 때가 되자 차일피일 미루며 나 몰라라 했다고 한다. 화가 난 작은 아버님은 코란도를 볼모 삼아 서울로 운전해서 올라가 버리셨고, 또다시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작은 아버님이 안 계신 틈을 타 오빠가 코란도를 몰고 다시 내려왔다고 했다. 세월이 지나 코란도는 오빠의 차가 되었고 오빠는 내 남편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차는 나와 별 연관성이 없는 물건이었다. 우리 집은 차가 아예 없었고 내겐 튼튼한 두 다리와 많은 시간이 있었다. 어릴 적 살던 집에서 출발하여 시립도서관까지 1시간 30분을 걸어 다녔고, 조금 더 커서는 영화를 보기 위해 CGV까지 거의 2시간을 걸어 다녔다. 차가 없어도 전혀 생활에 지장이 없었다. 대학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택시를 타자는 친구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뭐랄까, 택시를 타면 길바닥에 돈을 뿌리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웬만하면 걸어 다녔고 웬만치 않으면 버스를 타고 다녔다.


  대학교 4학년 2차 임용시험을 보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3차 스터디는 흐지부지 와해되었고 시간은 애매하게 남아버렸다. 그러다 동기 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갇히기 전에 하고 싶은 거 지금 다 해버릴 거야. 전에 일했던 바(Bar) 알바나 다시 해볼까.” 시간도 많고 생각도 많아지면 엉뚱한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바 아르바이트를 검색하였고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여우바]라는 곳에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을 보러 찾아간 그 장소는 상상 속의 생각만큼 재미있다거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손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다른 것이 목적인 곳이었고 당연히 면접은 망쳤다. 가게를 나오니 도로는 눈에 뒤덮여 있었다. 길은 꽁꽁 얼어 빙판이 되었고 발은 푹푹 빠졌으며 버스는 계속해서 오지 않았다. 11시를 지나 막차 시간이 다가왔고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하나 둘 택시를 불러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돈이 없었다. 택시 기본요금만큼도 돈이 없었고 체크카드 통장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택시를 타고 동기 언니 집으로 간 뒤 언니에게 돈을 빌릴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다. 심지어 3차 준비로 예민해져 있을 텐데 나까지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핸드폰 연락처를 뒤적이다 눈에 들어온 이름이 있었다. 선배였다.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선배는 공익근무를 마치고 같이 일한 동료들을 내려주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라고 했다. 차를 돌려 내게 왔고 코란도가  앞에 섰을  안도감이 밀려왔다. 선배가 어른 같다고 여겨졌다. 임용시험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과 이미 선생님이 되어 있는 선배의 안정을 비교하였다. 선배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미 이룬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게 부러웠다. 집으로 데려다주는 길에 선배는 물었다. “괜찮으면 우리 만나보지 않을래?”


  그 이후 코란도와 함께하는 일이 많아졌다. 선배라는 호칭은 오빠로 바뀌었고 같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오빠는 나의 3차 영어 수업 시연을 꼼꼼하게 도와주었고 그 덕분인지 꽤 좋은 성적을 받았다. 학점 등급이 바닥인 상황에서 떨어질 수도 있었는데 운이 좋았던 것이다. 살아오면서 온전히 내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거의 없었던 게 아닐까. 나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착취하고 이용하면서 살아오고 있다. 내 외로움을 남자 친구나 친구들을 만나면서 해소하기도 했고, 내가 가진 것이 없을 땐 그것을 가진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어 이용하기도 했다. [원피스]에서 루피는 이야기한다. '나는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살아가지 못할 자신이 있다.'라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 점을 못내 주저하며 받아들이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오만, 과대평가 때문이라고도 여긴다.      


  코란도는 2014년에 폐차를 시켰다. 연비가 좋지 못해 기름을 많이 먹었고 연식이 오래되어 고쳐야  곳이 너무 많았다. 여러 지역으로의 이사에  역할을 해주었고, 유모차부터 시작해 온갖 아이의 짐들을 턱턱 부담 없이 실을  있었던 고마운 차였다. 언젠가 TV에서 차에 대한 광고를  적이 있다. 오랜 시간 함께한 차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며 폐차할  눈물이 났다는 내용이었다. 저런 감성팔이는 정말 말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은 말이  것도 같다. 가끔 코란도의 덜덜거렸던 창문 소음과 운전석에 있던 오빠의 다리를 베고 잠이 들었던 그때가 그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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