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거실에 책장이 놓였다
아무래도 가진다는 말은 좀 그렇지?
자잘하고 많은 망설임의 시간을 지나 책장을 주문했다. 절차는 간단했다. 책장이 놓일 공간의 사이즈를 재고 그 크기에 맞는 책장을 고르고 원하는 색상을 선택한 뒤 결제를 하면 끝이었다. 몇 번의 클릭과 몇 번의 타이핑으로 책장은 우리에게 왔다.
책장이 배송 오기로 한 날, 배송 기사님께 전화를 받았다. "5층이라서 아무래도 도와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배송 기사님은 한 분이셨고 우리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흔쾌히 내려갔다. 기사님이 책장의 위쪽을, 남편이 아래쪽을 받쳐 들고 좁은 계단 길을 책장과 함께 올라왔다. 가구의 방향을 잡아가며 끌어올리는 앞 쪽이 더 힘들지, 온 무게를 받아가며 밀어 올려야 하는 밑 쪽이 더 힘들지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나는 그저 두 사람이 끙끙 거리며 올라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집에서 이렇게 큰 가구를 시키냐며 면박을 주거나, 사다리차를 불러야 한다고 요구할 만도 했는데 기사님께서는 한 마디 불평조차 없으셨다. 그저 책장이 놓일 자리를 잡아주고 수평을 맞춰주셨다. 아이들이 책장에 매달리면 책장이 아이들 쪽으로 함께 넘어져버릴 수 있으니 책장의 앞쪽을 좀 더 높게 돋워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두꺼운 종이를 찾으셨고 손수 종이를 여러 번 접어 책장 앞에 끼워주셨다. 그렇게 우리 집 거실에 책장이 놓였다.
거실 한쪽에 커다랗게 자리 잡힌 책장, 그곳에 책을 하나하나 꽂으면서 나도 모르게 "너무 좋다. 너무 좋아."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좋아하는 책을 위해 나만 알아보는 명당자리를 선정하여 신중하게 책을 배치하였고 작가별로 책을 모아 꽂아보기도 했다. 아래쪽은 아이들 손이 닿는 곳이니 아이들이 읽을 책을 배치했다. 집에 있던 책을 거의 전부 꽂았는데도 빈자리가 남아서 굴러다니던 장난감들도 정리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 이곳저곳 공간이 되는대로 들어가 있던 책들이 자기 집을 찾아 이사한 느낌이었다. 가구 하나가 새로 놓인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니, 나는 꽤 벅차올랐다.
가진 것이 많이 없는 상태로 결혼이라는 시작을 했다. 우리의 신혼집은 내가 살던 원룸이었고 당연히 그 어떤 가구도 놓을 수 없었다. 지역을 옮겨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집은 내 자취방에서 오빠가 살던 관사로 바뀌었고 오빠의 살림과 나의 살림은 말 그대로 합쳐졌다. 우리에겐 오빠가 쓰던 금성 냉장고가 있었고 오빠가 쓰던 서랍장이 있었고 내가 가진 컴퓨터가 있었다.
재밌게도 그 당시에는 가진 게 적다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그때를 생각하며 '어느 정도는 무리해서라도 가지고 시작했어야 했나?'라는 물음표를 떠올리기도 한다. 막상 그때의 나는 순간순간을 충만하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바라보며 동정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달라졌기에 그때를 동정하고 있었을까. 지금의 내가 마주하는 세계가 그때의 나를 낮추어보고 있는 건 아닐까. 가진 것이 많아 꾹꾹 눌러 쌓아 놓는다고 해서 생각도 함께 단단히 쌓여가는 것은 아닌가 보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겁이 없었고 그때만 할 수 있었던 용기와 삐걱거림, 그리고 그때의 우리. 멀리서 보면 한낱 티끌일 뿐이지만 가까이 가 닿아보면 최선을 다해 반짝거렸던 그때였다.
도대체 얼마만큼 가지고 시작해야 미래의 내가 후회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가진다는 말은 좀 그렇지? *
* 십센치, 가진다는 말은 좀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