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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해 Nov 30. 2022

불안한 마음이 들 땐 식탁에 앉아요

내 공간이 늘어나는 것에 대하여

  2020년 1월 17일 우리 집에 식탁이 생겼다. 굳이 날짜까지 적어가며 시작하는 이유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이전의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 집엔 식탁이 없었다.  


  식탁을 사지 않았던 이유는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막 태어난 아이는 매우 작았고 식탁은 매우 컸다. 우리 집은 다소 작았고 식탁은 다소 컸다. 무엇보다 아이랑 같이 놀기 위해서 식탁은 필요가 없었다. 아이는 신기한 게 많았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물건을 손으로 만져보려 했다. 여물지 못한 어린 손은 모든 것을 떨어뜨리기 일쑤였고 오히려 식탁이 없는 편이 치우기에 편리했다.  


  덕분에 우리는 재밌게 놀 수 있었다. 으깬 감자를 넓은 그릇에 내어주면 아이는 손으로 주무르고 얼굴에 부비며 놀았다. 그러다 입에 들어가면 먹었고 나도 함께 웃었다. 이유식을 그릇째 매번 엎어버려도 조금은 괜찮았다. 안 먹는 게 짜증 나서 그렇지 치우는 건 탁자를 들어 옮기고 걸레로 훔치면 금방이니까. 낮잠을 함께 자다 내 옆에서 먼저 깬 아이는 혼자 조용히 벅벅 기어가 접이식 탁자에 있던 바나나를 껍질째 빨아먹기도 했다. 껍질과 함께 여기저기 으깨어진 바나나의 흔적은 마치 똥 같았다.  


  한 번은 인천에 살고 계신 형님과 함께 이케아에 구경을 갔다. 가구들이 여러 컨셉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책상, 커튼, 침대를 각각 따로따로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방처럼 인테리어를 해놓았고 여러 개의 방을 마치 남의 집 구경하듯 돌아볼 수 있었다. 책상 앞에도 앉아보고 침대도 쓸어보며 구경하다가 마침내 주방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모든 가구들이 깔끔하고 예뻤다. 무엇보다 가구들이 실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눈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식탁을 사용해보지 않은 사람의 관점에서 '식탁이 있으면?'이라는 상상은 빈약할 수밖에 없다. 어디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의자는 스툴이 좋은지 등받이가 좋은지, 4인용이 좋은지 6인용이 좋은지, 소재는 어떤 것이 좋으며 모양은 어떤 게 합리적인지 등등 구체적인 상상을 할 수 없었던 내게 이케아는 좋은 샘플을 제공해주었다. 이같은 생각은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였는지 구경의 막바지에 다다르자 "식탁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했고 "식탁을 사자."고 답했다. 서로가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금 사지 않으면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사지 않게 되리란 것을 우린 알고 있었다. 지금에 익숙하다는 것은 편리함조차 거부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괜찮지 않아?’ ‘굳이 사야 하나?’ ‘집이 좁아지지 않을까?’ 등등 여러 가지 물음표를 주고받기를 몇 차례, 조립이 쉽고 가성비가 좋은 원목 식탁을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배송비가 아까워 광명에서 집까지 우리 차에 싣고 오기로 했고 아주버님, 남편, 나까지 3명이 낑낑대며 앞 좌석과 뒷좌석 사이에 절묘하게 식탁을 실었다. 아이들도 이렇게 큰 무언가를 산다는 게 기뻤는지 다리를 펴지 못하고 차에 타야 했는데도 꺄륵꺄륵 즐거워했다.  


  집에 도착해서 식탁을 조립하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식탁 상판이 그릇에 찍히거나 흠집이 날까 염려되어 1인 식탁 매트도 구매했다. 없던 가구의 자리를 마련하고 그 가구에 알맞은 또 다른 무언가를 산다는 게 재밌었다. 소소하게나마 내 취향을 반영할 수 있다는 것도 큰 기쁨이었다. 식탁이 없다가 있으니 좋은 점이 많았다. 더 이상 접이식 탁자를 폈다 접었다 하지 않아도 됐고 요리가 완성되면 바로바로 식탁 위에 올릴 수 있었다. 정리도 쉬웠고 무엇보다 식탁은 식탁의 역할만 하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내 책상이 되기도 했다.  

 

  나는 무엇을 살 때 물건의 좋은 기능만을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물건은 사면 좋아야 하고 있으면 편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사서 좋지 않을까 봐 불안하고 생겨서 자리만 차지할까 봐 걱정이다. 막상 사놓고 별로 사용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생각만큼 좋지 않으면 어떡하나, 이미 충분하지 않나, 하며 끊임없이 가성비를 따지고 지금에 애써 머무르고 싶어 한다. 끊임없는 나만의 수 싸움으로 인해 무언가를 사는 것이 스트레스일 때도 있다.  


  오랜 시간 고민하지 않고 다소 충동적으로 구매한 식탁은 생각보다 큰 기쁨을 만들었다. 식탁은 식사를 위한 공간이라는 역할을 충실히 다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집에서 내가 머무를 수 있는 공간도 늘려주었다. 집은 그동안 내게 어떤 의미였을까. 집은 생각보다 많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가장 기본은 '쉼'과 '여유'의 공간이었다. 나는 그것을 조금 늦게 알아차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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