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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해 Dec 03. 2022

생각을 다듬을 땐 책상에 앉아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째서 당신은 내가 미래를 준비하느라 현재를 망치기를 바라는 거지?

내가 관심 있는 건 오직 내 현재뿐인데 말이야.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해.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중 시몽의 이야기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단연 책상이다. 내 책상의 가장 큰 장점은 어디에든 있다는 것이다. 사무실이 책상이 되기도 하고 식탁이 책상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서로 포개어진 두 무릎이 책상의 역할을 할 때도 있다. 하나의 구체물로서의 책상이 아닌 이곳저곳 여기저기에 흩어진 모든 책상들이 나를 다듬을 수 있게 도와준다.


  어릴 적 책상 한구석에 컴퍼스의 날카로운 부분으로 글씨를 새겨 넣은 적이 있다.

엄마미워!동생만예뻐하고나한테만뭐라그러고진짜미워


싫으면 싫다 미운건 밉다 좋은 건 좋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주저하고 망설이던 내게 책상은 가만 들어주는 존재였다. 아마도 어릴  엄마에게 잔뜩 성이 났었고  마음을 적절하게 -어른의 마음에 흡족하게- 드러내는 방법을 몰랐었으리라. 속상한 마음을 말하고 싶은데 혼날  같고, 그렇다고 가만있자니 화는 가라앉지 않았. 뾰족한 마음을 가득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책상에 글씨를 새겼다. 일부러 보라고 대놓고  낙서이니 당연히 엄마께서 보셨고 결과는... "책상 아깝게 지지배가 뭐하는 짓이야!"로 돌아왔다.


  어느 순간부터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기 시작했다. '누가 그랬대.' '책에서 봤는데 이런 말이 있었어.' '유명한 박사님이 이야기하셨는데...'로 시작하는 내 것이 아닌  이야기. 타인의 말을 빌리면 상대의   반응은 나와 무관한 것이라고 여겼다. 혹시라도 돌아올지 모르는 비난을 피할 수 있는 좋은 핑곗거리를 찾은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익숙해지다 보니  이야기는 사라져 버렸다. 심지어 빌려온 남의 이야기가 상대를 감화시키지 못할 때도 있었고 때론 비난을 받을 때도 있었다.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이렇게 뛰어난 사람의 생각도 비난을 받다니! 그에 비해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생각은   비난을 을지도 몰라! 도망쳐야겠다.' 


 내 생각을 교묘히 숨기고 상대의 생각을 알아차리는 삶이 편하고 익숙해졌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온전히  사람에게 모든 결정을 맡겼다. 그와 나의 관계에서 내가 책임질  있는 영역을 최대한 축소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결정을 미루면 책임에서도 자유로워지니까. 스스로를 바라보지 못해 안타깝고 사랑이라는 허울 좋은 포장지로 뾰족한 마음을 애써 덮어버렸다는 점에서 비겁하다. 어떤 마음은 마모되지 못한  남아있기도 하다.

"너는 배려라고 이야기 하지만 선택을 피함으로써 책임을 나에게 미루고 있어."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휘청거렸다. 애써 덮어두었던 뾰족한 마음들이 나를 찌르는 것 같았다.


미래에 닥쳐올지도 모르는 막연한 불안으로 인해 현재에 집중하지 하는 나를 바라본다. 책상에 앉아 내 생각을 적어보고 있다. 물음표와 느낌표와 말줄임표를 오가며 '싶다'를 써야 할지 '있다'를 써야 할지 수십 번의 고민을 지나, 치열하게 지금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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