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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해 Dec 11. 2022

콩아 안녕, 1

나라는 사람을 견디어주는 고마운 존재들에 대해

  콩이는 노란 고구마 빛깔의 털을 가진 치와와이다. 원래 치와와는 검은색 털이니까 아마도 콩이는 다른 종이 섞인 잡종일 것이다. 치와와는 눈이 너무 커다래서 튀어나올 듯이 데굴거리는 느낌인데 콩이는 적당한 크기의 큰 눈이어서 더 예쁘다고 생각했다. 노랑과 갈색 사이 어딘가에 있는 털 색깔도 콩이의 작은 몸에 알맞게 어울렸다.

"강아지 무슨 종이예요?"

라고 물으면 답하기가 어려웠다. 콩이는 그냥 콩이였으니까.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집에 돌아왔더니 요 쪼그만 꼬맹이 한 마리가 나를 보며 맹렬히 짖었다. 꼬리는 바쁘게 왔다 갔다 거리며 자기 집에 온 나를 반기는 듯했다.  콩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이리 와'를 외쳤고 콩이는 스스럼없이 무릎에 올라와 내 손을 핥았다. 콩이는 유기견이었다. 누군가에게 버려져 아파트 단지를 헤매고 있었고 아파트 관리소에서 근무하고 있던 아빠에게 오게 되었다. 일주일이 넘게 아파트 주민들에게 강아지를 보호하고 있다는 방송을 했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콩이는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

  콩이는 사람 음식을 매우 좋아했다. 엄마가 요리를 할 때면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무언가 흘리기만을 기다렸다. 양파든 고구마든 김치든 상관없이 바닥에 떨어진 건 일단 삼키고 봤다. 한 번은 보글보글 끓어오르던 냄비에서 기름이 톡 튀어나가 콩이 등에 떨어지고 말았다. 아프다고 깽깽거려서 재빨리 등을 씻겨주었지만 새끼손톱만큼 땜빵이 생겼고 더는 털이 자라지 않았다. 무엇이든 다 좋아했지만 제일 좋아했던 건 비계를 떼어낸 삼겹살이었다. 삼키지 말고 씹어 먹으라고 고기를 붙잡고 있으면 내 손을 앙 깨물어서 내놓으라고 한 뒤, 꿀꺽 삼켜버렸다.

  콩이는 밖에만 나가면 부들부들 떨었다. '산책 갈까?'라는 말에 귀를 쫑긋 세우며 기뻐했지만 막상 밖에 나가면 그렇게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추운 날씨도 아닌 여름에도 마찬가지였다. 산책 나가는 것이 너무 기뻐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또다시 자신이 버려질까 봐 겁이 나서 떠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둘째와 함께 콩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길이었다. 이동장이 없어서 에코백에 콩이를 담아 둘째가 폭 안고 갔다. 운전하는 내내 콩이는 부들부들 떨었고 사람처럼 울었다. 둘째의 품에서 벗어나 자꾸 내게 오려고 애를 썼다.


"아래쪽 배에 멍울이 잡혀서요. 검사 좀 해보려고요. 그리고 뒷다리가 아픈지 만지면 깨갱거려요. 기침도 자주 하구요."

"멍울 크기가 상당하네요. 정확하게 진단하려면 조직을 채취해서......."


  멍울은 유선 종양이었고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암으로 번질 확률이 매우 높다며 전절제 수술을 하길 권장하셨다. 뒷다리는 슬개골 탈구가 일어났는데 2차 탈구까지 진행되어서 이곳에서는 수술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기침은 노화로 인해 기관지 부위가 늘어져서 호흡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기관지 확장제를 처방하여 꾸준히 먹이면 좋아질 것이라고 하셨다. 일단은 받을 수 있는 최대 기간으로 진통제와 함께 약을 받아왔다. 엄마와 상의를 해야 했다.


"암 이래?"

"유선 종양인데 암이 될 확률이 높대. 제거하면 좋겠대."

"콩이가 우리한테 온 날짜만 세어도 17살이 넘어. 콩이 나이 너무 많이 먹어서 수술하면 못 깨어나."

"그럼 아프지 않게 약이라도 잘 먹이자. 내가 올 때마다 처방받아올게."

"엄마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니 새끼나 신경 써."


  엄마 말대로 내 새끼와 나를 신경 쓰는 날들이 이어졌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둘째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많이 컸지만 여전히 신경 써야 할 일들의 연속이었고 나 역시 바빴다. 차곡차곡 하루씩 시간은 잘도 흘러갔고 가끔 만나는 콩이는 여전히 기침을 했고 다리를 절뚝거렸다. 그럼에도 내가 문을 열 때마다 콩이는 꼬리를 맹렬히 흔들며 그 작은 몸으로 짖어댔고 나는 그 모습에 안도했다. '아직 괜찮구나. 다행이다.'

 

"콩아, 이리 와. 언니한테 와."

콩이는 식탁 밑에 들어가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내가 손을 뻗어 만지려고 하면 딱 그 거리만큼 뒤로 물러섰다.

"엄마 콩이가 많이 아픈가 봐. 내가 만지지도 못하게 하네."

"콩이 많이 아파. 저번에는 경련을 하고 쓰러져서 진짜 죽는 줄 알았다니까."

유난히 길었던 올 가을의 끝자락에 나는 콩이를 만지지 못했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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