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1학년을 응원해
<우리는 모두 1학년이었다> 김성효
작년 겨울이었고 이번에도 오고야 말았다. 내년도 업무와 학년을 희망하는 시기 말이다. 누가 몇 학년을 쓰는지, 연구 부장이며 교무 부장은 누가 맡아서 할 지로 학교가 조용히 소란해진다. 복도를 오가며 종종 마주쳤던 선생님께서 나를 붙잡으셨다.
“선생님, 내년에 몇 학년 생각 중이야?”
“저는 이번에 고학년으로 올라갈까 고민하고 있어요.”
“우리 같이 1학년 하면 어때? 선생님하고 동학년 하고 싶어서 물어보는 거야.”
함께 일 년을 보내자는 감사한 제안이었지만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제안해 주셔서 너무 감사한데요. 제가 1학년이 무서워요. 올해 2학년 맡으면서 너무 힘들고 손이 많이 가더라구요. 그런데 1학년은 더 어리잖아요. 1학년 선생님들 정말 대단하세요.”
“어머,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내가 다 도와줄게. 그리고 1학년을 해봐야 진짜 선생님이 되는 거나 다름없다? 고민해 보고 연락 줘.”
정말 맞는 말이다. 1학년이든 6학년이든 어느 학년이든 피하고 도망칠 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베테랑 선생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니, 처음을 도전해 볼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6학년 선생님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1학년에서 가장 멀리 도망친 것이다.
아이들은 어릴수록 귀엽고 엉뚱하고 즉흥적이다. 방귀를 참지 못해 뿡, 소리를 내고선 “나 아니야!”라고 말하며 얼굴이 새빨개지기도 하고 핸드폰도 매일매일 잃어버린다. 다시 한번 가방을 찾아보자고 이야기하면 “이미 찾아봤는데 없어요!”라며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엉엉 울기도 한다. 그리하여 아이의 가방을 열어 책 몇 개를 꺼내보면 핸드폰은 언제나 그 속에서 발견된다. “찾아보는 건 눈으로만 쓱, 보는 게 아니고 손으로 하나하나 짚어보며 찾는 거야.”라고 이야기를 건네지만 아이는 이미 내 말을 듣지 않고 있다. 핸드폰을 다시 만나 이 세상에서 제일 기쁜 어린이가 되어 해맑게 웃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1학년이었다>에는 1학년 아이들의 모습이 가득 담겨있다.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출발선에 서서 긴장하는 모습, 새로운 반,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것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 내가 아닌 남을 위해 마음을 내어주는 모습, 어른도 하기 힘든 어려운 일들을 처음이어서 용기 있게 할 수 있고, 처음이어서 서툴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 해내는 아이들이 담겨있다.
받아쓰기나 구구단이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되어 고군분투하는 그들을 바라볼 때면, 처음을 배워야 하는 막막함이 떠올라 안쓰럽기도 하다. 붓질이며 물감에 관해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엄청난 그림을 뚝딱 그려가며 “참 쉽죠?”를 되묻던 밥 아저씨가 생각나기도 한다. 아이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나는 아이들에게 똑같이 “참 쉽죠?”라고 되묻곤 한다. 아이들은 울상을 지으며 “아니요!”를 외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자기를 괴롭히던 순간들을 아무렇지 않은 순간으로 바꾸어나갈 힘이 있다는 것을. “선생님 이제 구구단 거꾸로도 외울 수 있어요.” “선생님, ‘돼’ ‘되’ 구분하는 방법 알려드릴까요? ‘해’랑 ‘하’를....”이라며 쫑알쫑알 자랑해 올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아이들이 겪을 수많은 부딪힘에 응원을 보낸다.
올해 6학년 아이들이 묻는다.
“선생님 루트가 뭐예요? 그거 먹는 거예요?”
“아, 그건 중학교 1학년 때 배우는 수학 기호인데, 선생님은 그거 처음 배울 때 이해가 안 돼서 엄청 힘들었어. 근데 벌써 루트를 알아?”
“친구가 배웠다고 자랑하길래 뭔지 궁금해서요.”
너희들은 다시 1학년이 되는구나. 응원한다.
올해 역시, 업무 분장의 시기가 돌아올 것이다. 10년 정도 선생님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담임을 맡지 않은 학년이 1학년이다. 어른에게도 처음 배운다는 건 이다지도 어려운 일이다. 조금 웃어도 많이 행복한 1학년이라니, 많이 웃어도 조금 행복한 어른이는 그들의 세계가 살짝,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