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을 만나러 가기 위해 열었던 문을 떠올려봅니다. 밀었는지 당겼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건 깊어가는 가을밤, 그 카페 앞을 지나가며 고민을 하던 저의 모습입니다. 첫 번째는 멈춰 설 용기가 없어서 지나갔고 두 번째에는 멈춰 섰지만 안을 들여다보는데서 그쳤죠. 세 번째쯤에는 카페 문이 열리고 사람이 나오는 바람에 마치 지나가는 사람인 척 길을 걸었을 겁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자리에는 다섯 사람이 있었습니다. 카페의 사장님 부부와 영화 관련 일을 함께 하시는 두 분, 그리고 박준 시인이었죠. 전혀 모르는 사람들 틈에 끼어들어갈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강연장에서 들은 시인의 말 덕분이었습니다.
"단번에 생각하고 하는 말이 있고, 마음속으로 수십 번 고민하고 생각한 뒤에 하는 말이 있어요. 한 번에 생각했든 여러 번 고심했든 말이 밖으로 나왔을 때의 결과는 아마 같을 거예요. 단어나 이야기는 서로 같을지라도, 그 속에서 내가 품고 있던 마음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
한 번에 문을 열고 들어갔든, 세 바퀴쯤 빙글빙글 돌다 들어갔든 제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는 건 똑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품은 마음이 다르다는 걸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시작이라는 문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문을 열기 위해서는 일단 손에 든 걸 내려놓아야겠죠. 한 손이라도 비워야 할 것입니다. 양손에 무언가를 가득 쥔 채 문을 열려고 애를 쓰다 보면 문도 안 열리고 손에 든 것도 다치기 쉽습니다. 언젠가 한번 성급하게 문을 열다 발을 다친 적이 있습니다. 급하게 들어간 발과 당기는 문이 서로 부딪히고 말았죠. 한 걸음 뒤로 물러섰어야 했습니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면 앞으로만 곧게 나아가길 바라곤 합니다. 글을 쓰는 속도가 빨라졌으면 좋겠고 달리기의 페이스도 단축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막상 하다 보면 제자리에 멈춰서 있거나 뒷걸음질 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때가 생깁니다. ’빨리 달리기 위해서는 초반에 천천히 달려야 해요.‘라는 모순된 이야기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서 혼란을 겪기도 합니다. 시작을 위해 뒤로 물러서는 것은 때로는 방향이 잘못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문을 열기 위한 뒷걸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