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책 모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모이는 날,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위해 여러가지 사진들을 펼쳐놓았죠.
“요즘의 자신을 나타내는 사진을 고르시고, 사진과 함께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한 선생님께서 빨갛게 타고난 뒤 연회색으로 변해가는 나무토막 사진을 고르셨어요.
“저는 요즘 타고남은 재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제가 맡은 최소한의 역할들이 구멍 나지 않도록 애쓰고 있어요.”
라고 말하시며 조금 울먹이셨죠.
다른 선생님들께서 한마디씩 용기를 주셨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애들이 크면 다 괜찮아지더라구요. 조금만 더 키우면 돼요."
저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지금을 지나가고 계신 선생님께>
선생님께서 요즘을 이야기하실 때, 떨리던 목소리를 기억해요. 꾹꾹 누르는 그 마음에 힘겨움이 담겼기 때문이겠죠.
'조금은 구멍이 나도 괜찮아요.'라고 위로를 건네고 싶었지만 저는 꿀꺽 삼켰어요.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선생님의 상황을 제가 함부로 넘겨짚을까 봐 걱정도 되었죠.
말은 쉽게 괜찮다고 이야기했지만, 저 역시 제 역할에 구멍이 생길 때면 괜찮지가 않아요. 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서 그 상황을 여러 번 돌이켜보기도 하죠. 사실 저는 책임감이나 정의감 때문만이 아니라 순전히 제 탓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최선을 다하기도 해요. 아이가 엄마 때문에 못했다고 할까 봐, 동료가 내 욕을 할까 봐, 남편이, 반 아이들이, 가족들이,, 온갖 탓이 제게 돌아오게 될까 봐, 그 탓을 듣는 것이 무서워서 빈 틈이 생기지 못하게 애를 쓰는 것 같아요.
지난 금요일에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쓴 심윤경 작가님의 에세이예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마주하는 자신과의 싸움이 담겨있어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저 또한 ‘이런 모지리 같은 사람이 나라고?’ ‘나 정말 못나고 못 됐다.’싶은 순간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재밌게 읽었고 선생님 생각이 났어요. ‘책을 깨끗하게 읽고 선생님께 드려야겠다.’라고 마음먹었는데 책을 읽다 보니 이 책하고 저는 친구가 되어야겠더라구요. 그래서 제 것을 남기고 선생님 것을 한 권 더 샀어요.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하네요.
레너드 코헨이 한 말이 있어요.
[모든 것에는 금이 가 있고 빛은 바로 거기로 들어온다.]
제가 되게 좋아하는 말이에요. 선생님의 틈에도 빛이 들어오고 있을 거예요.
+ 추신
월요일에 드리고 싶었는데 하루 미뤄졌네요.
작은 틈이 생기긴 했지만 화요일도 괜찮은 것 같아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