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초등학교 6학년 스승의 날 전날이었다. 여자애들 몇몇이 모여 담임선생님께 깜짝 파티를 해드리자고 했다.
“편지는 다 같이 쓰고 이따 팬시점 가서 선물도 고르자.”
“천 원씩 걷어서 그 안에서 사자.”
아이들 모두 살짝 들떴고 나 역시 너무 설레서 의자에 앉아 있는 게 힘들 정도였다. 누군가를 감동시킬 계획을 짜는 일은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게다가 몰래 한다니! 생각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부모님께 용돈을 타고 외출을 허락받았다. 엄마는 내게 오천 원을 건네며 신신당부했다.
“오천 원 이거 다 쓰라고 주는 거 아니야. 너희들이 돈 모은 거에서 살짝 넘치면, 넘친 금액만큼 이걸로 쓰라고 주는 거야.”
“네!”
가방을 던져놓고 아이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어릴 적 팬시점은 항상 반짝거리는 곳이었다. 키가 작아서 더 그랬겠지만 천장이 높다랗고 알록달록 액세서리들이 1층에 쫙- 깔려 반짝거리고 있었다. 정말 눈이 홱홱 돌아갔다. 예쁘고 예뻐서 다 가지고 싶을 만큼. 그중에 연보라색 작은 꽃이 오밀조밀 모여있고 가운데 꽃술마다 큐빅이 박혀있는 머리핀이 내 눈에 들어왔다. 한 바퀴를 돌고 두 바퀴를 돌아도 그 머리핀은 계속 내 눈앞에 떠올랐다. 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다 결정하고 계산하려는 순간, 나는 재빨리 그 보라색 머리핀을 집어 왔다. 아이들이 말했다.
“야, 이거 우리 모은 돈으로 못 사.”
“이거 내 돈으로 사서 선생님 드릴 거야.”
“너네 엄마가 사도 된다고 하셨어?”
“응, 엄마가 돈 넘어가면 보태라고 했으니까 될 거야.”
나는 호기롭게 말하며 계산했다. 그 연보라 핀은 삼천 원이나 했는데 당시 물가를 따지면 꽤 비싼 편이었다. 계산하는 점원도 내가 고른 그 연보라 핀만 종이봉투에 담아 예쁘게 포장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남은 잔돈을 건넸다.
“돈이 왜 이거밖에 안 남았어?”
“응, 내가 선생님 드리려고 예쁜 핀을 따로 샀어.”
“그게 얼만데?”
“삼천 원.”
“... 핀 하나에 삼천 원?... 그 핀 네가 따로 사서 드리는 건지 선생님이 어떻게 알아? 선물이랑 편지랑 다 같이 한꺼번에 드린다고 했잖아.”
그 순간, 설렜던 마음이 펑 터져버렸다. 그리고 시시각각 걱정으로 바뀌었다.
‘돈은 내가 남들보다 4배나 더 썼는데 다 같이 산 걸로 돼버리면 어떡하지? 그 핀에 내가 산 거라고 이름을 적을까? 그런데 지금 그 핀이 나한테 없는데? 아침 일찍 가서 적을까? 그 핀만 내가 따로 드린다고 할까?’
수십 가지 생각을 오고 가다 일기장에 적기로 했다. 구구절절 구질구질 변명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지만, 이 사태를 바로잡아야만 했다.
다음날, 우리의 깜짝 파티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나만 빼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스승의 날을 축하하고 있었지만, 내 모든 신경은 오로지 일기장과 머리핀에 가 있었다. 너무 걱정을 많이 해서였을까. 어제는 그렇게 예뻐 보이던 머리핀이 오늘은 괜히, 작고 초라해 보이는 게 아닌가. 나도 같이 초라해지고 쪼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다시 또 하루가 지날 때까지 얼마나 마음을 썼는지 모른다.
하루가 지나고 담임선생님이 앞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 눈은 바쁘게 움직였고 왼쪽 귀 위에 꽂혀있는 머리핀! (지금 생각해 보니 일부러 잘 보이게 착용해 주신 것 같다) 그걸 본 순간 모든 걱정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일기장에는 ‘빵긋이가 선생님을 위해 선물해 준 거 너무 고마워. 예쁘게 잘 쓸게.’라는 선생님의 댓글이 적혀있었다.
갑자기 내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가 떠오른 건, 어제 아이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아이는 어제 스승의 날 깜짝 파티를 준비한다고 내게 말했다.
“엄마, 오늘 애들이랑 점심시간에 선생님 몰래 회의했는데 내가 케이크랑, 커피, 풍선 준비하기로 했어.”
“돈은 다 같이 마지막에 나누는 거야?”
“아니? 내 용돈으로 이거 다 살 수 있는데?”
“아...”
아이에겐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남들보다 더 쓰든 덜 쓰든 상관이 없는 거였다.
아이와 함께 다이소, 편의점, 빵집을 돌았다. 아이는 계속 중얼중얼거린다.
“풍선이랑 폭죽 챙겼고, 선생님이 오시면 왕관 씌워드리고, 촛불 켜는 건 다른 선생님께 도와달라고 하고...”
“돌멩아, 누군가를 기쁘게 하려고 이렇게 준비하는 거 좋아?”
아이에게 묻자, 아이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응! 너무 좋아! 내일이 너무 기대돼. 선생님이 좋아하시겠지?”
“엄청나게 좋아하실걸? 남을 기쁘게 하는 즐거움을 돌멩이가 안 것 같아서, 엄마도 좋다.”
자녀의 반 아이들이 공동 모금의 형태로 파티를 열었습니다. 글을 쓰고 게시하려는 데, 김영란 법이 떠올라 주저하게 되네요. 마음과 마음이 전해지는 일을 ‘법’으로, 여기까지는 옳고 저기까지는 그른 것이라고 정확하게 나눌 수 있을까요. 돈이 아닌 마음이 다하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어릴 때도, 어른이 되어서도, 지금도 걱정이 많은 사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