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영어 선생님
목이 또 가버렸다.
이틀 전 밤, 온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마디마디 관절이 아팠다. 목구멍도 따끔거리고 슬금슬금 부푸는 느낌이었다. 너무 아파서 이만 대충 닦고 끙끙거리며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손발이 너무 시려서 전기장판이 생각났다. ‘전기장판 꺼내다가 쓰러지겠다.’ 끙,,, 소리를 내며 손은 목덜미에, 발은 접힌 무릎 뒤에 끼워 내 몸의 온기를 나눴다. 그 와중에 이마는 뜨끈뜨끈. 까무룩 잠이 들며 생각했다. ‘분명 이건 코로나다!’
아침에 일어나 코로나 자가 키트 검사를 하느라 재채기를 연거푸 했다. 약간의 기대감과 약간의 주저함을 가지고 지켜본 검사 결과는!
한 줄이었다.
“아, 학교 가야 하네.”
나도 모르게 말이 밖으로 샜다.
3교시까지 내 목은 정말 멀쩡했다. 컨디션도 좋았고 수업도 생각한 대로 잘 나아가고 있었다. 4교시가 되었고 선이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바로 전 시간이 수학이었거든요? 구구단을 써서 통과해야 하는데, 아직도 통과 못한 애가 있어요. 재호가 아직도 통과 못했어요.”
재호를 쳐다보는 선이의 눈길에는 빙글빙글 미소가 걸려있었다.
“모두 다 함께 통과해야 하는 그런 미션이 있는 거야?”
내 물음에 선이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아니요. 그건 아닌데 아직도 통과 못한 애가 있다구요.”
“사람마다 배우는 속도가 다르니까, 잘 배워서 다음에 통과하면 되지. 그건 그렇고 너네 진짜 대단하다! 2단부터 9단까지 손으로 써서 열심히 외운 거야? 또 그걸 해내고 있고? 한글도 배웠고 구구단도 외우는 끈기라면 뭘 해도 할 수 있는 거야! 당연히 영어도 잘하게 될걸?”
한껏 분위기를 끌어올린 뒤, 이제 수업으로 넘어가려는데 선이가 다시 손을 든다(님아 그 손을 들지 마오).
“선생님! 제가 한 이야기 때문에 재호가 기분이 나빴나 봐요. 방금 저를 째려봤어요!”
“이제 수업해야 하니까. 재호랑 선이는 수업 끝나고 이야기하자.”
다시 수업으로 돌아가자고 목소리를 한 톤 높였는데, 목에서 팅! 소리가 났다. 팽팽하던 기타 줄이 끊어지는 듯한 그런 소리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목은 조율이 엉망인 기타처럼 예상 밖의 소리가 나고 있다.
“선생님 목소리가 점점 이상해지고 있어요!”
아이들은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다는 듯 놀라워했다.
‘나도 알아...’
쇳소리가 섞인 목으로 수업을 마친 뒤, 쉬는 시간에 재호와 선이를 남겨서 물어봤다.
“재호는 선이가 재호 이야기를 해서 기분이 나빴어?”
고개를 끄덕이는 재호.
“선이는 재호가 째려봐서 기분이 나빴던 거고?”
고개를 끄덕이는 선.
“근데 선아, 공개적인 장소에서 남의 약점을 이야기하는 건 잘못된 행동이야.”
“재호가 통과 못한 거 애들 다 알아요!”
“... 그래도 그 사실을 전체에게 또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 선생님은 몰랐잖아?”
할 말이 없어진 선이는 연필을 괜히 책상에 쿵쿵 찧는다. 그러더니,
“앞으로 남 이야기하는 애들, 다 이를 거야!”
크크크 아이고 어린이.
“선아, 사람은 모두 실수하면서 배워. 선생님이 선이한테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한 건 너를 혼내는 게 아니라, 잘못한 걸 알려준 거야(사실 혼내는 거란다 ^0^) 잘못한 건 배우고 고치면 되는데, 다른 사람한테 복수하겠다고? 이건 더 나쁜 행동인데?”
선이가 삐죽거린다.
“선이는 앞으로 남 이야기할 땐 조심해야 한다는 걸 배운 거고,,, 재호는 얼른 구구단을 마저 배워야겠네? 이제 반으로 돌아가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선과 재호는 언제 싸웠냐는 듯 이야기를 나누며 교실을 나간다.
애들 싸움, 끼어드는 거 아니다.
*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